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rights reserved(모든 권리가 보호됩니다)." 이렇게 선언하고 나면 그 콘텐츠를 허락 없이 사용할 경우 무조건 불법이 된다. 현행 저작권법에서 저작물의 생성과 동시에 저작권이 부여되고 저작권자의 허락을 받은 사람만 저작물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대부분 언론사들이 아무런 고민 없이 이처럼 배타적인 저작권 정책을 고수하면서 실제로는 무단 불법복제가 만연한데도 적당히 묵인하고 있는 상황이다.

"Some rights reserved(일부 권리가 보호됩니다)." 모든 권리가 아니라 일부 권리만 보호된다는 말인데 다시 말하면 일부 권리를 포기할 테니 따로 저작권자에게 허락을 받을 필요가 없다는 의미다. 저작권을 좀 더 유연하게 적용하자는 취지에서 출발한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Creative Commons License)'는 쉽게 풀어쓰면 '저작물 공유 규칙' 정도로 이해하면 된다. 줄여서 CCL이라고 부른다.

   
  ▲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CL은 여러 조건이 있는데 저작자를 표시하도록 하는 조건(BY)도 있고 비영리적 목적에서만 사용하도록 하는 조건(NC)도 있고 저작물의 수정이나 2차 저작물의 작성을 금지하는 조건(ND)도 있다. 수정이나 2차 저작물의 작성을 허용하되 동일한 라이선스를 적용하도록 하는 조건(SA)도 있다. 이들 조건만 지킨다면 자유롭게 '펌질'을 하거나 수정해서 재가공해서 배포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콘텐츠를 공짜로 뿌린다? 그거 참 이상한 이야기다. 그럼 콘텐츠 생산자들은 뭘로 돈을 버나? 13일 서울 서초구 서초동 화이트홀에서 열린 CC코리아 컨퍼런스에서는 저작권을 적극적으로 포기하는 이른바 '오픈 비즈니스'의 다양한 사례와 가능성이 논의됐다. 이들은 오픈 비즈니스가 공익적 가치를 넘어 더 많은 가치를 낳고 더 큰 수익으로 연결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공유와 개방, 이른바 웹 2.0 의 가치들을 오프라인에도 적용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간단한 사례로 미국의 락 그룹 나인인치네일즈는 지난해 3월 새 앨범 '고스트Ⅰ-Ⅳ'을 발표하면서 음원을 MP3 파일 형태로 공개했다. 누구나 홈페이지에서 공짜로 MP3 파일을 내려 받을 수 있게 했다는 이야기다. 주변에서는 돈 벌 생각이 없는 모양이라고 비웃었지만 이 앨범은 발매 첫 주에 80만장이 팔려나갔다. 빌보드 차트 1위에 오른 것은 물론이고 음악공유 사이트 라스트닷에프엠에 따르면 지난해 가장 많이 들은 앨범 4위에 꼽히기도 했다.

콘텐츠를 공짜로 뿌리면서 좀 더 많은 잠재적 소비자들에게 접근하고 이를 통해 부가적인 수익 창출의 기회를 만드는 전략을 딱히 혁신적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이를테면 지하철 역 앞에서 홍보 전단과 함께 휴대용 물 티슈를 나눠주는 것도 공짜 경제, 이른바 프리코노믹스(freeconomiocs)의 일환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주목할 부분은 인터넷이 기회비용을 낮추는 동시에 콘텐츠의 가치를 끌어올리는 도구로 활용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나인인치네일즈 뿐만이 아니다. 마케팅 비용을 많이 쓸 수 없는 신인 음악가들에게 인터넷은 시장의 반응을 살피고 이름을 알릴 수 있는 등용문이다. 우리나라의 인디 밴드 '장기하와 얼굴들'은 인터넷에 공개한 '싸구려 커피'라는 노래가 폭발적인 인기를 끌면서 이른바 메인 스트림으로 진출하게 됐다. 또 다른 인디 밴드 '브로콜리 너마저'도 인터넷에서 먼저 입소문을 타고 상업적으로 성공을 거둔 경우다.

