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네르바’라는 아이디는 다음 아고라 경방(경제토론방)에서 이름 그대로 신화였다.

익명에 가려진 이 누리꾼은 구체적인 수치에서는 차이가 있었지만 리먼 브러더스 파산에서부터 환율급등, 주식폭락 등 큰 줄기의 경기흐름을 짚어냈다. 누리꾼들은 그에게 열광했다. 그러나 지금 되돌아 생각해보면 누리꾼들이 진짜 열광한 이유는 경기예측이 아니었던 것 같다. 대중들은 이 익명의 누리꾼이 여러 차례 강조한 것처럼 ‘혼란스러운 시기에 피해자가 될 대다수 서민들을 위해서 글을 쓴다’는 대의명분에 열광했던 것이다.

이런 일은 드문 일이었다. 세계 경제에 위기의 그림자가 서서히 드리워지던 순간에도 소수의 학자와 애널리스트들을 제외한 대다수의 전문가들은 사익과 관계에 얽매여 제때에 위기를 경고하지 못했다. 이러한 현실을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었던 대중들은 그렇게 베일에 가려진 인물을 궁금해하며 걸맞은 조건을 가진 가공의 인물을 상상했다. ‘미네르바 신드롬’이라고 불린 이 희귀현상은 공권력에 의해 그의 신원(30대에 무직자)이 까발려지고 이전까지 신드롬을 부추겼던 언론이 인권 침해 기사와 오보를 쏟아낼 때까지 계속되었다.
지난 9일 이제는 신화에서 내려와 인간이 된 미네르바, 박대성(32)씨를 만났다. 그는 검찰에 허위사실 유포 혐의로 기소돼 지난 4월20일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고 2심을 준비 중이다. 그에게 궁금한 것이 산더미처럼 쌓여있었지만 대중들이 가장 궁금해 할 한국경제에 대한 전망을 먼저 물었다.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100년 만의 위기라고 했던 정부당국자들과 경제 전문가들이 지금은 거짓말처럼 경기가 회복되고 있다고 말한다. 몇 달 만에 누가 마법이라도 부렸나. 최근 미국의 실업률은 사상 최고치를 넘었다. 내수시장도 아직 회복되지 않고 있다. 그런데 우리만 위기가 끝났다고 한다. 아직 위기는 계속되고 있다.”

하지만 주가도 오름세고 과거 활황일 때보다는 한참 못 미치는 수준이지만 외국인의 매수도 늘어났다. 또, 비판적인 면도 크지만 어쨌든 정부가 시중에 대규모의 돈을 풀면서 자동차, 건설경기가 회복되고 있다. 그런데도 아직 더 큰 위기가 남았다는 건 지나치게 회의적인 생각이 아닐까.

“주식이 오르는 것은 착시현상에 불과하다. 작전세력이 있는 것이다. (작전세력이) 주가를 올린 뒤 빠져나가 버리면 피해는 고스란히 개인투자자에게 돌아온다. 부동산 경기도 마찬가지다. 우리 정부도 미국과 마찬가지로 가계대출이 심각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빚을 빨리 갚으라고 금리를 내렸다. 그런데 반대로 사람들은 금리가 싸진 은행대출을 더 받아 부동산을 샀다. 오히려 거품이 더 커진 것이다. 지금은 정부가 이 거품을 힘겹게 떠받치고 있지만 곧 한계가 올 것이다. 한계에 다다르면 부동산 거품이 꺼질 것이고, 빚으로 집을 산 사람들 중에 파산이 늘어날 것이고, 금융시장 전반이 위기를 맞게 될 것이다. 미국과 일본이 지나온 길을 우리도 똑같이 밟고 있다.”

위기라고만 하는데 대안은 무엇인가. 그는 이 질문에는 “부동산 자산이 하락했을 때 이를 매수할 정도의 자금이 없고 과도한 대출을 받아 부동산에 투자한 사람이라면 하루라도 빨리 빚을 갚는 방법 밖에 없다”고 짧게 대답했다.

미네르바를 만나기 전부터 개인적으로 가장 궁금했던 것을 질문했다. 한 개인이 거대한 공권력에 의해 억압당했을 때 겪을 수 있는 공포에 관한 것이었다. 그가 최근 글을 쓰면서 자기검열을 하고 있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공포는 잘 알지 못하는 대상에게서 느끼는 건데, 공권력에 대한 속성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공포를 느끼지 않았다”면서도 "개인의 생각을 마음대로 쓸 수도, 표현할 수도 없게 만드는 사회에는 더 이상 희망이 없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는 언론보도에 대해서도 할 말이 많은 듯 했다.

