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오늘

“공영방송 위기 극복 해법은 ‘설명책임’ 강화”
“공영방송 위기 극복 해법은 ‘설명책임’ 강화”
언론정보학회 토론회… ‘어카운터빌리티’ 도입 필요성 제기

# 1970년대 초 영국에선 거대화한 공영방송 BBC에 대한 비판이 분출하고 있었다. 이에 정부는 74년 애넌 경을 위원장으로 하는 방송조사위원회를 설치, 방송제도 전반에 대해 검토케 했다. 애넌위원회는 77년 발표한 보고서에서 BBC에 ‘어카운터빌리티(accountability·설명책임)’ 강화를 요구했다. 이후 설명책임은 BBC가 공영방송으로서 수행해야 할 가장 중요한 임무로 자리매김 했다.

# 2004년 일본 공영방송 NHK 직원들이 제작비를 부풀려 처리한 뒤 차액을 착복했다는 보도가 사실로 드러났다. 이듬해엔 유력 정치인의 압력에 의한 다큐멘터리 내용 수정 의혹이 제기됐다. 이런 일련의 사건들은 시청자들의 수신료 납부 거부로 이어졌다. 이에 NHK는 2005년부터 설명책임 이행 장치 마련을 위주로 한 신뢰 회복 방안을 강구해오고 있다.

KBS 등 공영방송이 현재의 신뢰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선 자신에게 부과된 공적 책임을 충실하게 수행하는 건 물론 책임을 어떻게 이행하고 있는지를 시청자에게 자발적으로 알리고 설명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지난 23일 서울 신수동 서강대에서 한국언론정보학회 주최로 열린 ‘작은 토론회’는 영국 공영방송 BBC 등이 제도화한 설명책임 개념의 도입과 장치 마련이 우리 공영방송의 경우에도 시급하다는 게 새삼 환기된 자리였다.

이날 발제를 맡은 정수영 성균관대 미디어문화콘텐츠연구소 연구원은 애넌위원회 보고서를 사례로 들며 설명책임 개념과 쟁점들을 소개한 뒤 △설명책임 이행 대책 수립 △기존 설명책임 장치 작동 실태 점검 △설명책임 장치 평가 기준 설정 등에 대한 논의를 본격화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정 연구원은 어떤 사안에 대한 설명이나 공개의 의무를 요구받았거나 불만 또는 의견이 제기됐을 때 발생하는 수동적 의미의 ‘응답책임’(answerability)과 달리 설명책임은 방송에 부과된 ‘책임’(responsibility)의 이행 결과와 그 과정, 근거 등을 스스로 평가하고 공개·해명해야 한다는 한층 자발적이고 광범한 함의를 지닌다고 설명했다.

   
  ▲ 지난 23일 서울 신수동 서강대에서 한국언론정보학회 주최로 ‘작은 토론회’가 열렸다. 정수영 성균관대 미디어문화콘텐츠연구소 연구원은 이 자리에서 ‘어카운터빌리티(accountability·설명책임)’ 개념을 소개한 뒤 KBS 등 공영방송이 설명책임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공영방송은 ‘공익에 봉사한다’는 선언 형태의 슬로건이나 자율규범 차원에서 더 나아가 스스로의 활동이 왜 공익에 부합하는지, 어떻게 책임을 이행하고 있는지 등에 대해 명확히 밝히고 시민사회의 이해를 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공영방송 종사자에겐 전문직으로서 스스로의 활동에 관한 근거와 그 내용에 대한 설명 능력이 필수 불가결”이라며 “이의 배양을 위해 지속적인 교육·연수를 충실화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또 “의사참가(pseudo-participation)에 불과한 종전 시민 참여의 의미를 더 확대하는 방안이 모색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공영방송의 자발적 설명책임을 강화할 수 있는 시스템 마련이 시급하다는 주장이 나온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앞서 강형철 숙명여대 교수(언론정보학부)는 공영방송사에 대한 공공기관운영법 적용 논란이 일었던 지난 2007년 ‘공영방송사의 책무와 독립성’이란 보고서를 통해 “공영방송에 대한 책무성(설명책임) 제도는 공식적으로 규정된 의무를 어겼을 경우 벌을 가하는 ‘귀책성’ 모델보다는 최소한의 외부 규제를 두고 사회적·도덕적 토대에서 대화와 토론 등을 통해 자발적으로 책무성을 제고토록 유도하는 ‘답책성’ 모델을 추구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제안했다.

배진아 공주대 교수(영상정보공학부)도 같은 해 발표한 논문에서 “공영방송의 경우 자율적 책무성을 유도하는 게 바람직하다”며 “아직까지 자율적 영역의 책무성 이행은 존재 근거를 만들기 위한 형식적 활동 수준에 머물고 있다. 방송사 스스로 책무성의 내용과 범위를 구체적으로 정의하고 이를 실행하기 위한 적극적 노력이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그러나 KBS 신임 사장 임명을 앞두고 있는 현재가 설명책임 장치 도입 논의의 최적기로 보인다. 23일 토론회에 토론자로 참석한 이강택 KBS PD는 “최근 KBS 사장 임명과 관련한 절차 논의가 본격화하고 있는데 습관적으로 나오는 이야기가 ‘추천위원회’를 만들자는 것”이라며 “하지만 이런 형식은 왜곡되고 밀실화할 가능성이 높은 만큼 공개 공청회나 후보자간 공개 토론 등을 통해 대중에게 알리는 게 더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안창현 KBS 방송문화연구소 일본주재원(도쿄대 박사과정)은 지난해 발표한 논문에서 “시민사회가 공영방송의 경영과 운영, 제작, 평가 등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게 공영방송에 대한 공적 감시를 가능케 하고 공영방송이 권력으로부터 독립할 수 있는 조건을 제공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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