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전 대통령 유족과 이명박 정부가 오는 29일 장례식을 서울에서 여는 방안을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노 전 대통령 쪽에서는 최규하 전 대통령 장례식이 열린 서울 경복궁 안뜰을 유력한 후보지로 놓고, 정부 쪽과 협의를 진행하고 있다.

봉하마을 대변인 역할을 하는 천호선 전 청와대 대변인은 25일 공식 브리핑에서 “유족의 뜻에 따라 영결식을 서울에서 열기로 했다”면서 “장소는 최규하 전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경복궁 앞뜰이 바람직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경복궁 앞뜰에서 노 전 대통령 국민장이 열린다면 광화문 일대는 수많은 인파로 가득 찰 것으로 보인다. 교통이 불편한 경남 김해 진영읍의 봉하마을에도 지난 주말 수십 만 명의 추모행렬이 다녀간 것을 고려할 때 서울 한복판에서 장례식이 열리면 수많은 인파가 거리를 메우게 될 전망이다.

정부는 유족의 뜻을 존중하겠다는 뜻을 밝히면서도 경복궁 일대가 현재 공사 중이라는 점을 언급하며 최종 장소 결정을 미루고 있다. 서울 광화문 일대는 이명박 대통령에게 의미가 남다른 공간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 유족, 장례식 서울에서 열기로

   
  ▲ 24일 경남 김해 봉하마을 노무현 전 대통령 합동분향소에서 시민들이 폭우를 맞으며 헌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 대통령은 청계천을 정비하면서 추진력 있는 지도자라는 평가를 받았고, 2007년 12월19일 이 대통령이 대선에서 승리했을 때 지지자들은 청계천 일대에 모여 축하를 나눴다. 그러나 미국 광우병 쇠고기 논란이 쟁점이 되면서 지난해 5월부터 청계천 등 서울 광화문 일대는 수십 만 명의 인파가 정부 정책을 비판하며 촛불을 들었던 공간이다.

이 대통령은 ‘명박 산성’으로 불렸던 컨테이너로 차단막을 설치했고, 광화문은 국민과 소통하지 못하는 ‘MB 불통’의 상징적인 공간으로 떠올랐다. 노 전 대통령이 서거한 이후에도 서울 광화문 일대는 이명박 정부의 이중성을 상징하는 공간으로 자리했다.

전직 대통령이 검찰의 정치 표적 수사 논란 속에 목숨을 끊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국민은 충격과 혼란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23일 오전 충격적인 소식이 알려진 이후 시민들은 자발적으로 서울 덕수궁 대한문 앞에 간이 분향소를 준비했다.

전직 대통령 예우 약속하고 청계광장, 시청광장, 덕수궁 '경찰버스 바리케이드'

   
  ▲ 지난 23일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한 가운데 서울 덕수궁 대한문 앞에 차려진 분향소에서 시민들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연합뉴스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도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우에 어긋남이 없도록 정중하게 모시라고 지시했다”는 이명박 대통령의 얘기를 언론에 전하면서 시민들의 분향과 헌화는 별 탈 없이 이뤄질 것이란 기대도 있었다.

그러나 경찰은 덕수궁 앞 천막 분향소 설치를 곧바로 저지했고, 노무현 전 대통령 영정을 앞에 두고 시민들과 몸싸움을 벌였다. 경찰은 덕수궁 주변을 경찰차량으로 둘러싸 외부에서는 이곳이 노 전 대통령 분향을 하는 곳인지를 전혀 모르게 했다.

서울 시청 앞 광장도 예외는 아니었다. 경찰 버스로 둘러싼 시청 앞 광장은 시민들의 공간과 거리가 있었고, 촛불의 또 다른 진원지인 서울 청계광장 역시 경찰 버스가 시민들의 발걸음을 막았다.

주상용 서울경찰청장 "경찰 버스가 막아주니 분향하는데 아늑"

국화꽃을 든 시민들이 3시간, 5시간에 기다리며 조문을 실천하는 동안 경찰은 방패와 곤봉으로 무장한 채 광화문 일대를 지키고 있었다. 경찰의 덕수궁 앞 행동이 주요 방송사 뉴스로 전해지면서 비판 여론이 일었지만, 경찰의 기본 인식은 달라지지 않았다.

주상용 서울시지방경찰청장은 25일 기자간담회에서 “소통에 문제가 있으니 일부에서는 버스를 치워달라고 요구하지만 일부는 경찰 버스가 막아주니 분향하는데 오히려 아늑하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면서 망언에 가까운 발언으로 논란을 일으켰다. 

주상용 청장은 장례가 끝난 이후 거리 분향소를 유지할 것이냐는 물음에 “장례가 끝나면 상주도 옷을 벗고 복귀하는 것이 원칙”이라며 “계속 분향소가 유지된다면 조금 다른 측면에서 볼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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