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에는 일본 미디어도 즉각 반응했다. 방송은 속보를 내보내고, 각 신문에서는 당일 석간 일개 면을 할애했고 관련 사설도 실었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왜 죽음에 이르렀는지’에 대해서는 한국의 역대 대통령의 ‘비극’과 부정한 돈이 제공되는 정치풍토를 들면서 그간의 정황을 전했다. 이명박 정권의 정치적인 의도에 대한 지적도 있었다. 하지만 ‘왜 많은 사람들이 전직 대통령의 죽음을 그렇게 애도하는 지’에 대해서는 거의 주목하지 않았다. 

추모열기에 당황하는 일본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되자 일본에서는 인권변호사 출신의 서민파 대통령의 출현에 한편으로 불안을 느끼면서도, 인터넷을 구사한 디지털 민주주의가 만들어낸 대통령으로 주목했다. 하지만 2006년에 독도문제를 둘러싸고 한일관계가 악화되자 노무현 대통령을 바라보는 시선은 급변한다. 이후 진행된 과거사 관련법의 제정에 있어서도, 그것이 한국 사회의 미해결의 과제를 위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보수지에서는 ‘반일법’이라고 비난하거나, 진보지마저도 ‘쓸데없이 일한관계를 악화시키는 것은 곤란’하다고 하여 대외적인 측면에서만 바라보게 된다. 결국 ‘햇볕정책’을 계승한 노무현 정권은 납치문제 해결에 도움이 안 돼는 ‘좌파정권’이 된다.

천황제가 건재한 일본에서는 최고 정치권력자의 죽음 자체가 일반 시민의 추도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정치인이 권력과 돈에 관련해서 자살하는 일도 드물지 않아,  한국 전직 대통령 서거는 권력과 돈에 관련된 오랜 폐습의 한 단면으로 비춰질 뿐이다. 청렴을 내세워 구세력을 비판했던 ‘좌파정권’도 결국 전임자와 같은 불행한 결말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라는 것이 대체적인 시각이다.

그런데 ‘수뢰한 대통령’의 죽음이 어찌하여 끊임없는 애도의 물결을 일으키는지에 대해서 정면으로 다가서려는 언론은 없었다.

서거 직후 북한은 핵실험을 강행했다. 지난 4월의 ‘미사일’ 발사 때와 같은 충격이 휩쓸었다. 이와 관련한 전문가 대담프로에서는, 한국의 PSI 전면참여에 대한 북측의 반응을 두고서, 북한이 ‘선전포고’를 했는데도 한국에서는 한가하게 조문 따위나 하고 있는지라며 납득할 수 없다는 분위기였다. 이러한 대담 내용이 상징적으로 보여주듯이, 일본은 북한과의 교류협력을 증진시킴으로써 충돌 위험을 제거하고 평화공존을 지향한 김대중-노무현 정권을 통해 한반도 위기의 본질이 어디에 있는지 한국 국민이 간파하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한 채, 노무현 서거에 이은 추도의 의미를 놓치고 말았다.

거듭 말하지만 중요국일지라도 그 나라 전직 대통령 유고에 있어서 사회 내부의 동력 변화를 감지하는 것은 쉽지 않고, 독자들에게는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보도사진에서도 엿볼 수 있는 한국의 애도 정국을 바라보는 일본 언론의 시선은 참담하다. 각 신문은 추모 현장으로 전통적인 방식으로 애도를 표현하는 시민들의 모습을 담았다. 거기에는 뉴욕타임즈의 사진에서 다가오는 슬픔과 분노가 응축된 한 사람 한 사람의 표정은 없었다. 이국적인 추모 풍경이 볼거리였던 것이다.

추모 분위기에 의문을 품은 것은 보수지인 산께이신문이었다. 그런데 그 해답은 한마디로 하면 ‘감정이입하기 쉬운 한국인이 국가원수의 죽음에 가슴 아파하여 일어난 군중심리’이다. 

   
  ▲ 현무암 일본 홋까이도대 교수 (국제저널리즘 전공)  
 
정치에 있어서의 ‘진정성’

한국과 일본은 각각 민주주의의 과제가 같을 수 없다. 그럼에도 선거를 앞두고 여당이 대대적인 선심정책을 펴고 야당이 ‘우애’를 캐치프레이즈로 정권교체에 도전하는 속에서, 한국 시민사회가 노무현 추모를 통해 확인한 ‘진정성’의 의미는 결코 남의 일만은 아닐 것이다.

일본에 노무현의 ‘진정성’을 설득할 의도는 없다. 하지만 애도 정국의 저류에는 한 정치인이 남기고 떠난 ‘진정성’에 대한 갈구가 있음을 전파하는 것은 시민사회의 연대를 위해서도 필요하다. 아쉽게도 일본은 정치에 있어서 ‘진정성’의 의미를 깨우칠 기회를 끝내 놓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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