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고등법원은 14일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의 파기환송심 판결에서 삼성 SDS 신주인수권부사채 헐값 발행이 불법이고 이 전 회장은 유죄라고 밝혔다. 재판부는 "이 전 회장 등은 삼성 SDS 신주인수권부사채를 공정한 가격인 1만4230원의 절반 정도에 불과한 7150원에 이(재용) 전무 등이 인수하도록 해 회사에 227억여원의 손해를 입힌 점이 인정된다"고 유죄를 선고했지만, 이 전 회장에게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벌금 1100억원을 선고하는데 그쳤다.

15일자 전국단위 아침신문 대다수에선 이건희 전 회장이 유죄를 선고받았다는 것을 1면에 배치하거나 유죄 선고를 핵심 내용으로 전했다. 그러나 중앙일보의 경우 전국종합지 중 가장 신문 뒷면에 관련 뉴스를 배치했고, "유죄" 표현을 사용하지 않고 단신 처리하는데 그쳤다.

중앙은 지난 2007년 12월 7일 삼성 예인선단이 유조선 허베이스피리트호를 충돌할 당시에도 관련 뉴스를 소극적으로 보도하는 등 잇달은 '삼성 이슈'를 부각시키지 않은 바 있다. 시민사회 단체·학계에선 중앙의 이같은 삼성 '축소 보도'를 예로 들며 신문의 방송 진출시 '여론 독과점' 및 '왜곡'을 우려한 바 있다. 

중앙 동아만 제외하고 7대 일간지 1면 기사…조선도 "이건희 유죄" 꼽아

   
  ▲ 8월15일자 한겨레 1면.  
 
전국종합지 중 중앙과 동아만 제외하고 삼성 재판 소식이 1면을 장식했다. 한겨레는 1면 머리기사로 <이건희 전회장 '삼성SDS 배임' 유죄>를 꼽아 판결 기사를 가장 부각시켰다. 한겨레는 "이건희(67) 전 삼성그룹 회장이 삼성에스디에스(SDS) 신주인수권부사채(BW) 헐값발행에 대해 파기환송심에서 유죄를 선고받았다. 법원은 그러나 이 회장에게 면소 판결한 1심 선고 형량을 그대로 유지했다. 이 때문에 법원이 '봐주기 판결'을 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경향도 1면 기사<"삼성SDS BW 저가발행 유죄">에서 "삼성SDS 신주인수권부사채(BW)를 저가에 발행해 회사에 손해를 입힌 혐의로 기소된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67)에 대해 파기환송심 재판부가 배임 혐의의 유죄를 인정했다"고 전했다.

특히 조선일보도 1면 기사<삼성 이건희 전(前)회장 유죄>에서 "서울고법 형사4부(재판장 김창석)는 14일 삼성SDS 신주인수권부사채(BW)를 저가에 발행한 혐의 등으로 기소된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에 대한 파기환송심 선고공판에서 'BW를 시세보다 낮은 가격에 발행해 회사에 227억원의 손해를 끼쳤다'면서 유죄를 선고했다"고 밝혔다.

   
  ▲ 8월15일자 경향신문 1면.  
 

국민은 1면 기사<"삼성SDS BW 헐값 발행 유죄" 이건희 前회장 집유5년 선고>에서 "삼성SDS 신주인수권부사채(BW) 헐값 발행 사건으로 기소된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에게 유죄가 선고됐다"며 "이번 유죄 판결로 삼성 측은 경영권 승계에는 영향을 받지 않지만, 경영권 승계 등을 위해 회사에 손해를 끼쳤다는 도덕적 책임에서는 자유로울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라고 전망했다.

서울도 1면 기사<이건희 前회장 유죄… 집유 5년>이라고 제목을 꼽았고, 세계일보도 1면 기사<이건희 前회장 집유 선고>에서 "삼성SDS BW 저가발행 유죄"라고 부제목을 꼽았다. 한국일보는 1면 기사 <이건희 前회장 집유·벌금 1100억>에서 "유죄 판결"을 내린 사실을 전했다.

   
  ▲ 8월15일자 조선일보 1면.  
 

동아 10면서 "이건희 유죄"…중앙은 16면 단신 기사서 "이건희, 집유 5년"

동아일보의 경우 10면에 관련 소식을 전했지만, '유죄 판결' 이유를 빠뜨리지 않았다. 동아는 10면 기사<'삼성 BW 헐값발행' 유죄 판결… 경영권 승계 13년 논란 일단락>에서 "파기환송심을 맡은 서울고법 형사4부는 BW의 주당 적정 가치를 1만4230원으로 정해 삼성SDS가 227억여 원의 손해를 봤다고 판단했다. 손해액이 50억 원이 넘기 때문에 공소시효가 남아 있는 특경가법 적용이 가능했고, 이에 따라 이 전 회장에게 유죄를 선고한 것"이라고 보도했다.

