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여당에서 추진하려는 인터넷 미디어 관련법에 대해 한나라당 소속 정두언 의원이 부정적 견해를 밝혔다. 정 의원은 지난 3일 '디지털시대 표현의 자유'를 주제로 열린 컨퍼런스에서 사이버모욕죄,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의 임시조치 규정 등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것이라고 주장해 눈길을 끌었다.

서울 태평로 한국언론회관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이날 컨퍼런스는 △디지털시대, 인터넷상의 콘텐츠 이용과 저작권 △인터넷상 이용자 및 타인의 권리보호 △법과 제도 등 세 가지 섹션으로 나눠 진행됐으며, 정 의원은 영국 노동당의 데릭 와이어트(Derek Wyatt) 의원과 함께 세 번째 섹션의 발표자로 나섰다.

   
  ▲ 이치열 기자 truth710@  
 
정 의원은 장윤석·나경원 한나라당 의원이 각각 대표발의한 형법·정보통신망법 일부개정법률안에 사이버모욕죄가 포함된 것과 관련 "인터넷의 사회적 파급효과가 더 크기 때문에 가중처벌을 한다는 논리는 공감을 얻기 어렵고" "사이버 모욕죄를 신설해도 네티즌들은 법 제재를 피해 가는 우회적 방법을 개발할 것이기 때문에 효과에도 의문이 제기된다"고 밝혔다.

정 의원은 이명박 정부가 지난해 11월 국회에 제출한 정보통신망법 전부개정법률안에 대해서도 비판했다. 인터넷 게시글로 권리를 침해받은 사람이 ISP(Internet service provider: 인터넷 서비스 사업자)에 삭제를 요청할 수 있게 한 현행 '임시조치제도'에 더해, 정부가 '미이행시 과태료를 부과'한다는 내용을 추가함으로써 자의적 판단과 검열 남용으로 인한 표현의 자유 침해가 우려된다는 지적이다.

그는 'ISP에 모니터링 의무를 부과'한다는 규정에 대해서도 기업에 비용 부담을 지우고 이용자 정보 유출 문제 등이 발생할 수 있다며 "도입에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구글의 경우 자의적 제거로 인한 표현의 자유 위축 문제에 대처하기 위해 삭제와 동시에 비영리 웹사이트인 'Chilling Effects 정보센터'에 제거가 행해진 사실과 함께 제거된 정보 내용을 게재하고 있어 국내 ISP들이 참고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정 의원은 지난 2007년 시행된 제한적 본인확인제(인터넷 실명제)에 대해 '유튜브 사태'가 보여주듯 규제의 실효성에 의문이 든다고 했다. 그는 "본인 확인 방법이 단지 실명을 확인하는 데 그치기 때문에 명의 도용 등 회피가 가능"하고 "우리나라에 법인 형태로 들어와 있지 않은 외국계 기업이 해외에 서버를 둔 경우 국내 규제를 적용하기 어려워 형평성 문제"가 생기는 데다 "이 같은 상황을 이용해 사이버망명"을 떠나는 사람들도 있어 결국 제한적 본인확인제는 악성댓글을 줄이는 근본적 처방이 아니라고 말했다.

정 의원은 대안으로 "현재 올바른 사이버 문화형성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돼 가는 시점이기 때문에 기존 현행법체제 아래에서 집행기준을 체계화하고, 누리꾼에 대한 인터넷 윤리교육을 강화하는 방안 등을 모색하는 것이 제재를 강화하는 일보다 우선해야 할 것"이라고 제시했다. 그는 무엇보다 "향후 인터넷 정책 방향은 자율규제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 이치열 기자 truth710@  
 
이날 토론자로 나선 유남영 국가인권위원회 상임위원은 "정 의원의 전향적 생각에 감사하다"며 "입법과정에서도 반영돼야 한다"고 말했다. 유 위원은 "국가의 직·간접 규제가 인터넷 이용자들에게 거짓말하지 말고 품위 있게 쓰라는 의미라고 하지만 대중은 '국가가 너를 감시한다. 함부로 하지 말라'는 메시지로 받아들이게 된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특히 "지도층 인사들의 발언을 들으면 인권 수준에 대한 자만심을 넘어 오만함이 읽힌다"면서 "그동안 성취한 게 있지만 그에 만족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

한편 방송통신위원회·문화체육관광부가 언론인 베델(한국명 배설:1872 1909) 선생 서거 100주년을 기념하는 의미에서 주한영국대사관과 공동으로 주최한 이날 컨퍼런스는 애초 '표현의 자유'보다 '규제'에 방점이 찍혔다.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은 개회사에서 "오늘 컨퍼런스는 억눌린 한국 사람들의 대변인이자 표현의 자유를 실천하신 어니스트 베델의 100주년 기념의 일환으로 개최되는 것으로 매우 의미 있다"면서도 "창조와 변화의 메카인 인터넷이 사이버 테러와 거짓 정보, 악성 댓글 등으로 위협받고 있다. 오늘 컨퍼런스에서 인터넷 역기능의 효율적 대응방향과 실천방안이 모색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기조연설을 통해 "오늘 우리가 직면한 문제는 인터넷을 규제할 것이냐 말 것이냐가 아니라 어떤 종류의 규제를 어떻게 선택할 것이냐"라고 할 수 있다며, 포털을 정정보도청구 대상에 포함시키고 사이버모욕죄를 신설하는 정부·여당의 방향에 대해 "환영할 일"이라고 했다. 그는 "현실에서 법률이 적용되듯 사이버 공간의 사회적 활동에도 그 나름의 법칙이 적용돼야 한다"며 "인터넷은 더 이상 법적 진공상태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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