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밤 10부터 100분 간 방송되는 이명박 대통령의 <국민과의 대화>(가제)를 전국의 35개 방송사가 동시생중계할 예정인 것으로 밝혀져 권위주의 시절 때처럼 국민의 눈과 귀가 막히는 상황까지 온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현 정부들어 이번이 세 번째인 <국민과의 대화>는 지난 두 차례 방송 땐 이렇게 많은 방송사에서 자체편성을 모두 포기하고 중계한 적은 없었다. 애초 주관 방송사인 MBC를 포함해 지상파 방송 3사만 하려 했으나 준비과정에서 지역지상파와 일부 케이블방송도 방송을 결정하면서 사실상 한날 한시에 대한민국의 거의 모든 TV(보도관련)가 이명박 대통령의 모습을 국민앞에 틀게 됐다.

MBC 주관으로 KBS SBS OBS 등 지상파TV와 YTN MBN KTV 등 케이블TV, 지역MBC 19개사, 지역민방 9개사 등 모두 35개 방송사가 27일 밤 10시에 <국민과의 대화>를 편성했다. 국민과의 대화를 처음 도입한 고 김대중 전 대통령 때 방송3사가 동시 생중계를 한 적이 있었지만 고 노무현 전 대통령 때는 개별 방송사 시사토론프로그램 등에 출연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이명박 대통령 국민과의 대화, 전국 35개 채널서 동시생중계

방송 주관사인 MBC의 문철호 <100분토론>팀장은 26일 "논의하는 과정에서 바뀐 것"이라며 "사안이 중대하기 때문에 자기들(다른 방송사)도 한다는 의사를 표시해왔다"고 밝혔다.

   
  ▲ 이명박(왼쪽) 대통령이 지난 1월30일 SBS가 방송한 <대통령과의 원탁대화>에 출연했다. ⓒ청와대  
 
19개 지역MBC 가운데 광주 대구 대전 안동MBC 등은 그동안 해당 시간에 지역 자체 프로그램을 방송해왔지만, 이날은 <국민과의 대화> 편성했다. 안동 MBC 관계자는 "원래 그 시간대 로컬 편성인데 금요일 특별히 받기로 했다"며 "서울에서 <국민과의 대화>를 그날 방송 프로그램으로 '릴레이 표시'(서울 제작 프로그램을 받아 방송토록 한 것)가 돼 왔다"고 밝혔다.

MBC 편성부 관계자는 "<국민과의 대화>를 방송하는 시간대에 서울에서는 <섹션TV 연예통신>(밤 9시55분∼10시50분-지역 자체편성)이고, (9시55분∼10시50분-서울MBC 방송을 받아야 하는 네트워크 편성)인데 중간에 자체편성이 끊어질 수 있어 애매한 부분이 있다"며 "<국민과의 대화> 본사 편성에 대해 지역사에서 별다른 이의가 없었다"고 말했다.

이번 <국민과의 대화>에서는 크게 △세종시 수정 추진 △4대강 살리기 사업 △민생 현안 △경제상황 등 네가지 주제에 대해 패널들의 질문에 이 대통령이 답변하는 형태로 진행된다. 주제 선정과 관련해 문철호 MBC <100분토론>팀장은 "청와대에서 4가지 주제에 맞춰서 토론하자는 의견을 제시해 우리가 수용했다"고 밝혔다.

MBC "논의과정에서 여러 방송사, 중계하겠다 의사표시"

지난해부터 최근까지 끊임없이 비판을 낳고 있는 미디어법 강행·공영방송 사장 교체 및 특보출신 사장 임명 등 방송장악 문제는 토론 주제에 잡혀있지 않은 상태다. 이에 대해 문 팀장은 "그날 방송을 보면 알 것"이라고 말했고, 청와대 쪽도 "질문이 나오면 답변할 것"이라고 말했다.

   
  ▲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해 9월9일 KBS 등이 방송한 <대통령과의 대화>에 출연했다. ⓒ청와대  
 
이날 출연자는 전문가 패널로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와 김진 중앙일보 논설위원, 김연희 베인앤컴퍼니 대표 등 3명이며, 현장에 참석한 일반 국민과 네티즌의 추가질문을 하게 된다. 애초 출연자 섭외과정에서 박원순 변호사도 검토됐으나 본인의 고사로 빠진 것으로 알려졌다. 다소 강경한 보수적 글을 써온 김진 논설위원이 포함된 데 대해 문철호 팀장은 "(출연자 성향이 편향된 것 아니냐고) 우려하는 부분을 다 고려했고, 상식선에서 준비한 것"이라고 답했다.

공동진행을 맡게 된 것과 관련해 문 팀장은 "국민과의 대화 준비를 시작하면서 3사가 함께 생중계하는 것으로 얘기가 됐고, 사실상 공동진행이 이뤄지는데 우리만 나가면 곤란한 점도 있어서 3사 앵커를 함께 출연시키자고 제안해 협의가 이뤄졌다"고 말했다.

"4개 주제 청와대가 의견제시해 우리가 수용"

정부와 불편한 관계에 있는 MBC가 대통령 토론프로그램을 방송한 것과 관련해 문 팀장은 "신경쓰이는 부분이 있었지만 오히려 그 쪽(청와대)에서도 함부로 얘기할 수 없는 측면도 있었다"며 "이 대통령이 모두발언을 2∼3분 하고 진행될 것"이라고 말했다.

최성원 KBS 노동조합 공정방송실장은 "방송이 국민을 위한 방송을 해야 하는데 대통령을 위한 방송으로 체제 자체가 개편되려는 게 아닌지, 권위주의 시대로 회귀한 것이 아닌지 우려스럽다"며 "영향력 있는 지상파·케이블TV가 대통령의 의견을 그대로 비판없이 전달하는 것 매우 부적절하며 이런 식의 중계방송은 방송의 자율성과 편성의 독립성이 실제로 침해됐다고 밖에 볼 수 없다"고 비판했다.

최 실장은 "모든 방송사가 알아서 편성했다는 말 자체가 의미없을 거짓말로 들릴 정도로 방송장악이 노골화됐음을 보여준다"며 "방송사들 역시 대통령의 일방적인 해명을 방송한 것에 대해 너무 손쉽게 받아들여 스스로 권력과 쳐놓은 장벽을 허무는 작태"라고 강조했다.

"권위주의 시대 회귀…전쟁이라도 터졌나"

성재호 KBS 노조 중앙위원도 "상식적으로 볼 때 다양성을 최고의 가치라고 생각하는 민주주의 국가에서 벌어질 수 있는 일인지 의문"이라며 "무슨 전쟁이라도 터진 것처럼 전국의 모든 방송이 한날 한시에 한사람의 목소리만을 듣도록 한 것은 전체주의 국가에서나 벌어질 일"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청와대 2대변인실 관계자는 "방송사에서 알아서 한 것으로 우리는 주관사인 MBC를 통해 진행상황만 들었을 뿐 우리가 요청하거나 의견을 낸 것은 없다"며 "오히려 진행자 문제로 방송사간 이견이 있어 KBS나 SBS에서 하느냐 마느냐 하는 일이 있었을 정도"라고 말했다. 주제선정과 관련해서는 "누구나 현안이 이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답했다.

MBC에서 방송하게 된 데 대해 이 관계자는 "다른 매체에 비해 정부에 비판적이었던 MBC가 방송하게 됐다는 것 자체가 의미가 있다"며 "정부가 MBC를 선택한 것은 정부가 MBC에 대해 감정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고, 과거 KBS SBS에 이어 이번엔 MBC로 자연스럽게 방송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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