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를 두고 노 전 대통령의 검찰 수사상황 속보를 맡아온 한 현직 대검찰청 출입기자가 25일 포털 사이트에 '특종과 팩트의 신화에 사로 잡혀 제 스스로 가해자가 되고 있다는 사실을 망각했다'며 '용서를 빈다'고 사과의 글을 올려 관심을 모으고 있다.

안형영 MBN 기자는 이날 포털 사이트 다음 '아고라'의 토론 게시판에 '염치 없는 한 기자가 올립니다'라는 글을 올려 "저는 노 전 대통령의 서거로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는 수많은 기자 중의 한명"이라며 "기자라는 신분을 떠나 한 국민으로서, 노 전 대통령의 지지를 보낸 한 사람으로서 참 비통하고 서글펐다"고 썼다.

   
  ▲ 25일 안형영 MBN 기자가 다음 아고라에 올린 글 전문.  
 
안 기자는 "남의 일이라고, 그래도 살 사람은 살아 간다고, 뭘 그리 침울해 하냐고, 그렇게 애써 자위해 보려 했지만 참담한 심정을 감출 수가 없었다. 그리고 저를 돌아보게 됐다"며 "경쟁의 쳇바퀴 속에서 누군가를 난도질하면서 불감증에 빠져 있었던 건 아닌가 하는 생각, 수사를 진행하는 검사들과 수사관들을 만나면서 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다른 기자들이 챙기지 못하는 사실. 바로 특종이었다"고 털어놨다.

그는 "더 솔직히 고백하자면  누군가에겐 대못이 될 수 있는 그런 끔찍한 사실이었다"며 "그게 기자의 업보인지도 모르겠다. 누군가에게 대못을 박더라도 사실을 보도해야 하는 것. 하지만 그 알량한 '팩트', 그 신화에 사로 잡혀 제 스스로 가해자가 되고 있다는 사실을 망각해 왔던 것 아닌지"라고 되물었다.

안 기자는 "노 전 대통령 서거. 용서를 빈다"며 "바보 노무현. 당신은 저에게 우리 역사가 결코 강자만의 것이 아닌, 기회주의가 득세하는 것이 아닌, 굳센 신념이 승리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 준 스승이었다. 안녕히 잘 가십시오"라고 전했다.

다음은 안 기자가 다음 아고라에 올린 글 전문.

염치 없는 한 기자가 올립니다.

황당하고 당혹스러웠습니다.

오전 11시, 휴일의 단잠에 취해 꺼져 있던 휴대폰을 켠 순간 시야로 들어오는 문자 하나. 

"노무현 자살"

문자를 보낸 장본인이 토요일부터 휴가예정이었던 후배라서 장난인 줄 알았습니다. 장난도 심하게 친다 싶어 전화를 하려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켠 TV.

그러나 TV는 벌써 노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으로 도배가 된 상황이었습니다.

경황없이 옷을 챙겨 입고 뛰어간 곳은 대검찰청.

그렇습니다. 바로 노 전 대통령의 수사를 진행하고 있는 곳입니다. 

그리고 저는 노 전 대통령의 서거로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는 수많은 기자 중의 한명입니다.

오늘 하루 대검찰청에 앉아 기사를 작성하면서도 도대체 왜 이런 일이 일어나야 하는 건지 알수가 없었습니다.

기자라는 신분을 떠나 한 국민으로서, 노 전 대통령의 지지를 보낸 한 사람으로서 참 비통하고 서글펐습니다.

남의 일이라고, 그래도 살 사람은 살아 간다고, 뭘 그리 침울해 하냐고...그렇게 애써 자위해 보려 했지만 참담한 심정을 감출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저를 돌아보게 됐습니다.

폭주하는 기관차마냥 경쟁의 쳇바퀴 속에서 누군가를 난도질하면서 불감증에 빠져 있었던 건 아닌가 하는 생각.

매번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뇌리를 스쳤다, 또 다시 시간이 가면 모래사막에 자취를 감추는 오아시스마냥 사라지는 그런 생각.

하지만 걸음마를 막 뗀 기자생활 7년차. 이제는 진지하게 생각해 봐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도 해 봅니다.

과연 내 스스로 노 전 대통령 앞에 떳떳할 수 있는지. 여론의 비난처럼 검찰의 발표를 스피커마냥 확대 재생산하진 않았는지?

당하는 사람의 심정을 헤아리지 못한 채 특종에 눈이 멀어 사실을 과대포장하진 않았는지?

이런 자문에 저는 스스로 떳떳하다고 당당히 말하진 못하겠습니다. 팩트 한개를 챙기기 위해 들이 부었던 숱하게 많은 날들과 몸을 버려 가며 들이 부었던 술들. 그리고 피폐해져 가는 삶.

그런 것들로 위안을 삼으려 해도 그건 핑계에 불과할 겁니다.

수사를 진행하는 검사들과 수사관들을 만나면서 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다른 기자들이 챙기지 못하는 사실. 바로 특종이었습니다.

더 솔직히 고백하자면  누군가에겐 대못이 될 수 있는 그런 끔찍한 사실이었습니다.

그게 기자의 업보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누군가에게 대못을 박더라도 사실을 보도해야 하는 것.

하지만 그 알량한 '팩트', 그 신화에 사로 잡혀 제 스스로 가해자가 되고 있다는 사실을 망각해 왔던 것 아닌지?

노 전 대통령 서거. 용서를 빕니다.

바보 노무현. 당신은 저에게 우리 역사가 결코 강자만의 것이 아닌, 기회주의가 득세하는 것이 아닌, 굳센 신념이 승리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 준 스승이였습니다.

안녕히 잘 가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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