최근 영화 '해운대' 동영상이 유출됐다고 떠들썩하기도 했지만 핀란드에서는 '스타렉'이라는 영화가 온라인에 공개돼 6개월 동안 500만명 이상이 이를 내려받아 본 경우도 있었다. 제작자들은 나중에 이 영화를 공중파 방송국에 팔아 제작비를 회수했다. 캐릭터 판매도 큰 수익을 가져다 줬다. 지난해 개봉된 류승완 감독의 '다찌마와 리'는 2000년에 만들어진 인터넷 단편영화를 리메이크한 것이다.

   
  ▲ 13일 오픈 비즈니스 컨퍼런스에서 발제 중인 실뱅 짐머 자멘도 대표.  
 
이날 컨퍼런스에서는 음악 공유 사이트 자멘도(www.jamendo.com)의 창업자인 실벵 짐머가 강연자로 나와 이 회사의 비즈니스 모델과 오픈 비즈니스의 철학을 설명했다. 자멘도는 MP3 파일을 무료로 배포하는 사이트다. 이 회사는 뮤지션들의 홍보와 마케팅을 대행해주고 판매 수익을 반반씩 나눈다. 광고 수익도 반반씩 나눈다. 사용자들에게 기부를 받아 소액의 수수료를 빼고 그대로 전달해 주기도 한다.

자멘도의 수익모델에 대해서는 여전히 회의적인 시각도 많다. 월 매출이 10만유로 수준인데 이를 반반씩 나누게 된다. 짐머 대표는 "모든 뮤지션들이 자멘도로 생계를 이어갈 수는 없다"고 인정한다. "그러나 CD 판매가 계속 줄어들고 있는 반면 불법 다운로드는 늘어나고 있고 MP3 파일을 공개한다고 해서 큰 타격을 받지는 않는다"고 말한다. "대중과 접점을 넓히면서 오히려 새로운 수익 창출의 기회를 찾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자멘도가 완성된 음악 파일을 공유하고 공동의 수익모델을 고민하는 공간이라면 컴포즈(www.compoz.com)는 공동 창작과 협업의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한 작곡가가 트랙을 업로드하면 다른 작곡가들이 여기에 드럼이나 베이스, 보컬 등을 추가하는 방식이다. 역시 모든 음원에 CCL이 적용돼 있어 자유롭게 수정 재배포가 가능하다. 모든 작업 과정은 위키 형태로 관리돼서 예전 버전을 다시 불러오는 것도 가능하다.

   
  ▲ 13일 오픈 비즈니스 컨퍼런스에서 발제 중인 치아키 하야시 로프트워크 대표.  
 
일본의 로프트워크(www.loftwork.com)는 오픈 비즈니스의 영역을 디자인 부문으로 넓힌 성공 사례다. 이 사이트에 오른 디자인 작품들은 모두 CCL이 적용돼서 무료로 내려 받을 수 있는데 사업적 목적으로 판매될 경우는 디자이너와 40 대 60으로 수익을 배분한다. 최근에는 직접 프로젝트를 수주해서 수백명이 함께 공동 작업을 벌이는 경우도 많다. 이 회사의 한달 매출액은 50만달러에 이른다.

로프트워크 공동 창업자인 치아키 하야시 대표는 "우리와 비슷한 사업을 하는 회사들이 대부분 콘텐츠를 무료로 공개하면서 빈약한 광고 수입에 의존하고 있지만 우리는 철저하게 제품화와 상용화에 주력한다"고 설명했다. 아이디어는 공유하되 이를 활용해 비즈니스적 가치를 끌어내고 이를 원 저작자와 나눈다는 이야기다. 하야시 대표는 "이베이가 판매자와 구매자를 연결시켜준다면 우리는 창작자와 기업을 연결시켜준다"고 설명했다.

비슷한 사례는 얼마든지 있다. '오픈 클립아트 라이브러리(www.openclipart.org)'는 10월 말 기준으로 1만2347개의 클립아트를 무료로 공개하고 있다. 원 저작자를 표기하는 조건으로 누구나 공짜로 내려 받을 수 있다. '브렛-웨잇 웰렛(www.braithwaritwallets.com)'은 남성용 지갑 디자인 회사인데 홈페이지에서 디자인 소스 파일을 공개하고 있다. 역시 원 저작자만 밝히면 상업적 용도로 쓰는 것도 가능하다.

