두바이 배우자던 그들, 부끄럽지 않을까
두바이 배우자던 그들, 부끄럽지 않을까
[경제뉴스 톺아읽기] "동북아 금융허브"의 롤 모델, 운이 나빴을 뿐?

두바이가 모라토리엄(채무상환 유예)를 선언했다. 두바이 정부는 26일 두바이월드 채권단에 내년 5월 30일까지 6개월 동안 채무상환을 유예해줄 것을 요청했다고 밝혔다. 두바이월드는 두바이 최대의 국영개발업체다. 이 회사의 부채는 지난해 말 기준 593억 달러에 이른다. 세계 최고층 빌딩과 인공 섬, 사막의 스키장 등 넘쳐나는 오일 달러에 힘입어 금융 허브의 성공 모델로 꼽혔던 두바이의 몰락은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한국이 두바이 같은 금융허브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규제 중복부터 풀고 금융 서비스의 완전한 개방을 꾀해야 합니다." 지난해 2월, 데이비드 엘든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국가 경쟁력 강화 특위 위원장이 한 말이다. 두바이는 취임 초기 이명박 정부의 정책 화두였다. 두바이 국제금융센터 회장을 맡고 있는 그가 외국인으로서는 유일하게 인수위원회에 합류한 것도 두바이를 벤치마킹하겠다는 이 대통령의 의중이 반영된 것으로 알려졌다.

두바이 같은 금융허브를 만들자는 아이디어는 규제 완화, 시장 개방 등 이른바 "기업하기 좋은 나라"의 핵심 원칙이 됐다. 온갖 반대를 물리치고 자본시장통합법을 통과시켰고 은행법과 금융지주회사법을 개정해 금산분리 원칙을 무너뜨리기도 했다. 이 대통령은 "질 좋은 일자리를 만들려면 금융산업을 키워야 한다"며 바람을 잡았고 지난해 6월 서브프라임 사태가 터지기 직전까지 한국투자공사는 뭉칫돈을 뿌려 가면서 해외 투자에 신바람을 냈다.

   
  ▲ 조선일보 2008년 2월16일 3면.  
 
조선일보는 "두바이는 외국 금융회사를 두바이로 끌어들이기 위해 이슬람 헌법까지 개정했고 싱가포르는 투기자본인 헤지펀드에 대해서까지 모든 규제를 풀었다"면서 규제개혁을 요구했고 한국경제는 "경쟁국은 뛰는데 한국은 걷는 수준이어서 금융허브 경쟁력은 갈수록 뒤처지는 실정"이라고 개탄하기도 했다. "기업은 세금 있는 오아시스보다 세금 없는 사막을 좋아한다"면서 이명박 정부의 감세 정책을 거들기도 했다.

   
  ▲ 조선일보 2008년 1월10일 5면.  
 
동북아 금융허브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작품이다. 노 전 대통령 역시 숱한 비판을 무릅쓰고 금융허브 구상을 꺾지 않았다. "그것(금융허브)를 안 하면 죽게 생겼다"고 말하기도 했다. 금융허브라는 그럴 듯한 간판을 노 전 대통령에게 넘기고 싶지 않았던 모양인지 이 대통령은 취임 직후 "서울시장 시절부터 동북아 금융허브 구상을 갖고 있었다"면서 "(당시) 정부와 대화해 규제도 풀고 하자고 했지만 원만한 대화를 하지 못했다"며 불만을 털어놓기도 했다.

   
  ▲ 한국경제 2008년 3월11일 37면.  
 
그랬던 두바이가 무너졌다. 두바이는 일찌감치 1960년 두바이공항과 1972년 라시드항을 개항하면서 중동의 물류 허브로 자리 잡았다. 2000년 이후 중동의 오일달러가 흘러들면서 최고의 전성기를 맞게 됐다. 금융회사들이 앞다퉈 몰려들었고 부동산 가격이 폭등했고 최고층 빌딩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국내총생산이 374억달러인 나라의 부채가 800억달러가 넘어설 정도로 과잉투자가 심각했지만 누구도 이를 문제삼지 않았다.

제조업 기반이 없고 외부 자본 의존율이 높은 나라가 세계 금융위기의 직격탄을 맞은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투자자들은 썰물처럼 빠져나가기 시작했고 대출 압박이 연쇄적으로 자금 경색을 불러 일으키면서 1년 만에 부동산 가격이 반 토막이 났다. 정부 차원의 돌려막기가 시작됐지만 글로벌 금융위기가 계속 되면서 결국 모라토리엄이라는 파국으로 치닫게 됐다. 이게 금융허브의 초라한 현실이다.

   
  ▲ 조선일보 11월27일 8면.  
 
흥미로운 것은 "두바이를 배우자"고 외쳤던 언론의 반응이다. 조선일보는 1면에 "두바이 쇼크", 8면에 "설마 두바이가… 아랍판 9·11 경제충격"이라는 제목으로 놀라움을 드러냈다. 이 신문은 "수요를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고유가 시대 산유국들의 유휴자금으로 진행된 개발은 지속가능할 수 없다"면서도 "이번 위기를 잘 넘긴다면 다시 일어설 수도 있을 것"이라고 한 가닥 기대를 남겨두기도 했다.

한국경제는 "두바이는 앞으로 중동의 아르헨티나로 전락해 투자자들에게 고분고분 빚이나 갚아나가는 신세가 될 수 있다"는 파이낸셜타임즈의 보도를 인용하는데 그쳤다. 중앙일보는 "두바이의 몰락 원인으로는 단기간에 지나친 투자와 개발을 한 점과 높은 외국자본 의존도가 꼽힌다"면서 "여기에 내수기반이 취약하고 제조업이 약하다 보니 위기에 내몰릴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많다"고 설명했다.

두바이는 금융허브라는 망상을 쫓던 우리나라의 반면교사가 될 수 있다. 그런데 대통령을 비롯한 정치권은 물론이고 이에 동조하던 언론의 진심어린 반성은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어렵다. 다만 미국 서브프라임 사태 때문이고 지나치게 급속도로 성장한데다 운이 없었을 뿐이라는 논리다. 두바이는 여전히 우리의 롤 모델인가. 그게 아니라면 우리는 어떤 다른 롤 모델을 찾아야 하는가. 두바이의 몰락을 보도하는 신문 지면에서는 그 답을 찾아볼 수 없다.

돌아보면 노 전 대통령과 이 대통령이 줄곧 외쳐왔던 금융허브의 성공 사례들은 모두 물류 중심지면서 싱가포르나 홍콩, 두바이 같은 도시국가 모델이었다. 유일한 예외인 영국이 애초에 제조업이 강성했던 나라였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흔히 잊고 있지만 싱가포르는 제조업 생산량이 우리 보다 높고 중국에 편입되기 이전의 홍콩도 마찬가지다. 몰락해 가는 제조업을 금융업으로 보완할 수 있을까. 이 대통령은 그 질문에 먼저 답을 해야 한다.

두바이처럼 규제완화를 하자, 두바이처럼 시장을 개방하자, 두바이처럼 외국 자본을 끌어들이자, 그렇게 외쳤던 이들은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나. 자산가격 거품으로 재미를 봤던 미국과 영국이 박살이 나고 아일랜드가 무너지고 두바이가 무너진 아직까지도 우리의 금융허브의 구상은 현재 진행형이다. 두바이의 몰락이 놀라운가. 두바이를 배우자고 그들이 한 목소리로 외칠 때도 경고는 늘 있었다. 다만 듣고 싶지 않았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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