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리해고 압박을 받아왔던 쌍용자동차 노동자가 뇌출혈로 사망하면서 노동계의 분노가 그야말로 폭발 직전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쌍용차 노조는 28일 쌍용차 평택 공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노동자들에게 고통과 절망을 안겨주는 정리해고를 즉각 철회하라"고 요구했다. 쌍용차 노조는 지난 22일부터 공장 문을 걸어잠그고 옥쇄파업을 벌이고 있다.

노조에 따르면 23일 사망한 엄인섭(41)씨는 공장 점거 총파업 이틀째인 지난 23일 오전 10시30분께 경기도 안성시 공도읍 자택에서 뇌출혈로 쓰러져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4일 만인 27일 오전 11시40분께 서울 아산병원 중환자실에서 숨졌다. 병원이 밝힌 사망 원인은 신경성 스트레스로 인한 뇌출혈이었다. 정리해고 압박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는 이야기다.

   
  ▲ 지난 22일 오후 경기도 평택시 쌍용차 본사에서 열린 쌍용차 총파업 출정식. 연합뉴스.  
 
쌍용차 노조는 "'정리해고는 살인이다'라는 구호가 세상 물정 모르는 우리들의 정치적 수사로 끝나길 바랐지만 끝내 죽음을 불러왔고 한 가정의 단란한 삶과 아이들의 미래를 빼앗아 갔다"고 주장했다. 노조에 따르면 엄씨는 "파업에 참여하면 정리해고 대상이 된다"는 사쪽의 압박을 받으면서 파업 참여 여부를 놓고 고심해 왔던 것으로 전해졌다.

쌍용차 노조는 "경영 파탄에 책임이 없는 애꿎은 노동자들이 왜 이토록 고통과 죽음으로 내몰려야 하느냐"면서 "'2명 가운데 1명은 잘려야 한다'면서 '뼈를 깎는 구조조정이 필요하다'는 정부와 채권은행의 주문은 곧 노동자들의 삶을 벼랑으로 내모는 무서운 사주행위"라고 비난했다. 노조에 따르면 87% 이상의 조합원이 빚을 지고 있을 정도로 경제적 어려움도 가중돼 있는 상황이다.

쌍용차 노조는 언론 보도에 대해서도 불판을 터뜨렸다. 이창근 기획부장은 "'구조조정 없으면 청산'이라는 얘기를 단순 인용하는 언론은 사실 전달을 넘어 노동자들을 협박하고 있다"면서 "'공장점거'와 '옥쇄파업' 보도를 뒤따라야 하는 것은 '쌍용차 먹구름'이 아니라 "노동자의 고통'이나 '절망속의 유일한 선택'이 돼야 하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상급단체인 민주노총과 금속노조도 이날 각각 성명을 내고 "고인의 죽음은 최근 집단 정리해고 움직임과 무관하지 않다"면서 "일자리가 곧 목숨과 같은 근로자에게 정리해고 협박이 주는 고통은 살인에 이르는 위해와 같다"고 주장했다. 민주노총은 "더 이상의 비극이 생겨나기 전에 즉각 노조와 대화에 나설 것을 엄중히 촉구한다"고 밝혔다.

한편 노조와 대화를 거부하고 있는 쌍용차는 엄씨의 사망과 정리해고는 무관하다는 입장이다. 사쪽은 이날 해명자료를 내고 "고인의 사망원인을 인력조정 및 파업참석과 관련한 스트레스와 연관짓는 것은 죽음을 다른 의도로 확대해 나가고자 하는 것"이라며 "유가족에게 깊은 애도를 표하며 유가족에 대한 회사 차원의 지원이 이뤄지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엄씨의 사망은 29일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결식 이후 주말 대규모 집회와 맞물려 향후 반정부 시위의 기폭제가 될 가능성도 있다. 주말인 30일부터 용산참사 범대위의 범국민대회와 공공운수연맹 집회 등을 시작으로 시민단체연대회의의 시국모임(6월2일), 100만 촛불계승대회(6월10일) 등 대규모 도심 집회가 줄줄이 예정돼 있고 민주노총 등의 조직적인 참여도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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