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우리 기사를 구글에서 못 보게 만들겠다."

루퍼트 머독 뉴스코프 회장이 구글과 전면전을 선포했다. 뉴스코프는 미국의 '월스트리트저널'과 '폭스TV', 영국의 '더 선'과 '더 타임스' 등을 거느린 세계 최대의 미디어 그룹이다. 머독 회장은 9일 호주 스카이뉴스와 인터뷰에서 "구글에서 우리 신문 기사가 검색되지 않도록 차단하겠다"면서 "우리에게는 검색 사이트에서 들어오는 다수의 뜨내기 독자들보다 구독료를 지불하는 소수의 충성도 높은 독자들이 더욱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 구글과 전면전을 선포한 루퍼트 머독 뉴스코프 회장. 스카이뉴스 캡춰 화면.  
 
머독 회장은 최근 들어 부쩍 포털 사이트에 노골적으로 불만을 터뜨려왔다. 영국의 '가디언'에 따르면 머독 회장은 "기생충", "병적인 도벽환자" 등 원색적인 용어를 써가면서 포털 사이트들을 비난해 왔다. 이날 인터뷰에서도 "그들은 우리 콘텐츠로 돈을 벌면서도 비용을 지불하지 않고 있다"고 비난했다. 뉴스코프는 내년 6월까지 모든 신문의 온라인 서비스를 유료화할 계획인데 이를 계기로 검색엔진의 유입을 전면 차단한다는 방침이다.

머독 회장의 격한 비난에 구글은 한 마디로 어이가 없다는 반응이다. 구글은 머독 회장의 인터뷰가 나간 직후 성명을 내고 "구글의 뉴스 검색은 저작권법에 전혀 저촉되지 않는다"면서 "검색 결과에 기사가 뜨게 하거나 뜨지 않게 하거나 이는 전적으로 언론사가 결정하고 관리하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언론사의 콘텐츠를 훔쳐간다는 비난은 적절치 않으며 검색엔진의 유입을 원치 않으면 얼마든지 차단하라는 이야기다.

   
   
 
   
  ▲ ▲ 월스트리트저널의 구글 검색 트래픽 유입 비중(위)와 구글 뉴스 트래픽 유입 비중(아래). 더하면 25%가 넘는다. 만약 구글 유입을 원천 차단한다면 25% 이상의 트래픽을 잃게 된다는 의미다. 히트와이즈 자료, 테크크런치 재인용.  
 

업계 반응 역시 썰렁한 편이다. 정보기술 전문 블로그인 테크크런치는 "월스트리트저널의 웹 트래픽 가운데 25% 이상이 구글에서 발생한다"면서 "만약 이 신문이 구글과 결별한다면 25%의 트래픽을 잃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테크크런치는 또 "월스트리트저널 방문자의 44%가 이 사이트를 처음 찾는 사람들"이라면서 "유료 독자에 집중하려면 먼저 이들이 사이트를 찾도록 만들어야 하지 않겠느냐"면서 비꼬기도 했다.

흥미로운 사실은 지금까지 대부분 언론사들이 구글 등 검색엔진의 유입을 막을 수 있으면서도 굳이 막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월스트리트저널 역시 웹사이트에서는 본문의 일부만 볼 수 있는 유료 콘텐츠를 구글에서 검색해서 들어올 경우에는 본문 전체를 볼 수 있도록 열어놓았다. 콘텐츠 판매 수입과 구글에서 들어오는 트래픽,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으려는 어중간한 타협이었던 셈이다.

가디언은 "머독 회장이 구글에서 철수한 뒤 검색 결과를 판매하는 사업모델을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이를테면 월스트리트저널 등의 콘텐츠를 구글과 경쟁하고 있는 마이크로소프트에 검색 결과를 독점 공급하고 상당한 수익을 챙길 수도 있을 거라는 이야기다. 월스트리트저널 정도의 수준 높은 콘텐츠라면 가능할 거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겠지만 가디언은 "머독 회장의 의지대로 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유보적인 전망을 내놓았다.

국내에서도 조선일보와 중앙일보, 동아일보 등 보수신문들이 포털사이트 다음에 콘텐츠 공급을 중단한 사례가 있었지만 별다른 타격을 주지 못했다. 태터앤미디어 이성규 팀장은 "이를 대체할 콘텐츠가 충분했다는 이야기가 될 텐데 월스트리트저널의 경우라면 다를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세계적으로 권위를 인정받는 경제신문인데다 유료화에 성공할 정도로 충성도 높은 독자들을 충분히 확보하고 있다.

머독 회장과 구글의 갈등은 여러 가지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지금까지 언론사와 포털 사이트는 공존공생하는 관계였다. 포털 사이트는 언론사에 트래픽을 몰아줬고 언론사는 이를 이용해 돈을 벌었다. 그런데 일부 언론사들이 직접 포털 사이트에 비용을 청구하겠다고 나섰다. 포털 사이트 입장에서는 "아니, 지금까지 누구 때문에 돈을 벌었는데" 하면서 어이없어 하면서도 그렇다고 선뜻 관계를 정리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머독 회장은 지난해 소셜 네트워크 사이트인 마이스페이스를 인수한 뒤 키워드 광고 등의 독점권을 구글에 9억달러를 받고 판 전례가 있다. 이 팀장은 "만약 월스트리트저널의 실험이 성공하면 뉴욕타임즈를 비롯해 다른 신문사들도 너도나도 비슷한 요구를 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면서 "구글로서도 결코 물러날 수 없는 진검 승부를 펼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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