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소식을 전하고 있는 KBS가 봉하마을과 시청 앞 대한문에 마련된 분향소 등 취재현장에서 또다시 시민들의 냉대와 비난을 사는 등 KBS 보도에 대한 시민들의 불신이 극심한 것으로 나타났다.

KBS의 한 촬영기자는 26일 "노 전 대통령 추모 현장(대한문 앞 분향소)에서 시민들이 KBS에 호의적이지 않다"며 "(노 전 대통령 서거 후 주말 이틀간) 야간엔 평상시 KBS에 반감을 갖고 있던 이들이 폭력과 욕설을 퍼붓고, 촬영하면 일부 과격한 시민들이 때리기도 하며, 발로 딛고 카메라 촬영을 위해 설치한 사다리를 흔들어 취재를 위협하고 있다"고 전했다. 

KBS 노 전 대통령 서거 취재현장서 또 외면·냉대·폭행 당해 "KBS 불신 뿌리깊어"

   
  ▲ 지난 24일 방영된 KBS <뉴스9>  
 
그는 "시민들은 카메라를 비추려 하면 '찍지말라'며 인터뷰를 거부하면서 '1년 만에 KBS가 바뀌었다' '예전의 KBS가 아니다'라며 불만을 터뜨렸다"고 말했다. 그는 "KBS의 논조에 반대하고 거부하면 귀담아 듣겠지만 군중심리도 있는 것 같다. 방송3사 뉴스를 객관적으로 비교해 문제가 있다면 수용하겠다. 이들은 '나가지도 않을 것 왜 찍냐'고도 하는데 내가 아무리 '찍어야 나갈 것 아니냐'고 설득해도 전혀 설득이 되지 않는 상황"이라고 개탄했다.

그는 "우리 뉴스와 SBS 뉴스가 큰 차이가 없는 것 같지만 실제로 KBS에 대한 기대가 남다르기 때문에 그만큼 불신도 뿌리깊은 것 같다"며 "반대로 MBC에 대해선 우리만큼 힘들지 않다"고 덧붙였다.

   
  ▲ MBC 기자가 25일 오후 6시 30분 경 대한문 앞에서 뉴스생방송을 준비하고 있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봉하마을에선 이 같은 불신이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KBS 기자들은 주말동안 봉하마을에서 수백명의 군중들이 KBS 중계차를 끌어내려 하거나 거친 욕설을 퍼붓는 등 강한 거부감을 보여 제대로 된 취재를 하기 힘들었다고 전했다. 카메라기자가 시민들에게 맞는 경우도 발생해 중계차를 마을 뒤쪽으로 옮긴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두고 KBS 보도국의 한 기자는 "(취재진이 이런 취급을 받은 것을 두고) 가슴이 천갈래 만갈래 찢어지고 온 몸에 피가 말라버리는 듯한 느낌"이라며 "내가 사랑하는 KBS가 왜 이 지경이 된 건가"라고 탄식했다.

KBS 한 기자 "내가 사랑하는 KBS 왜 이 지경 됐나…KBS 기자 두들겨맞는 이유 아나"

KBS는 노 전 대통령이 서거한 23일 <뉴스9>를 특집으로 2시간 방송했지만 24일(일요일)부터는 정규시간으로 전환해 방영했다. 톱뉴스를 '노 전 대통령 국민장 거행하기로' 했다는 소식을 배치하는 등 9번째 뉴스까지 장례 절차와 유명인사 조문행렬 등으로 채웠고, 조문객이 물세례를 받았다거나(9번째) 13만 명 이상이 봉하마을 조문을 다녀갔다(10번째)는 소식, 시청앞 대한문 거리 분향소 소식(15번째)은 뉴스 시작 10분이 지난 뒤에야 방송됐다.

   
  ▲ 지난 23일 방영된 KBS <뉴스9> 클로징 멘트.  
 
반면 23일(3시간)에 이어 24일도 메인뉴스 시간을 늘려(2시간) 방송한 MBC는 <뉴스데스크> 톱뉴스부터 4번째 뉴스까지 ('이 시각 봉하마을' '유가족들 하염없는 눈물' '봉하마을 조문 줄이어' '덕수궁 분향소‥온종일 추모 물결' '강남역, 조계사 등 곳곳 추모 인파' 등 시민들의 추모 움직임을 비중있게 다뤄 KBS와 뉴스를 배치 시각에서 큰 차이를 보였다.

