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노무현 전 대통령과 언론의 관계는 결코 원만하지 않았다. 집권 초기부터 "신문이 더 이상 국민과 법 위에 군림하고 특권을 누리려고 해서는 안 된다"며 비판을 계속했고 특히 보수성향 언론의 왜곡 보도에 정정보도 요청을 하는 등 정면으로 맞섰고 소송도 불사했다. 집권 후반에는 기자실 통폐합 문제를 놓고 언론 통제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노 전 대통령은 특히 2002년 대통령 선거일을 하루 앞두고 정몽준 후보가 단일화 합의를 파기한 사실을 대서특필한 조선일보가 무가지를 뿌린 것을 거론하며 "당선 뒤부터 일부 언론이 지금처럼 적대적으로 보도한 적이 역대 대통령 때 있었는지 의문"이라고 불만을 털어놓기도 했다 (2003년 5월1일 MBC 100분 토론) .
 
노 전 대통령은 일찌감치 2001년 해양수산부 장관 시절부터 "조폭적 언론의 횡포에 맞서 싸워야 한다"고 주장해 언론과 대립각을 세웠다. 취임 3일 전 오마이뉴스 인터뷰에서는 "지금까지는 소주파티를 하며 '빼달라, 고쳐달라'는 로비를 했는데 이젠 사실과 다른 보도에 대해서는 원칙대로 정정·반론보도를 요청할 방침"이라고 말했고 실제로 그렇게 했다.
 
노 전 대통령은 대선 시절부터 임기 전반에 걸쳐 언론과의 불화를 겪었는데 굳이 이 관계를 개선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다. "참여정부의 언론 정책이 괘씸죄에 걸린 것 아니냐, 제가 찍힌 거지요?"라고 물으면서도 "이것은 개인적인 성향의 문제가 아니고 우리가 민주주의 발전 과정에서 피해갈 수 없는 과정이라는 점을 이해해달라"고 말한 적도 있다.
 
"사실과 다른 엄청난 많은 사실이 마치 사실인 것처럼 기사로 마구 쏟아지고, 누구의 말을 빌렸는지 출처도 불명한 의견이 마구 나와서 흉기처럼 사람을 상해하고 다니고 그리고 아무 대안도 없고 대안이 없어도 상관없고 그 결과에 대해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고 배상도 안하고 그렇게 하는 상품"이라고 비난하기도 했다. (2007년 1월4일 경제점검회의)
 
2004년 1월 국정토론회에서는 "자기가 한 일이 왜곡되게 국민에게 전달되는 것은 절대 용납하지 않겠다는 공직자들의 사명감과 자부심이 있어야 하고 그 과정에서 전달하고 글 쓰는 사람들의 생각을 바꿔 나가야 한다"면서 "일반 국민과 공무원들이 미디어의 차단이나 왜곡을 극복해야 한다"고 당부하기도 했다. 
 
그러나 노 전 대통령의 언론 개혁은 보수와 진보를 막론하고 언론의 거센 반발에 부딪혔고 의욕적으로 내놓는 정책마다 발목이 잡혔다. "대통령 못해 먹겠다"거나 "이쯤되면 막하자는 거지요?" 등의 솔직한 화법이 맥락을 거세한 채 희화화되면서 한때는 "이게 다 노무현 탓이다"라는 자조적인 유행어가 나돌기도 했을 정도였다. 
 
특히 기자실 통폐합은 참여정부의 무덤이라고 불릴만큼 언론과 관계를 파국으로 몰아갔다. 노 전 대통령은 2007년 6월 국정 연설에서 "먼 후일 나는 참여정부에서 가장 보람 있는 정책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언론정책, 언론대응이라고 말할 것"이라면서 자신감을 드러냈지만 언론과 여론의 반응은 결코 우호적이지 못했다. 
 