   
  ▲ 8월15일자 동아일보 10면.  
 

그러나 중앙은 16면 하단에 관련 소식을 전했고, "유죄"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았다. 중앙은 기사<이건희 전 회장 파기환송심 집유 5년>에서 "서울고법 형사4부(부장 김창석)는 14일 배임·조세포탈 등의 혐의로 기소된 이건희(67) 전 삼성 회장의 파기환송심에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벌금 1100억원을 선고했다"고 전했다.

중앙은 또 재판부 판결을 인용하며 "'이 사건의 BW 행사가격은 적정가인 1만4230원보다 낮은 7150원으로 회사에 227억 원의 손해를 입힌 사실이 인정된다'고 밝혔다. 하지만 '비상장법인 주식의 적정가를 산정하는 기준이 확립되지 않아 이 전 회장 등이 위법성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었다고 보기 어렵고, 행사가격과 적정가의 차이가 지나치게 심하다고 할 수도 없다'"라고 전해 불법 사실을 부각시키지 않았다.

   
  ▲ 8월15일자 중앙일보 16면.  
 
한겨레 "집행유예 애초 불가능…법원 부끄러워해야"…조선 "이건희, 도의적 책임 커졌다"

그렇다면 중앙 단신보도처럼 이번 사건의 의미가 작은 것일까. 오히려 재판부의 '재벌 봐주기 판결' 비판과 더불어 언론의 '권력 봐주기' 보도라는 비판이 제기되지 않을까. 중앙 보도와 달리 상당수 신문에선 법원과 삼성의 책임론을 제기했다.

한겨레는 사설<유죄라도 처벌은 않겠다는 삼성사건 판결>에서 "배임액 227억원이면 4~7년의 중형에 해당하니 이런 점들을 고려하면 집행유예는 애초 불가능한 일이었다. 다른 사람 같으면 중형을 선고할 죄인데도 이렇게 대놓고 봐주면서 어떻게 법 앞의 평등을 말할 수 있겠는가. 법원 스스로 이번 판결을 부끄러워해야 할 이유"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한겨레는 "삼성그룹 경영권 불법승계 사건은 특검이나 법원에서 제대로 규명하지 못했고, 그나마 드러난 불법에조차 법원은 무죄 등 면죄부를 줬다. 이번 파기환송심 판결로 더이상의 처벌도 어려워진 듯하다. 사법정의와 경제정의를 위해선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렇지만 이재용씨로의 경영권 승계가 불법이라는 점만은 이번 판결로 더욱 분명해졌다"며 "삼성의 반성과 책임지는 모습이 있어야 할 때"라고 지적했다.

   
  ▲ 8월15일자 한겨레 사설.  
 

조선일보도 사설에서 "이번 판결로 법적 책임의 무게가 달라지지는 않았지만 삼성과 이 전 회장이 짊어져야 할 도의적 책임의 무게는 더 커졌다고 할 수 있다"며 "특검이나 삼성의 재(再)상고 여부와는 별개로 지난 2000년 법학교수 43명의 고발 이후 9년을 끌어온 '삼성 사건'은 이번 판결로 사실상 마무리됐다. 그러나 삼성이 스스로 과거의 어두운 이미지를 떨쳐내야 하는 과제는 아직도 진행형으로 남아 있다"고 논평했다.

서울도 사설<삼성 거듭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에서 삼성의 사회적 책임을 지적했다. 서울은 "이번 판결로 삼성그룹과 이 전 회장은 최악의 상황에서 벗어났지만 사회적 책임감은 더욱 무거워졌다. 앞으로 국내 1위 기업이자 세계적 글로벌 기업이라는 위상에 걸맞은, 투명하고 건전한 지배구조를 갖추지 않을 경우 국민적 비판은 더욱 강해질 것"이라며 "국가경제 회복을 위해 당면 현안인 일자리 창출과 과감한 투자에 좀더 앞장서라는 질책의 뜻도 있다. '삼성 공화국'이란 오명에서 벗어나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기업으로 거듭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한국일보도 사설<'삼성 재판' 결과 값진 교훈으로 삼아야>에서 "횡령ㆍ배임 등 이른바 화이트컬러 범죄를 공정하게 다루겠다며 양형 기준표까지 만든 법원으로서는 비판 여론을 설득하기 쉽지 않을 듯하다. 법원이 여전히 가진 자와 힘있는 자에게만 너그럽고, 없는 자와 약한 자에게는 엄격하다는 인식을 부추길 것이 걱정스럽다"고 밝혔지만, "그러나 대법원까지 거친 법원 판결은 존중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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