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가 12일 1면 머리기사에 "복수노조 돼도 임단협 교섭창구는 단일화"라는 제목으로 임태희 노동부 장관의 발언을 소개했다. 임 장관은 11일 이 신문이 주최한 한경밀레니엄포럼에서 "복수노조와 전임자 임금 지급금지는 국제적 관행이기 때문에 13년간 유예된 두 제도를 내년에 반드시 시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기사에는 "기업, 개별교섭 거부할 수 있다"는 부제가 달려 있다.

   
  ▲ 한국경제 11월12일 1면.  
 
임 장관은 복수노조 허용 문제와 관련, "미국과 캐나다에서는 복수노조 중 조합원 점유비율이 50% 이상인 노조가 무조건 단일교섭 창구가 된다"면서 "특히 일본에서는 가장 많은 조합원이 가입한 노조를 교섭대표로 인정하는 관행이 판례로 정립돼 있다"고 지적했다. 임 장관은 "우리도 노조 난립에 따른 혼란이 가중되면 교섭대표의 후보 자격을 더욱 강화하는 방안을 검토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임 장관이 지적한 것처럼 미국과 캐나다 등이 이른바 '배타적 다수 교섭제'를 채택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지 않은 나라도 많다. 프랑스의 경우는 복수의 노조라도 일정한 조건을 갖출 경우 대표성을 인정받아 교섭 당사자가 되는 것은 물론이고 조합원 뿐만 아니라 그 사업장의 모든 노동자를 대표하는 권한을 갖게 된다. 일본의 경우도 모든 복수노조에 단체교섭권을 부여하고 사용자에게 중립의무를 부과하고 있다.

김유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소장은 "일본의 경우 다수 노조와 체결한 단체협약에 우선권을 주는 관행은 있지만 소수 노조라고 해서 교섭권을 아예 박탈하거나 대표성을 부정하지는 않는다"고 지적했다. 김 소장은 "교섭권이 없다면 복수노조를 허용한들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반문했다. 팔다리가 다 잘린 거나 마찬가지라는 이야기다. 노동계에서는 복수노조를 허용하되 모든 노조에 교섭권을 허용하는 자율교섭제를 대안으로 요구하고 있다.

김 소장은 노조의 단체교섭권은 헌법에 보장된 노동 3권 가운데 하나라고 거듭 강조했다.  김 소장은 "만약 복수노조를 허용하면서 교섭권을 부정한다면 이는 단순히 시행령 차원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고 법을 개정하더라도 위헌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미국이나 캐나다 등에서 시행하고 있는 배타적 다수 교섭제가 우리나라에서는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이야기다.

임 장관은 또 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와 관련, "외국의 경우 전임자 임금을 회사가 주는 사례를 찾아보기 힘들다"면서 "많은 나라에서 관행으로 정착돼 있기 때문에 법으로 규정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 신문은 "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를 법으로 명시한 나라가 없다는 노동계의 주장에 대한 반박인 셈"이라고 해설을 곁들였다. 임 장관은 "노조도 경제성을 갖춰야 당당한 노동운동이 가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외국에서 관행이기 때문에 우리도 법으로 금지해야 한다"는 임 장관의 이 같은 발언은 사실관계부터 잘못돼 있는데다 명백한 궤변이다. 먼저 외국의 경우도 노조 전임자에게 임금을 지급하는 사례가 많다. 미국과 영국, 프랑스, 일본 등에도 유급 전임자가 있고 이를 단체협약으로 정하는 경우가 많다. 관행은 아니지만 법으로 금지된 경우는 없다는 이야기다. 오히려 독일에서는 종업원평의회 전임자의 임금을 지급하도록 법으로 명시돼 있다.

김 소장은 "노조 전임자 임금 문제는 전혀 받으면 안 된다는 것도 아니고 무조건 받아야 된다는 것도 아니고 노사가 자율적으로 결정할 문제"라고 강조했다. 애초에 국가가 개입할 문제가 아니라는 이야기다. 노동계에서는 노조 조직률이 낮고 조합비가 1% 수준에 지나지 않는 우리 현실에서는 전임자 임금을 노조에서 부담하게 할 경우 상당수 노조가 존립이 불가능하게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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