독일의 가구 디자인 회사 로넨 카두신(www.ronen-kadushin.com)은 캐드 파일을 통째로 공개하고 있는데 누구나 파일을 내려 받아 목공소에 주문만 하면 누구나 똑같은 제품을 만들 수 있다. 스케초리(www.sketchory.com)은 스케치를 공유하는 사이트다. 25만장 이상의 스케치가 공유돼 있는데 모두 CCL이 적용돼 있어서 원 저작자 표시만 하면 변형하거나 상업적인 활용도 가능하다.

"삼청동 디자인 샵 같은데 가보면 사진 촬영도 못하게 하죠. 물건을 팔기는 하지만 디자인만 훔쳐가는 건 허용할 수 없다는 건데요. 이 사람들은 발상을 전환해서 이미 제품화한 이상 디자인은 자기들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겁니다. 아이디어란 게 소유하려고 해도 소유할 수 없는 거고 오히려 더 많은 사람들이 함께 누릴 때 가치가 더 커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CC코리아 활동가 한수정씨의 이야기다.

메사추세스공과대학은 온라인 강의 콘텐츠를 모두 무료로 공개하고 있다. 10월 말 기준으로 1925개의 공개강의가 올라와 있다. 당초 유료로 공개할 계획이었는데 수익성이 높지 않다는 판단에 따라 학교 홍보에 활용하는 쪽으로 방향을 바꿨다. 커녁션스(www.cnx.org)처럼 공개된 교육 자료를 모아 커리큘럼을 만들어 주는 곳도 있다. 일본의 모리 미술관은 CCL을 적용하는 조건으로 일반인들에게 전시물의 사진 촬영을 허용하고 있다.

이슬람 방송인 알자지라는 팔레스타인 분쟁과 관련한 동영상에 CCL을 적용해 무료로 공개하고 있기도 하다. 정부기관으로는 호주 정부의 공공정보 데이터 세트가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이밖에도 프레젠테이션 파일을 공유하는 슬라이드쉐어(www.slidershare.net) 같은 사이트도 있고 CCL이 적용된 무료 전자책을 모아놓은 매니북스(www.manybooks.net)나 CCL북스(wiki.creativecommons.org/Books) 같은 사이트도 있다.

오픈 비즈니스의 수익모델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영리적 목적과 비영리적 목적을 나눠 라이센스를 다르게 두는 방법도 있고 콘텐츠는 무료로 뿌리되 배포와 유통 과정에서 수익을 얻는 방법도 있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시장의 파이를 키우는 전략도 가능하다. 웹 기반의 광고 모델은 전통적이지만 여전히 유효한 수익모델이다. 위키미디어처럼 기부에 의존하는 경우도 있고 매뉴얼이나 티셔츠, 스티커, 머그컵 판매 등에 의존하는 경우도 있다.

국내에서도 대전지법 윤종수 판사의 주도로 2005년 3월 CC코리아가 설립된 이후 CCL에 대한 인식이 확산돼 가고 있지만 아직까지 CCL을 적용한 언론사나 기업은 많지 않다. 무단 불법복제가 계속 논란이 되고 있는데도 정작 개방과 공유에 대한 논의는 부족한 상황이다. 콘텐츠 유료화에 대한 강박 관념이 확산돼 있는 탓이기도 하고 건강한 협업 생태계의 경험이 많지 않은 탓이기도 하다.

한상기 한국과학기술대학교 문화기술대학원 교수는 "전문가들과 기업, 기관들에 의해 생성되고 검증되고 제공되던 정보보다 개인(peer)에 의해 만들어지고 공유되는 정보가 더 큰 의미를 갖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한 교수는 "오픈 비즈니스는 단순히 수익창출 뿐만 아니라 광범위한 협업과 집단지성을 통해 더 큰 가치를 끌어내자는 것인데 우리나라에서 논의는 여전히 수익창출에 한정돼 있어 아쉽다"고 덧붙였다.

