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를 지켜보는 검찰 출입기자들이 하나 둘씩 반성 내지 고민의 글을 통해 의견을 내고 있다.

MBN 기자에 이어 27일 김요한 SBS 기자(2006년 입사·법원 검찰 출입기자)는 SBS 홈페이지 <취재파일> 블로그에 올린 '책임지지 않는 언론 비겁한 기자가 되지 않으려면...'이라는 글에서 "많은 분들이 그러시겠지만.. 이번 일로 참 많은 생각을 하게되었고, 또 하고 있다. 제 출입처가 검찰과 법원이다보니 그 어느 때보다 생각의 깊이가 깊다"며 먼저 안희정 민주당 최고위원이 지난 23일 봉하마을에서 이명박 대통령과 검찰, 언론을 향해 터뜨린 격정을 소개했다.

김요한 SBS 기자도 블로그에 글 "책임지지 않는 언론 비겁한 기자가 되지 않으려면"

"이명박 대통령 당신이 원하신 결과가 이겁니까, 대한민국 검찰, 당신이 원한 결과가 이겁니까, 조중동 당신들이 원한 결과가 이겁니까! 한없이 분노합니다. 대통령을 지켜드리지 못해서 정말 죄송합니다. 검찰 수사가 스포츠 중계입니까? 전직 대통령이든 평범한 시민이든 누구에게나 인권이 있고 대한민국 헌법은 그 인권을 보장하라고 존재합니다. 검사들의 의심은 사실인양 매일매일 언론에 대서특필하고, 보도하고 그래서 그것이 재판 결과에 어떤 결과가 나온든 누구든 책임지지 않으면서 언론과 검찰은 핑퐁게임하듯 주고받으면서 전직 대통령의 명예를 훼손했고 시정 잡배로 만들었습니다. 대한민국에 대한 모욕입니다. 대통령 개인에 대한 모욕이 아닙니다."

김 기자는 "안 최고위원의 말을 듣는 동안 가슴이 먹먹해졌다"며 "망치로 뒤통수를 세게 후려 맞는 듯 했다"고 털어놨다.

김 기자는 "제가 뜨끔했던 건, 실제로 비슷한 생각으로 고민해본 적이 있었기 때문"이라며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이런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하나, 어떻게 풀 수 있을까 생각했"지만 "아직 명확한 결론을 내리지는 못했다"고 했다.

   
  ▲ 김요한 SBS 기자가 노 전 대통령의 서거와 관련해 27일 새벽 SBS 홈페이지의 블로그에 올린 글.  
 
'검찰-언론 주고받으며 노 전 대통령 시정잡배로' 안희정 위원 말에 "가슴 먹먹해져…뒤통수 후려 맞은 기분"

김 기자는 그 이유에 대해 "수사권이 없는 언론은 소위 말하는 '실체적 진실'을 밝힐 강제적인 수단이 없다…심증은 가지만 물증이 없는 경우도 있고, 작정하고 달려드는 경우 물증이 있는데도 속는 경우도 있다. 본의 아니게 오보를 내게 되는 경우가 있다"고 전했다.

김 기자는 "오보로 인해 피해를 보는 사람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그런 사람들의 피해를 어떻게 보상할 것이냐는 문제가 생기"는데 "저의 고민도 '간혹 발생하는 피해에 대한 보상이 충분한가'에 대한 것"이라고 했다.

헌법상 인권을 침해받지 않고 무죄추정의 원칙에 따라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갖고 있다는 점에 대해 그는 "수 많은 매체와 매일같이 치열한 속보 경쟁을 하며 살아가고 있는 현실을 감안해 본다면 '내용을 알고도 오래 묵혀두라'는 요구는 현실성 없는 대안"이라며 "검찰 수사 단계에서 많은 기사가 나오는 것은 <속보>가 생명인 언론의 속성 때문이기도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언론 수사권 없어…속보경쟁 현실 감안 오해 묵혀둘 수 없어"

그는 속보성 못지않게 중요한 정확성을 위해 언론은 양쪽의 주장을 최대한 공정하고 공평히 담아 전달하는 방법을 택함으로써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으려는 노력을 거듭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사건기자 생활을 오래한 자신의 경험을 들어 "'만약 누군가 작정하고 저를 무고하게 고소하고, 그래서 그것 때문에 검찰이나 경찰에 불려가서 피고소인 내지는 참고인으로 조사를 받았는데, 누군가가 이 내용을 알아내 보도하고,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보도된 내막이 사실인지와 상관없이 "에이.. 아니 땐 굴뚝에 연기나겠어?"하고 낙인 찍고 만다면.. 난 어떻게 해야할까?'"라며 "유명인사가 아니니 그렇게 될 일도 없겠지만, 그다지 상상하고 싶지 않았다"고 했다.

"노 전 대통령 성공신화 비극으로 끝나 속상해…칼 무책임하게 휘두르지 않겠다"

김 기자는 "노 전 대통령이 투신한 이유를 아무도 알 수 없으니, 검찰 수사와 보도 내용이 실체적 진실에 얼마나 접근했는지도 이제는 확인할 수 없게 되어버렸다"며 "그러나 실체적 진실이 무엇이었는지와 상관없이 이런저런 상황으로 답답했을 노 전 대통령의 마음이 어렴풋이 짐작이 된다. 정치적 평가가 어떻든, 꿋꿋하고 당당하게 이룬 그 분의 성공신화가 이렇게 참담한 비극으로 끝이 난 것이 너무도 속상하고 가슴이 아프다"고 밝혔다.

김 기자는 "당장 명쾌한 해답을 얻어낼 수 없는 문제지만, 남은 기자생활 동안 대안을 얻어내려 노력하겠다"며 "그리고 제게 쥐어진 큰 칼을 무책임하게 휘둘러대지 않겠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명복을 빈다"고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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