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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질서를 둘러싼 정당성 전쟁
자본주의 질서를 둘러싼 정당성 전쟁
[해외언론은 지금]금융공황 주범 누구인가 엇갈리는 보도

   
  ▲ 마르크스  
 
자본주의를 비판한 사상가를 들라면 마르크스(Karl Marx)를 첫 손에 꼽을 이들이 많을 것이다.

오랫동안 언론인이기도 했던 마르크스는 수많은 신문칼럼 등을 통해 자본가들과 그들을 공적으로 대표하는 정치인들에 대한 혐오를 숨기지 않았지만, <자본>과 같은 좀 더 진지한 저작에서는 자신의 진정한 비판대상은 ‘개인’보다는 그를 둘러싼 ‘사회관계’ 또는 ‘구조’였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

마르크스의 이런 태도를 어떻게 보느냐를 두고 후대에 와서 주의주의니 구조주의니 하는 여러 입장들이 나왔지만, 정작 개인보단 사회에, 일반 통념에 비춘 가치판단보단 비인격적 물질적 과정에 초점을 두는 태도는 마르크스만의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꽤 오랜 기간에 걸쳐 서구 근대 지성사에서 달성된 하나의 보편적인 과학적 성취였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 마르크스가 비판의 직접대상으로 삼았던 근대경제학은 그 궁극적인 응결체였다.

이는 곧, 이제 사회라는 것이 개인들의 총합으로 환원될 수 없을 정도로 여러모로 복잡해졌다는, 그리하여 이제는 원래 ‘가계의 운영’이라는 뜻을 담고 있었던 ‘경제학’ 대신 ‘정치’경제학이라는 새로운 과학이 사회를 탐구하기 위해 요구되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경제학의 발전을 폭넓은 서구지성사적 관점에서 탐구해온 도날드 윈치(Donald Winch)는 이런 사정을 가리켜, “경제학은 일반 통념에 입각한 고려와 결별하고 그것을 비인격적 경제 제력에 복속시켰다”라고 표현한 바 있다.

위와 같은 배경을 떠올리면, 자본주의 경제를 대중들이 가지고 있는 통념이나 가치관에 입각해서 평가하거나 비판하는 것만큼 부적절한 것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후자와 같은 비판이 전혀 무의미한 것은 아니다. 결국 그런 통념이나 가치관이야말로 인구의 대다수를 구성하는 사람들이 지키면서 살고자 하는 삶의 기준이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범지구적 금융공황이 특히 서구 선진국들에서 심각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 살필 수 있다. 실제로 세계경제는 적어도 최근 40여 년만 놓고 봐도 끊임없이 공황에 시달려왔지만, 그때마다 이 공황들은 때로는 중동 산유국들의 자원이기주의의 탓으로, 때로는 중남미 포퓰리즘적 정부들의 방만한 재정운영이나 동(남)아시아 나라들의 유교적 잔재의 탓으로 얼버무려지곤 했다. 그러나 세계자본주의의 핵심부에서, 그것도 현대 경제의 꽃이라 할 수 있는 금융분야에서 불거진 이번 공황은 마르크스 따위엔 관심도 없던 대중들에게조차 체제 자체의 문제로 다가가고 있는 것이다.

바로 이런 상황에서, 현 사태의 주범임이 명백해 보이는 거대 금융회사의 CEO들이 세계경제를 파탄에 빠뜨려놓고 공황 이전에 미리 약정되어 있었다는 이유로 거액의 보너스를 챙기는 것―과연 이것만큼 대중들의 건전한 상식을 거스르는 현상이 또 있겠는가?

   
  ▲ <야성적 충동(Animal Spirits)>  
 
사정이 이쯤 되면 체제의 옹호자들도 좀 더 세련된(!) 논리를 내놓는 데 나서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 대열의 선두에 예일대의 로버트 쉴러(Robert Shiller)와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이기도 한 미국 UC버클리의 조지 애컬로프(George Akerlof)도 보인다. 그들은 올초 내놓은 <야성적 충동(Animal Spirits: How Human Psychology Drives the Economy, and Why It Matters for Global Capitalism)>에서 그간 경제학이 인간이 본래 가지고 있는 비이성적 성격을 무시해왔다고 비판함으로써, 결과적으로 현재의 공황을 ‘우리 모두’의 탓으로 슬그머니 돌린 바 있다.

다른 한편 HSBC 지주회사의 그룹회장이자 영국국교회 목사이기도 한 스티븐 그린(Stephen Green)은 이달 초, <선한 가치(Good Value: Reflections on Money, Morality and an Uncertain World)>를 냄으로써 ‘맘몬’과 ‘신’ 사이에서 고뇌하는 이들을 위해 둘을 동시에 섬기는 자신만의 노하우(?)를 보여주기도 했다.

말하자면 현재 신문이고 방송이고 할 것 없이 영국 미디어의 경제 분야를 꿰뚫는 하나의 축이 바로 범지구적 금융공황의 와중에서 가치관과 정의관념을 훼손당한 사람들과 이를 고려해 현존질서를 안전하게 재편하려는 세력 사이에서 벌어지고 있는 소리 없는 ‘정당성 전쟁’이다. 이것이 어떻게 귀결되느냐에 따라 우리 미래의 모습도 얼마간은 결정될 것이리라.

한편 비판자의 입장에 선 사람이라면, 이 전쟁의 전선이 앞에서 말했던, 오랜 기간에 걸쳐 벼려져 온 현대사회의 본질적 성격에 대한 문제의식, 즉 ‘사회구조’ 자체에 대한 문제의식에서는 크게 비껴서 있음에 주목해둘 만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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