윤종수 판사는 "그동안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을 당연하지 않은 것으로 생각해보고, 당연하지 않다고 생각했던 것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해 볼 수 있는 용기와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윤 판사는 "저작권은 당연히 보호돼야 하지만 어느 정도로 보호되고 어떤 방법으로 보호되어야 하는지가 문제일 뿐"이라면서 "다만 어느 범위의 저작물을 어떠한 방법으로 공유하고 공유의 효과를 어떻게 끌어낼 수 있는지가 연구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인터뷰 실뱅 짐머 자멘도 대표.

   
  ▲ 실뱅 짐머 자멘도 대표.  
 
- 어떻게 이 사업을 시작하게 됐나.
"2004년에 시험을 망치고 학교 생활에 싫증이 나던 무렵 뭔가 새로운 걸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세 가지 아이디어가 있었는데 첫째는 음악, 둘째는 자유, 셋째는 비트토런트였다. 이걸 모두 합쳐보자는 생각에서 나온 게 자멘도였다. 음악 파일을 무료로 공개하되 합법적으로 내려 받을 수 있도록 하고 비즈니스적 가치도 고민해 보자는 거였다."

- 비트토런트 방식을 활용한 것도 독특하다. 비용을 줄이기 위해서인가.

"비트토런트는 보편적인 파일 공유 방식이 됐다. 비용도 비용이지만 네트워크 자원 활용 차원에서도 훨씬 효율적이기도 하고 공유의 정신에도 맞는다."

- 지금이야 세계적으로 유명한 사이트가 됐지만 사업 초기에 뮤지션들을 끌어들이기가 쉽지 않았을 거 같다.

"쉽지 않았다. 어차피 CD 판매는 줄어들고 있고 딱히 더 크게 손해 보는 일은 없을 거라면서 한 사람씩 끌어들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입 소문이 나고 팬이 늘어나면서 놀랍게도 CD 판매도 늘어났다. MP3 파일을 공개했지만 비영리적 용도에 한정했기 때문에 여전히 상업적인 판매의 가능성도 열려 있다. 직접 시장 조사도 하고 뮤지션들을 찾아가서 컨설팅도 하고 사업 제휴도 했다. 그러다가 어느 시점이 지나자 뮤지션들이 직접 찾아오기 시작했다."

- 수익모델을 구체적으로 설명해 달라.

"크게 광고수익과 사업수익 그리고 기부로 나뉜다. 만약 우리 사이트에 오른 음악을 광고 배경음악으로 쓰고 싶다거나 매장에서 틀고 싶다거나 할 때는 우리에게 연락이 온다. 우리는 사업수익을 반반씩 나눈다. 그게 월 10만유로 정도니까 5만유로 정도가 뮤지션들에게 돌아가는 셈이다. 아직 넉넉한 수준은 아니지만 꾸준히 늘어날 거라고 본다. 광고수익은 1천유로, 기부는 3천유로 정도밖에 안 된다. 기부를 받으면 0.5유로를 빼고 모두 뮤지션에게 돌려준다."

- CD 판매가 계속 줄어들고 있다. 무료 MP3 파일로 홍보 효과를 노리면서 CD 판매를 늘리는 지금의 방식이 계속 유효하다고 보나.

"프랑스에서도 불법복제가 골칫거리다. 콘텐츠 생산자들 입장에서는 불법복제를 완전히 뿌리 뽑을 수도 없고 어느 정도 수용할 필요도 있다고 본다. 우리는 더 많은 사람들이 음악을 즐길 수 있도록 하되 우리의 음악을 상업적으로 활용하려는 기업들에게 수익을 얻는다. 장기적으로도 우리의 비즈니스 모델이 유효할 거라고 믿는다. 물론 CD 판매로 큰 수익을 내는 음반회사는 여전히 존재할 것이다. 다만 그렇지 못한 마이너 레이블이나 인디 밴드, 신인 가수들에게는 우리의 플랫폼이 불특정 다수의 대중과 소통하는 유용한 도구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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