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아미타불. 청산에 탐욕은 놔두고 물처럼 가라하네.”
탁탁탁. 26일 새벽 4시. 종소리와 목탁 소리가 스님의 법문 읽는 소리와 어우러져 화계사 법당 안을 감돌았다. 법당 뒤쪽 바닥엔 두 겹으로 포개진 방석 9개가 깔렸다. 수건과 플라스틱 물병만이 발 앞에 내려다 보였다. 이내 물병, 수건, 방석 높이까지 눈을 맞추고 나서야 1배가 마무리됐다. 지난 23일부터 1주일간 진행되는 최문순 민주당 의원과 보좌진들의 ‘언론악법 원천무효 2만 배 투쟁’의 하루는 이렇게 시작됐다.
▲ 서울 수유동 화계사 대적광전에서 최문순 의원과 보좌진, 지지자들이 하루 3천배를 이어가고 있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 ||
2시간에 400배를 끝낸 뒤 최 의원은 아침 식사를 하며 “힘들지 않아요? 그런데 좀 더 하다 보면 화가 막 치밀어 오릅니다”라고 인사를 건넸다. 기자도 오금이 저리고 허벅지가 찌릿찌릿했지만, 일행 모두 산채비빔밥 한 그릇을 뚝딱 해치웠다.
아침 9시 반에 시작된 두 번째 일정은 녹록지 않았다. 법당 안은 60여 명 신도들의 열기로 달아올랐고, 이마에서 땀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최 의원도 수건으로 땀을 훔쳤다. “중생을 살피시고 고하는 것을 이루게 하옵소서. 관세음보살”이라는 수경 스님의 목소리가 목탁과 어우러져 혼미한 정신을 후려쳤다.
▲ 이치열 기자 truth710@ | ||
11시 반 식당으로 향하는 모습은 ‘패잔병’과 다름없었다. 보좌진들은 “좀비 걸음”이라며 계단을 아예 뒷걸음치면서 내려갔다. 기자의 양쪽 무릎에도 시퍼런 멍이 있었고, 죽비를 내리쳐 왔던 보좌진의 손바닥도 시퍼렇게 변해 있었다.
격려 방문차 온 정청래 전 민주당 의원은 “(보좌진들) 월급도 안 주고 있는데 이러고 있다”며 농을 건넸다. 최문순 의원도 “내 말이 그 말이야”라며 “절하면서 제일 많이 생각나는 게 ‘내가 왜 여기서 이러고 있는가’라는 물음”이라며 웃었다. 그러나 기자에겐 “우리 가족보다도 보좌진들 가족에게 정말 미안하다”며 속내를 털어놨다.
2시부터 4시까지의 일과는 ‘죽음의 시간’과 같았다. 신도들도 없는 조용한 법당 안엔 오롯이 일행만 있었다. 흘러내리는 땀을 손으로 연신 닦아냈고 바지에도 문질렀지만 역부족이었다. 흥건히 젖은 수건을 들며 내쉬는 숨소리가 법당 안을 갈랐지만, ‘언론악법 원천무효 참회와 정진 2만 배’라고 쓰인 책상 앞에서 무릎 닿는 소리는 끊이지 않았다.
불자도 아닌 최 의원이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시민들의 도움이 컸다고 한다. 며칠 전 한 시민이 라디오인·칼라 TV에서 화계사 생중계를 보고 ‘저렇게 절하면 2만 배 절대 못 채운다’며 동국대 불교학과 학생을 화계사로 급파했다고 한다. ‘요령’ 없이 시작했다가 뒤늦게 호흡·절하는 법을 배운 셈이다.
4시 반께 저녁 식사를 마무리하자 시민들의 격려 방문도 뒤따랐다. 그동안 KBS·YTN 투쟁, 노무현·김대중 서거 당시 거리에서 최 의원과 인연을 맺은 사람들이 많았다. 첫날부터 매일 낮 ‘2만배 투쟁’을 함께 해온 주부 서리태(44)씨는 “헌법재판소 판결을 앞두고 남의 일 같지 않아서 함께 하고 있다”며 “29일 함께 기쁨을 느끼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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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의원도 지난 7월22일부터 100일 간 ‘언론악법 원천무효’ 서명운동을 이어온 것도 시민들의 격려 덕분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는 “정치 서명운동이 쇼로 끝나는 경우가 많은데 이번에는 강도 높게 실제로 해왔다”며 “큰 사건”이라고 말했다.
이야기의 핵심 화두는 ‘29일 헌재 최종 결정’이었다. 방문한 시민들은 그동안의 노력이 오는 29일 헌재 최종 결정에서 결실을 맺길 기원했다.
▲ 이치열 기자 truth710@ | ||
▲ 한 시간 절을 하고 나면 법당을 두 바퀴 돌며 5분간 휴식을 취하고 다시 절이 시작된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 ||
최 의원도 “서명운동, 각종 이벤트, 국회 싸움, 선전전 등 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 것을 다 해보는거죠”라며 “객관적 상식적 사고로 보면 미디어법 처리를 정상이라고 볼 수는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날 일정을 마무리하며 최 의원에게 ‘향후 정치활동’을 묻는 질문을 하자 “언론악법 문제로 끝날 게 아니다. 계속해서 싸움을 해야 한다”고 다짐했다. 이날 오후 7시반께 하루 3000배 절을 마무리한 기자의 허벅지엔 두툼한 ‘알’이 생겼다. 또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진다’는 깨달음이 마음 한 켠을 메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