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으로 치닫던 쌍용자동차 파업이 일단락 됐다. 쌍용차 노사는 정리해고 대상자 984명 가운데 48%를 무급휴직과 영업직 전환 등으로 구제하는 내용에 합의했다. 472명이 무급휴직과 영업직 전환으로 남고 나머지 512명은 분사와 희망퇴직으로 회사를 떠날 수밖에 없게 됐다. 지난 2일 사쪽이 협상결렬을 선언했을 때 마지노선으로 제시했던 390명 구제에서 82명 가까이가 늘어난 셈이다.

노조 집행부는 6일 오후 모두 경찰에 연행됐다. 사쪽은 노조에 제기했던 고소고발에 대해 최대한 선처를 요청하기로 했지만 경찰은 이미 폭행과 업무방해, 퇴거불응 등 혐의로 노조 집행부 21명에 대해 체포영장을 발부받은 상태다. 경찰은 마지막까지 공장에 남아있던 458명을 현행범으로 체포했고 이 가운데 98명을 밤샘조사했다. 이창근 기획부장은 6일 저녁 기자들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이 시간 이후로는 기자 여러분들의 전화를 받을 수 없습니다. 정리해고 투쟁 승리하지 못해 죄송합니다. 이명박 정부의 살인폭압정권의 실상을 살 떨리게 경험합니다. 오랜 시간 뵙지 못하겠지만 그동안 감사했어요."

노조가 지난 77일 동안 얻은 게 뭘까. 대부분 언론에는 "정리해고 대상자 48% 구제"가 최종 협상 내용인 것처럼 알려졌지만 실제로는 전체 직원 7135명 가운데 37%인 2646명을 정리해고하기로 했는데 그 가운데 겨우 472명만 살아남은 셈이다. 48% 구제가 아니라 17.8% 구제인 셈이고 무급휴직도 당초 노조가 제안했던 8개월에서 12개월로 늘어났다. 77일 동안 공장 문을 걸어 잠그고 경찰의 강제진압에 맞서면서 얻어낸 성과치고는 초라하다.

   
  ▲ 매일경제 8월7일 사설.  
 
상당수 언론이 생산차질이 1만4590대, 3160억 원에 이른다고 정리하고 있지만 이는 매출손실일 뿐 실제 손실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이보다는 파업으로 인한 브랜드 가치 하락이나 판매망 붕괴, 협력업체들의 연쇄도산의 충격이 더욱 클 전망이다. 5월 초 삼일회계법인이 산정한 쌍용차의 계속기업가치는 1조3276억 원으로 청산가치 9386억 원보다 3890억 원이 많았는데 상당수준 조정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 동아일보 8월7일 사설.  
 
매일경제는 이를 두고 "기업의 운명을 볼모로 삼는 노조의 극한투쟁은 모두를 공멸로 이끌 수 있다는 뼈아픈 교훈을 남겼다"고 확인사살을 했다. 한국경제는 "노조의 집단이기주의가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그 극단적 전형을 보여줬다"면서 "사태 가담자들에게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동아일보는 "법을 무시하고 억지와 폭력에 의존하는 시대착오적 파업이 더 이상 통하지 않음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6일 저녁 MBC 100분 토론에서는 쌍용차 사태를 두고 노사 양쪽을 대변하는 토론자들이 한바탕 설전을 치루기도 했다. 노쪽에서는 "50명 먹을 식량밖에 없는 배에 100명이 타고 있다면 나머지 50명은 뛰어내려야 하느냐"고 질문을 던졌고 사쪽에서는 "기업을 망하게 하는 노조활동이 더 이상 수용돼서는 안 된다"고 반박했다. 양쪽의 입장이 첨예하게 대립했지만 서로의 질문에 정확한 답변을 내놓지 않았고 토론은 핵심을 빗겨나 겉돌았다.

사회를 본 손석희 성신여대 교수는 "그동안 기업들이 실적이 좋을 때는 성과를 적당히 나눠갖다가 어려워지면 노동자들에게 고통을 전담하는데 그쳤던 것 아니냐"면서 "어려울 때를 대비해서 사회안전망을 확충하려는 노력이 필요한 것 같다"고 질문을 던지기도 했지만 논의는 더 이상 진전되지 않았다. 10대 그룹 현금 유보율이 자본금의 10배에 이른다는 사실도 잠깐 논의됐지만 구체적인 대안에는 이르지 못했다.

일단 분명한 것은 누구라도 쌍용차 노동자들의 입장이 되면 같은 선택을 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는 사실이다. 정부와 경영계는 노동유연성을 강조하지만 쌍용차 노조가 내걸었던 구호처럼 해고는 곧 죽음인 현실이 개선되지 않는다면 누구라도 공장 문을 걸어 잠그고 파업에 들어갈 수밖에 없다. 노동유연성을 확보하는 근본적인 해법은 해고가 곧 죽음인 현실을 개선하는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손 교수가 지적하는 것처럼 노사가 성과급을 나눠 갖는데 만족할 게 아니라 이익의 일부를 비정규직 지원이나 향후 경영상황 악화와 정리해고를 대비한 재원으로 적립하는 방법도 가능하다. 더 나가서 사회 전체적으로 노동자 기금을 구성해 사회 안전망을 확충하고 재교육과 재취업을 제도화하는 방안도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단일 기업 차원이 아니라 모든 기업들과 노동운동 진영 전체가 머리를 함께 맞대고 대안을 고민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과격 투쟁 못지않게 노동운동 진영이 반성해야 할 지점도 바로 이 대목이다. 단위 사업장의 집단 이기주의를 넘어 더욱 열악한 사업장과 연대하고 이를 위해 산별노조를 강화하고 비정규직과 중소기업 노동자들의 처우개선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이번 쌍용차 사태를 겪으면서 현대차와 기아차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무관심이 언젠가 자신들에게 부메랑이 돼서 돌아올 수도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쌍용차 사태는 노사의 극단적인 대립이 얼마나 큰 손실을 초래하는가를 보여줬다. 동시에 개별 단위 사업장에서는 좀처럼 그 해답을 찾기 어렵다는 교훈도 안겨줬다. 어느 회사나 어려움에 처할 수 있고 정리해고가 불가피한 상황도 있지만 그때를 대비한 최소한의 사회안전망과 최소한의 노동조건을 사회 전반으로 확산시켜 나가는 것이 노동유연성의 전제조건이다. 그게 노동운동의 과제다.

우리나라에서 산별노조는 싹이 트기도 전에 시들어 가고 있지만 여전히 산별노조와 연대임금이 근본적인 해법이다. 현대·기아차의 놀라운 실적이 중소하청업체들을 착취한 결과는 아닌지, 과연 이들 기업의 노동자들이 귀족노조라는 비난을 받아가면서 높은 임금에 만족해도 되는 것인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쌍용차 노조가 외쳤던 "함께 살자"라는 구호를 함께 생각해 봐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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