SBS <8뉴스>는 '덕수궁 돌담길 따라 추모행렬'을 12번째 리포트로 내보냈다.

"노 전 대통령 가족장으로 결정된 것으로 알려져" 오보 내기도

전체 뉴스 건수에서도 24일 MBC <뉴스데스크>는 모두 55건의 뉴스 중 47건을 노 전 대통령 서거소식으로 8건을 일반뉴스로 내보낸 반면 KBS <뉴스9>는 모두 31건의 소식 중 24건을 노 전 대통령 소식으로 방송했고, 7건은 광주광역시가 유니버시아드대회를 유치했다는 소식 등 일반뉴스를 실었다. SBS는 35건의 뉴스 중 각각 30건(노 전 대통령 서거)과 5건(일반 뉴스)를 실었다.

앞서 KBS는 낮 12시에 32분37초간 방송한 <뉴스특보>에서 25분 동안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소식을 내보내고, 7분37초 동안은 'U대회 광주유치 확정' 등 일반뉴스로 채웠다.

KBS는 23일 <뉴스9>에선 노 전 대통령의 장례가 확정되지도 않았지만 이날 클로징 멘트를 통해 "노무현 대통령의 가족과 장례위원들은 오늘 저녁 노 전 대통령의 장례식을 가족장으로 치르기로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고 보도해 오보를 내기도 했다.

"북한 위성발사 땐 아침뉴스까지 1시간 앞당기더니…" KBS, MBC <뉴스데스크> 시청률도 밀려

이를 두고 KBS 보도본부 내부 게시판에는 "MBC와 SBS가 서거 당일 밤 특집 다큐를 통해 노 전대통령의 삶을 조명하고 다음날 아침 6시 전부터 뉴스속보를 통해 추가소식을 전하는 순간에도 우리는 특집다큐도 하지 않고 다음날(일) 아침 뉴스 역시 평소 일요일과 다름 없이 6시 정규방송을 시작하면서 간단하게 처리했다"며 "지난 4월 초 북한이 인공위성 발사 발표했을 때 하루 종일 관련소식과 특집프로그램으로 도배하다 다음날 아침까지 뉴스광장 시작 시간을 새벽 5시로 앞당기기까지 했던 KBS의 모습은 이번에는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KBS는 지난 4월7일 <뉴스광장> 시간을 특집으로 편성해 오전 5시부터 3시간 동안 방송한 바 있다).

다른 기자는 게시판에 KBS의 노 전 대통령 서거 관련 보도에 대해 "꼭지수만 잔뜩 벌려놨지 내용은 대부분 무채색"이라며 "기자들이 봉하마을에서 쫓겨나고 두들겨 맞는 원인을 아는가. 기자들이 부족한 탓인가. '공정·공익보도' 탓인가. 경찰 버스로 둘러싸여 텅빈 시청광장에서 권력의 비정함을 느끼지 않는가"라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KBS 보도국의 한 관계자는 "KBS에 대해 비난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극히 일부일 수도 있고, 특정한 의도를 갖고 한 것인지 우발적으로 한 것인지 알 수는 없다"며 "정서적인 주장에 대해 어떻게 설명해야 하느냐. 구체적으로 무슨 불만과 의견을 갖고 있는지 한 번 물어봤으면 한다"고 밝혔다.

KBS 보도국 관계자 "구체적으로 KBS 보도에 대한 불만을 얘기해야"

그는 '1억원 손목시계 보도 등 KBS가 노 전 대통령을 흠집내는데 앞장섰다'는 주장에 대해 "방향과 의도를 갖고 보도하지 않으며 절대 흠집내려 하지 않았다"며 "하지만 일각에서 나오는 그런 비판이 부담스럽다. 그래서 특종을 하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도 할 정도다. 정연주 전 사장 체제와 이병순 사장 체제가 갖는 생각은 (보도국 내에서도) 다를 수 있다"고 덧붙였다.

KBS의 지난 24일 시청률은 주말뉴스로는 근 10년 가까이 처음으로 MBC <뉴스데스크>에 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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