"A+B=C라는 사실이 있다면 그것만 그대로 보도하면 되는데, 언론들은 A+B=E나 F라고 왜곡한다. 날 유명인으로 만들었던 것도 언론 아닌가. 그런데 상황이 바뀌자 사생활을 파헤치고 가족까지 괴롭히는 등 인권침해 보도를 쏟아내는 것을 보면서 언론의 한계를 절감했다. 하지만 그게 현실인 걸 어쩌겠나. 언론인이 아닌 제3자인 내가 언론을 비판한다고 무슨 소용이 있나. 언론에 대해 무엇을 아느냐는 비난만 돌아올 것이다. 언론에 대한 비판은 그래서 언론계 안에서 나와야 한다. 아래로부터 기자들이 잘못을 지적하고 목소리를 내야 언론이 바뀐다. 제3자가 아무리 떠들어 봐야 아무 소용이 없다.”

이런 그가 중앙일보사가 인수한 일간스포츠와 최근 경제칼럼을 3개월 동안쓰기로 계약한 것은 어떻게 봐야 할까. 그는 7월 말 발간될 월간조선 8월호에도 중국경제가 한국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한 글도 기고할 예정이다. 온라인에서 경제대통령이라는 유명세를 얻은 그가 오프라인 매체에 글을 기고하는 것도 그렇지만 스포츠지와 보수성향의 매체에 글을 쓰기로 한 것도 이해가 잘 되지 않았다.

그의 대리인을 맡고 있는 박찬종 변호사 쪽 관계자는 언론사와의 접촉은 박씨가 결정한 것이 아니라고 밝혔다. 해당 언론사로부터 글을 써 달라는 접촉이 있어 박씨와 상의해 기고를 결정한 것이라는 말이다. 특히 일간스포츠는 한 팀이 매달려 미네르바 기획을 준비하는 등 열의가 느껴져 장기 칼럼 기고에 동의했다고 밝혔다. 박씨는 이에 대해 “진보냐 보수냐가 중요한가? 다른 곳에서는 글을 써 달라고 하지 않았다. 그게 전부”라고 잘라 말했다.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박씨는 "한국사회의 양극화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다. 조만간 오프라인 매체 기고가 마무리되는 대로 다음 아고라가 아닌 별도의 인터넷 사이트에 경제뿐만 아니라 사회이슈들을 칼럼으로 게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박씨가 미네르바라는 필명으로 아고라에 썼던 글도 조만간 책으로 묶여 발간할 예정이다.

■ 취재후기

박대성씨는 진짜 미네르바인가. 그를 만나기 전까지 풀리지 않는 의문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박씨는 가짜 미네르바라고 주장해 파문을 일으켰던 신동아의 인터뷰가 조작된 것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진위논란은 일단락됐지만 아직도 인터넷에서는 그가 진짜가 아니라고 의심하는 글들이 올라오고 있다. 새파랗게 젊은 30대 무직자가 아니라 금융계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 50대 이상의 경제전문가가 진짜 미네르바라고 믿었던 사람들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를 만나본 뒤에도 그가 진짜인지, 아니면 가짜인지 판단할 수 없었다. 그의 첫인상은 불안해보였고, 말투도 거칠고 불편했다. 독자들을 대신해 미네르바를 인터뷰했다는 책임감으로 보다 정확한 느낌을 전달하자면 더스틴 호프만이 연기한 영화 <레인맨>의 캐릭터를 만난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러나 그의 경제지식은 최소한 보통 이상이었다. 그는 인터뷰 시간이 길어지면서 친숙한 분위기가 조성되자 불안했던 모습이 줄어들면서 미국과 중국을 포함한 세계경제의 흐름을 비교적 정확하게 설명했다. 그는 우리경제의 부조리한 양극화 구조에 대해서도 열변을 토했다. 예측의 정확성은 앞으로의 경제흐름을 지켜봐야 결론이 나오겠지만 그의 논리는 설득력이 있었다.

2시간의 인터뷰 뒤에도 결국 판단을 내리지 못하고 “당신이 미네르바가 맞느냐”는 직접적인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었다. 그는 이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내가 진짜인지 가짜인지 중요하지 않고, (진위 논란에) 신경 쓰지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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