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가 강풀이 자신의 만화를 무단 '펌질'해도 괜찮다고 밝혔다. 강풀은 6일 포털 사이트 다음에 올린 '손바닥과 발바닥'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기본적으로는 저작권이 존중되는 것은 당연하지만 인터넷 공간은 타인의 존엄성을 해치지 않는 한도에서 자유로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자신의 만화를 펌질했다가 고소당한 독자들의 사연을 소개하면서 "앞으로 내 모든 만화들의 부분 펌질을 허용하겠다"고 밝혔다.

   
 

강풀이 제안한 아이디어는 다음과 같다. 자신의 만화 맨 아래에 손바닥 모양을 그려놓으면 손바닥 크기 정도의 부분 펌질을 허용한다는 의미, 발바닥 모양을 그려놓으면 전체 펌질을 허용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여 달라는 것이다. 강풀은 "이제부터 그리는 내 모든 만화 하단에 손바닥 표시를 하고 이전에 그렸던 만화들에는 손바닥 표시가 없지만 손바닥과 동일하게 적용하겠다"고 설명했다.

강풀은 "저작권법이 지나치게 강화된다면 인터넷 공간에서의 자유로운 표현과 창작이 현저하게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면서 "악의적인 경우가 아니라면 저작권법에 걸린다고 해도 원 저작자가 용인해 주면 대부분의 사건이 원만하게 해결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강풀은 또 "법 이전에 사람들은 상식을 가지고 살고 있다"면서 "인터넷 역시 사람들이 사는 세상의 일부분이기에 상식이 통한다고 믿는다"고 덧붙였다.

   
  ▲ CCL의 4가지 조건.  
 
강풀이 올린 글은 매우 좋은 반응을 얻으면서 곳곳으로 펌질되고 있다. 그러나 원 저작자가 저작권을 포기한다는 사실을 밝히는 건 강풀의 아이디어가 처음은 아니다. 크리에이티브 커먼스 라이선스(CCL, Creative Commons License)은 로렌스 레식 미국 스탠포드대학 교수가 창안한 저작물 이용 규칙이다. 흔히 저작권법이 저작물의 이용을 제한하는 목적이라면 CCL은 일부 예외를 두고 허용하는 형태를 띤다.

"원칙적으로 모든 이의 자유이용을 허용하되 몇 가지 이용방법 및 조건을 부가하는 개방적인 이용 허락"이라는 이야기다. CCL에는 4가지 이용방법과 조건이 있다. 첫째, 저작자 표시, 둘째, 비영리적 목적, 셋째, 변경 금지, 넷째, 동일조건 변경 허락 등인데 저작권자의 의지에 따라 4가지 조건 가운데 필요한 걸 조합해서 쓰면 된다. 이를테면 저작자를 표시하고 비영리적 목적으로 사용하기만 하면 자유롭게 펌질이 가능한 조건을 내걸 수도 있다.

저작권법은 누구나 저작물을 작성하는 순간 배타적인 권리를 부여 받게 되는데 저작권자 가운데는 조건 없는 펌질을 허용해서 되도록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기를 바라는 경우도 있고 영리적 목적만 아니라면 된다거나 변경만 하지 않으면 된다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이용자 역시 저작권자의 의사만 확인할 수 있다면 펌질을 해도 되는지 안 되는지 적법하게 이용할 수 있게 된다.

모든 저작물은 원천적으로 펌질이 금지돼 있지만 CCL이 달린 저작물은 합법적인 펌질이 가능하게 된다. 저작자가 허용하는 범위에서 자유로운 펌질을 보장하되 펌질이 금지돼 있는 저작물을 보호하는 효과도 얻게 된다는 이야기다. 우리나라에서는 2005년 3월 크리에이티브커먼스코리아가 설립돼 40명의 자원 봉사자들이 활동하고 있다. 아직까지 인지도는 낮지만 일부 포털 블로그에는 CCL 기능이 추가돼 있고 일부 언론사에서도 CCL을 채택하는 추세다.

강풀의 손바닥은 CCL과는 비슷하면서도 약간 다르다. 일단 저작자 표시, 비영리적 목적이라는 조건이 포함돼 있지만 변경 금지 또는 동일조건 변경 허락에 대한 내용은 없다. 또한 손바닥 크기의 부분 펌질만 허용한다는 조건도 CCL과는 다르다. 핵심은 표준화다. 강풀의 손바닥과 발바닥이 보편화될 것인지 CCL이 보편화될 것인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규칙을 알아보고 쉽게 따르고 확산시킬지가 관건이다.

다음은 강풀의 '손바닥과 발바닥'이다. 저작자의 허락을 얻어 전문을 게재한다.

   
  ▲ 강풀의 '손바닥과 발바닥'. (저작자의 허락에 따라 전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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