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정론지 르몽드는 10월 17일자 잡지판 별책의 간판 기사로 ‘재팬마니아. 어떻게 일본의 대중문화가 프랑스를 정복했는가 ?’라는 제목의 분석기사를 실었다.

동아시아 문화 대변하는 일본문화

이 기사는 파리 근교에서 지난 7월에 열린 제 10회 재팬 엑스포 현장에서 찍은 일본 아니메와 망가의 주인공 인물들로 변장한 일본대중문화 열광 팬들의 사진을 선두로, 프랑스에서의 일본문화 팬들이 단순한 청소년기의 망가와 아니메 소비 수준을 넘어서고 있음을 보여준다. 르몽드의 기자는 이러한 프랑스 젊은 세대의 일본문화에 대한 열광이 미국의 대중문화 슈퍼맨들에게 식상해 대체물을 찾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미국의 대중문화에 열광했던 부모 세대와 차별화를 추구하는 젊은 세대의 문화적 취향인지를 의문시하고 있는데, 내 견해는 이것이 단순한 청소년기의 취향이 아니라 글로벌 문화화 된 동아시아 문화의 영향력 차원에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프랑스에서 대량으로 소비되고 있는 일본문화의 내용은 사실 목록을 추리기에도 벅찰 정도이다. 만화, 영화, 비디오게임, 일본 팝뮤직, 패션 등등. 이중 프랑스 일본문화 소비의 제일자리는 무엇보다도 만화와 요리와 무술이라고 생각된다. 이것은 프랑스가 만화전통이 깊고 미식문화가 자리하고 있으며 전통적으로 서양무술의 종주국이라는 점에서 짚어낼 수 있다.

프랑스는 자체 만화의 전통이 깊은 나라로 현재 일본만화의 제일 해외시장이다. 2008년 한해만도 일본망가가 1250만 부나 팔린 정도이다. 일본 만화영화는 80년대 말 ‘드라곤 볼’의 폭력성 문제로 일단 주춤했다가 디지털 지상파로 채널이 늘어난 이후 수많은 채널들에서 대량으로 방송되고 있고, 극장용 장편 만화영화들도 큰 성공을 거두고 있다. 프랑스가 세계 유도의 강국이라는 점은 유도를 포함한 공수도, 합기도 등 일본산 무술을 배운 적이 있는 인구의 양이 엄청나다는 사실을 말해주는 것이고, 이것은 프랑스인들과 조금 친하게 되면 쉽게 확인되는 사실이다. 프랑스에서는 미국과 달리 동양인 커뮤니티가 있어 이들을 통해 전파되는 것이 아니라 프랑스인 유단자들이 가르치는 도장이 압도적이다. 다양한 스포츠 시설이 잘 돼있는 프랑스의 일본식당은 즐비한 중국식당보다 수는 적으면서 좀 더 고급스런 음식점으로 자리 잡았고, 파리지역만 넘어서면 찾기 힘든 한국식당을 대신해 지방도시에서는 일본식당에서 불고기와 김치 등 한국음식 메뉴를 일부 제공하기도 한다. 일본식당의 불고기 맛은 별로지만, 기존 일본문화의 소통로를 한국문화가 이용하고 있다는 것은 현재 진행중인 한국 대중문화의 프랑스와 유럽 내 소통을 설명해준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현상이다.
일본문화에 열광하는 팬들의 실질적인 문화적 취향을 엿볼 수 있는 인터넷 포럼들을 관찰해보면, 이들은 단순히 일본문화를 향유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일본문화 소비과정에서 한국, 중국, 홍콩, 타이완을 아우르는 동아시아 대중문화 일반을 접하도록 유도되고 있다는 사실이 발견된다.

일본문화 열광 속의 한국문화 팬들

   
  ▲ 홍석경 프랑스 보르도대 신문방송학과 부교수  
 
프랑스의 동아시아 문화 향유자 개인들의 소비역사를 일괄하기는 어렵지만 대강 일본만화를 보던 청소년들이 일본 드라마와 일본 팝을 소비하다가 일본 것보다 ‘더 잘 만들어진’ 한국 드라마와 한국 팝을 발견하게 되는 경향이 주된 것으로 보인다. 인터넷에서 대량으로 발견되는 프랑스의 드라마 블로그들의 대다수는 일본드라마 사이트라는 간판을 내걸고 있지만, 실제로는 한국드라마를 더 많이 소장하고 있는 경우가 많고, 이들이 자체적으로 매기는 드라마 인기순위에서 단연 한국 드라마가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이들은 한국적 내용과 일본 드라마의 차이점을 동아시아에서의 한류논쟁에서 볼 수 있었던 것처럼 동아시아 정체성 차원에서 접하는 것이 아니라, 맘껏 좋아할 수 있는 배우들과 아름다운 비주얼과 사운드를 제공하는 잘 만들어진 대중문화물에 대해 열광하는 것이다. 이러한 동아시아 문화의 향유가 향후 어떻게 동서 사이의 문화적 상상력의 지형을 바꾸게 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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