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총선이 내년 6월로 예정된 가운데, 주요정당들의 연례 전당대회가 열리기 시작하면서 영국 정가는 이미 선거전(戰)에 들어갔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유권자들의 정치성향을 묻는 여론조사가 날마다 이뤄지고 있고, 각 매체들은 그 결과에 대한 여러 해석들을 내놓고 있다.

여기서 가장 큰 화두는 역시 경제다. 이제 그것을 모르는 “바보”는 없다. 하지만 “문제는 경제야”라는 한마디로 집권을 할 수 있으려면 상대방이 그걸 모르는 바보여야 하는데, 지금 상황은 그보다 복잡하다. 모두가 경제적 실정을 들어 고든 브라운(Gordon Brown) 총리의 실각을 거의 기정사실화 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딱히 대안도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된 데는 무엇보다 현대사회에서 경제라는 것이 이른바 경제전문가들조차도 쉽게 접근하기 어려울 정도로 크게 자리를 잡은 탓이 크다. 냉전이 끝난 직후 치러진 미국 대선에서 빌 클린턴(Bill Clinton) 후보가 당시까지 냉전 상황에서 지고의 가치로 떠받들어지던 국방이란 것도 결국 경제의 일부임을, 즉 더 잘 먹기 위해서는 얼마든지 포기할 수 있는 문제임을 드러냈다면, 이번 범지구적 경제위기는 단순히 금융시스템만이 아니라 국방, 교육, 환경, 복지 등 국정운영과 관련된 모든 활동이 결국 “경제”로 귀결됨을 웅변적으로 보여줬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 강조돼야 할 것은, 그 모든 활동들이 “경제”의 일부라고 말하는 것이 결코 그것들을 “돈”의 문제로 격하시키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사실 과거 신자유주의 상황 아래서는 그랬다. 이때 예컨대 환경이란 “비용-편익의 관점”에서 얼마든 포기될 수 있는 것이었고, 바로 그런 뜻에서 환경은 경제의 일부였다.

이렇게 환경문제가 다른 여러 “더 중요한” 사안들에 가려 무시당하고 있을 때는 환경의 중요성을 당위적으로 역설하는 것만으로 충분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한편으론 환경문제가 더 심각해지고 다른 한편으론 그에 대한 사람들의 의식이 성숙하면서 그것이 진정으로 절박한 문제로 떠올랐을 때, 우리는 적어도 현대사회의 틀 안에서는 그것을 경제의 일부로서 사고할 수 없다.

즉 환경문제란 탄소배출을 둘러싼 논란이 보여주듯 전체 경제의 체질전환과 불가분의 관계가 있다. 현재 내각의 에너지· 기후변화 장관인 에드 밀리반드(Ed Miliband) 의원이 노동당의 차기 지도자로 유력시되는 것도 이런 변화의 일부로 봐야 한다.

아직은 저항도 심하지만 자본의 이해도 이런 상황변화에 맞물려가고 있다. 자본이야 어떻게든 이윤만 챙기면 되며, 굴뚝산업이냐 친환경산업이냐는 중요치 않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보건·복지, 교육 등 모든 분야가 다 그렇다. 인구의 노령화와 함께 노인을 대상으로 한 각종 “산업”들이 자리를 잡은 지 오래며, 그 자체로 엄청난 인원을 고용하고 있는 거대한 산업인 전국민보건서비스(NHS)를 굳이 민영화를 할 필요도 전혀 없다. 전통적으로 교육을 가치 지향적으로 여겨왔던 영국에서도 이젠 그것을 국가경쟁력 차원에서 보다 적극적으로 다루고 있다.

   
  ▲ 김공회 영국 런던대 경제학 박사과정  
 
사정이 이러니 보수당 쪽에서도, 브라운 총리가 국가재정을 파탄에 이르게 했다고 맹비난을 하면서도, 과거와 같이 복지재정을 줄여야 한다거나 공기업을 민영화해야 한다는 식의 주장을 쉽게 내놓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다음 총리자리에 가장 가까이 있다는 보수당의 카메론(James Cameron) 당수는 2006년 말 현재 자리에 오른 뒤 틈날 때마다 “대처리즘”(Thatcherism)과의 결별을 선언하고 있다.

오랜 냉전 뒤 클린턴이 비로소 공론화했던 “경제”의 “큰 경제”로의 전환, 이 변화야말로 경제적으로는 거의 파탄지경에 이르렀으면서도 영국이 오늘날 세계적으로 주도하고 있는 커다란 흐름이 아닐까 싶다. 그런 뜻에서 이번 총선은 사상 처음으로 “큰 경제”의 각축장이 될 것이며, 현재 영국 미디어의 이면에 깃든 암묵적인 의제 중 하나도 바로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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