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순 KBS 사장이 기습적으로 자신의 측근 유광호·김성묵 부사장의 사표를 수리한지 이틀 만인 4일 이사회를 긴급소집해 새 부사장의 임명동의안을 KBS 이사회(이사장 손병두)에 제출했으나 부결됐다. 이로써 새 이사회 구성 직후 무리하게 자신의 직할체제를 만들려던 계획이 사실상 무산됐다.

이번 임명동의안 부결사태는 새 이사들마저 이병순 사장에 등을 돌림으로써 결과적으로 불신임의 효과가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이병순, 기습적 부사장 교체 기도하려다 이사회에 제동

   
  ▲ 이병순 KBS 사장. 이치열 기자  
 
KBS 이사회는 4일 아침 7시30분부터 10시까지 서울 중구 프레지던트호텔에서 부사장 임명동의안 처리를 위한 임시이사회를 열었으나 이병순 사장이 제출한 동의안을 만장일치로 부결시켰다. 이병순 사장은 2명의 부사장 후임으로 김영해 기술본부장 1명만을 부사장 후보로 올려 임명동의를 구했지만 절차와 내용 등 여러 면에서 수용되지 않았다.

KBS 이사회 대변인인 고영신 이사는 부결의 이유에 대해 "첫째, 이병순 사장의 임기가 2개월 20일 가량이 남았는데 부사장을 새로 임명하는 건 시기적으로 부적절하고, 둘째 새 이사진의 임기가 시작한지 3∼4일 밖에 안돼 KBS 업무현황파악이 되지 않은 상황이며, 셋째 부사장 후보에 대해 오늘 아침에야 제출받아 이 인사가 적절한지에 대해 검증할 만한 시간이 촉박했다"고 설명했다.

김영해 부사장 임명동의안 만장일치로 부결…"임기 80일 남기고 새 부사장 임명?"

   
  ▲ 김영해 기술본부장. 4일 이사회에서 부사장 후보로 임명동의안이 제출됐지만 부결됐다. ⓒKBS  
 
고 이사는 "만장일치로 부결시켰다"며 "당초 이사 한 분이 조직의 안정을 위해 동의해주는 것 어떠냐고 했으나, 손병두 이사장이 최종적으로 '안건을 부결하는데 이의가 있느냐'고 묻자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병순 사장이 두 부사장의 사표를 수리한 이유에 대해 "전임 이사회서 퇴직금누진제 등 보수규정안이 두 차례 부결되자 담당부사장이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고 했고, 금품수수 사건과 수리부엉이 파문 등 최근 일련의 불미스러운 일이 있어 사표 제출했다"며 "갑작스러운 사의표명 있었기 때문에 충분히 설명을 못했고, 사표 수리가 2일 됐기 때문에 어떤 사람을 할지 고심하다가 사전에 말하지 못했다"고 양해를 구했다고 고 이사는 전했다.

이렇게 서둘러 부사장 임명동의안을 제출안 이유에 대해 이 사장은 "조직안정의 필요가 있기 때문"이라며 "KBS 내 동요 불안정성 심화될 것같아 급박하게 했다"고 설명했다고 고 이사는 전했다. 고 이사는 "이병순 사장이 다시 부사장 임명동의안을 절차를 갖춰 제출할 수는 있겠지만 임기가 두달여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 현실적으로 동의 요청을 하기 어렵지 않겠느냐"고 밝혔다.

여당추천 이사도 이병순 모두 외면 "이사 임기시작 4일, 업무파악도 안돼"
"절차도 하자…두 부사장 사표 수리하기전 임명동의안 제출, 대상자도 오늘 알려줘"

   
  ▲ 고영신 KBS 이사. ⓒKBS  
 
이병순 사장에 대한 신임여부는 이날 이사회에서는 거론되지 않았다고 이날 참석 이사들은 전했다.

이밖에도 절차 자체도 문제가 있었던 것으로 지적됐다. 이틀 전에 부사장 임명 대상자에 대해 통지를 해야 했지만 이병순 사장은 지난 1일 임명동의안만을 이사회에 제출했을 뿐 대상자는 기재하지 않았다.

더구나 사표가 2일 수리됐는데 임명동의안을 앞서 1일 제출한 것은 절차상 도저히 앞뒤가 맞지 않는 행위라는 것이다. 이 사장은 김영해 부사장 후보를 4일 아침에야 이사회에 제출했다. 또한 통상 오후에 서울 여의도 KBS 본관 3층 회의실에서 열던 이사회를 KBS 외부인 프레지던트호텔에서 새벽같이(7시30분) 연 것도 이 사장이 얼마나 조급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한 KBS 이사는 "이병순 사장이 조직안정을 위함이라고 했지만, 정작 자신은 1일 임명동의안을 보내고 다음날인 2일이 돼서야 부사장 사표를 수리했다. 이것이야말로 조직안정이 되겠느냐"며 "부사장을 교체하고 본부장 이하 팀장까지 모두 인사를 한다는 것은 사실상 직제 개편인데 이렇게 중요한 일이라면 사전에 보고를 했어야 하지 않았느냐. 정신빠진 사람"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또한 "이런 식이라면 전임 사장이 신임 사장의 인사권을 제약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따라 이병순 사장이 제출받은 6명의 본부장 사표에 대해서도 수리할 수 있을지가 불투명해졌다. 이 이사는 "이병순 사장이 부사장임명 동의해주면 조직안정을 위해 본부장 6명 사표수리해서 팀장인사도 하겠다고 했지만 부결됐다"며 "이후엔 현재 본부장들이 부사장 역할을 분야별로 대행할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고 내다봤다.

"정작 1년 평가받을 사람은 이병순…무리한 직할체제 시도 브레이크, 사실상 불신임효과"

   
  ▲ 손병두 KBS 이사장. ⓒKBS  
 
그는 "다만 본부장들의 거취와 관련해 오는 17·18일 노사 단협에 의한 신임투표가 예정돼있다고 하니 그 상황을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이사는 이병순 사장의 이번 부사장 임명동의안 제출에 대해 "여러 가지 면에서 무리수를 둔 것"이라며 "KBS 공영방송 1년간 이병순 체제에 대해 평가 받을 사람이 이병순 자신인데 스스로에 대한 평가없이 새 부사장 임명을 동의해달라는 건 적절하지 않다"고 비판했다. 그는 "무리하게 직할체제 만들려다가 브레이크가 걸린 것"이라고 밝혔다.

다른 KBS 이사는 "이번 이병순 사장의 행위는 결과적으로 자신이 불신임을 받게 된 효과만 나은 것으로 해석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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