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뜸하다 했더니 또 나왔다. 한동안 신문들이 잠잠하길래 근질거리겠구나 했더니 또 나오더란 말이다. 대학입시 관련 보도 말이다. 97년 대학입시는 아직도 멀었는데 벌써부터 그러니 큰 일이다.

최근 일부 신문들은 한 사설학원이 주관한 모의 수능 성적 분석 결과를 보도하면서 수능 점수별로 지원 가능한 대학과 학과들을 열거한 도표를 실었다. 그렇게 대학과 학과에 서열을 매긴 걸 크게 보도해서 뭘 어쩌자는 건가? 정말이지 이젠 그런 작태에 대해 개탄하기도 지쳤다. 차분하게 대안을 제시해보자.


경쟁과 자율결의

“한국신문협회는 17일 하오 한국 프레스센터 회의실에서 이사회를 열고 일부 회원사가 대학입시 준비생을 위해 본지 및 자매지에 싣고 있는 대학수학 능력 모의문항을 대입본고사가 끝나는 내년 3월부터 게재하지 않기로 결의했다.”

신문들은 지난 94년 11월 19일자에 위와 같은 내용의 기사를 1단으로 신문 한구석에 조용히 실었다. 그러나 이 자율결의는 신문 1면에 대서특필해도 괜찮을만큼 위대한 것이었다! 어느 대학의 예상 커트라인을 1면 머릿기사 제목으로 내거는 것보다는 백배 천배 가치있는 것이었으니까 말이다.

신문들은 그 자율결의를 지금까지 완벽하게 실천하지는 않고 있지만, 그래도 지금은 그 덕분에 많이 나아졌다. 이건 90년대 한국 언론사를 기록할 때에 반드시 한 페이지를 할애해야 할만큼 의미있는 일이었다.

그렇다. 그런 식으로 자율결의를 한다면 지금과 같은 식의 대학입시 관련보도도 얼마든지 개선할 수 있다. 사실 신문들이 앞다투어 ‘독자의 알권리’를 빙자해가며 전혀 바람직스럽지 않은 입시 관련보도를 하는 이유는 상호경쟁때문이다. 그러니 자율결의를 한다면 몇가지 문제는 바로 잡을 수 있지 않을까?

첫째, 수능 점수 따위로 대학과 학과에 서열을 매기는 보도를 하지 말자. 어느 대학에 어느 고등학교가 몇 명이 들어갔다는 따위의 보도도 하지 말자. 서열을 매기는 게 너무 재미있어서 그걸 포기할 수 없다면 다양한 대학평가 방식에 근거해 주도면밀한 준비를 거쳐 서열을 매기면 될 것 아닌가? 그런 서열매김이 합리적이고 대학간 바람직한 경쟁을 유도할 수 있는 것이라면 그건 바람직하다.

둘째, 적어도 신문 1면엔 일개 대학과 관련된 보도를 일체 하지 말자. 기사가 떨어지면 서울대 출입기자 얼굴을 바라본다는 기존의 관행도 내던지자.

셋째, 수능과 서울대 입시의 각 분야별 수석 합격자와의 인터뷰 기사 좀 그만싣자. 그건 올림픽이나 전국체전에서 금메달을 딴 것과는 전혀 다르다.

넷째, 어렵게 대학을 진학한 사람을 ‘인간승리’로 묘사하는 이른바 ‘미담보도’ 좀 그만하자. 공장에서 일하는 젊은 노동자들이 일 팽개치고 학원으로 달려가 그런 ‘인간승리’ 해보라고 부추기겠다는 것인가?

다섯째, 대학입시를 1백여일 앞둔 시점부터 카운트다운에 들어가면서 공부하는 방법에 대해 잔소리 늘어놓는 그런 보도 좀 그만하자.

여섯째, 텔레비전은 드라마와 각종 오락프로그램에서 ‘젊은이=대학생’이라는 등식을 내던지고, 대학생들만을 대상으로 한 프로그램은 다 없애자.

일곱째, 학연주의와 학벌주의를 당연시하고 때론 긍정하기까지 하는 보도 좀 하지 말자. 정 반대로 그걸 끊임없이 문제삼는 보도 좀 열심히 하자.


신문산업 발전을 위해

이 일곱가지 제안 가운데 과격한 것이 있는가? 아마 없을 게다. 다 말된다. 문제는 그런 제안을 다 지켰다간 신문장사가 잘 안될 것이라고 믿는 고정관념이다. 그러나 신문들은 멀리 내다봐야 한다.

우리나라 신문산업의 발전을 위협하는 가장 큰 적은 사교육비다. 자녀 과외비 때문에 보던 신문마저 끊는 사람들 많다. 과외비 아니라면 신문 서너개 볼 수도 있는데 말이다.

신문들은 어떻게 해서든 지금과 같은 대학입시 전쟁을 종전시키고 학연과 학벌을 타파하는 쪽으로 노력하는 것이 신문산업의 발전을 위해 큰 도움이 된다는 걸 알아야 한다. 한국신문협회의 현명한 판단을 기대해 마지 않는다. 나의 제안 가운데 제발 서너개만이라도 받아들여 자율결의 좀 해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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