그 무렵 보수 언론의 사설을 살펴보면 노 전 대통령과 언론의 적대 관계가 어느 정도인지 가늠할 수 있다. "언론을 향한 증오심의 마지막 발작, 병적 귀기(鬼氣)", "사냥개 인간, 강아지 권력"(조선일보 2007년 12월18일), "언론 탄압 광기, 민주언론사를 유린한 망나니"(동아일보 2007년 12월19일)…. 
 
지금까지 그 어느 정치인도 노 전 대통령만큼 언론과 정면으로 맞선 경우는 없었다. 노 전 대통령은 왜곡·편파보도를 일삼는 언론과 타협을 시도하기보다는 언론의 기득권 구조를 타파하는 데 주력했다. 여론의 지지가 생명인 정치인으로서는 치명적인 모험이었지만 노 전 대통령은 언론의 거센 반격에도 결코 의지를 굽히지 않았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노 전 대통령의 언론개혁은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언론의 무차별 공격 끝에 10년 만에 보수 진영에 정권이 넘어갔고 권력을 등에 업은 보수 언론의 기득권 구조는 오히려 강화되고 있다. 이명박 정부가 출범하면서 기자실도 대부분 복원됐고 정부와 한나라당은 조중동 등에 방송 진출을 허용하는 법안까지 마련하고 있다. 
 
노 전 대통령 역시 적대적 언론 관계가 갖는 한계를 인식하고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특히 기자실 '대못질'과 관련, 여론의 거센 역풍을 맞으면서 임기 말 권력 누수를 가속화했다는 지적이 많다. 언론개혁이 참여정부 숙명의 과제라고 강조했지만 끝내 결실을 거두지 못하고 끝난 셈이다. 2007년 1월 국무회의에서는 다음과 같은 발언을 하기도 했다. 
 
"참여정부는 87년 체제를 마감하는 역할을 하고 있는데 가장 중요한 것 중의 하나가 소위 특권과 유착, 반칙과 뒷거래의 구조를 청산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가장 완강하게 저항하고 있는 집단이 바로 언론 집단입니다. 대개 87년 체제의 마무리가 되고 다음 정부에 정권을 넘겨줄 것으로 생각하지만 언론 분야 하나만은 제대로 정리가 안 될 것 같습니다." 
 
노 전 대통령은 2007년 12월26일 청와대 출입기자단 송년 만찬에서 "(언론과) 말로는 건강한 긴장관계라고 했지만 완성하지 못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이 자리에서 노 전 대통령은 많은 말을 하지 않았지만 권양숙 여사는 "(언론의 막강한) 그 무게에 너무 주눅이 들어 5년동안 제대로 뭐하나 하지 못하고 가는 것 같아 아쉽다"고 서운함을 드러냈다. 
 
노 전 대통령의 서거에 언론의 책임도 크다는 주장이 나오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노 전 대통령은 금품수수 의혹이 불거졌던 지난달 12일, 자신의 홈페이지에 "언론이 근거 없는 이야기를 너무 많이 해 놓아서 사건의 본질이 엉뚱한 방향으로 굴러가고 있는 것 같다"면서 "사실과 다른 이야기들이 이미 기정사실로 보도가 되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실제로 언론은 검찰이 흘린 확인되지 않은 피의사실을 받아쓰기에 바빴고 노 전 대통령의 일거수일투족을 좇으면서 선정적인 보도를 쏟아냈다. 오죽하면 홈페이지에 "저의 집 안뜰을 돌려주세요"라는 글을 올리기도 했을 정도였다. 노 전 대통령은 23일 유서에서 "그동안 너무 힘들었다, 주변 사람들을 너무 힘들게 했다"고 밝혔다.

노 전 대통령의 서거는 기본적으로 이른바 박연차 게이트와 금품 수수 의혹 때문이겠지만 정부 비판을 쏟아내는 전임 대통령에 대한 정치적 보복이라는 의혹도 만만치 않았다. 평생을 불의와 맞서 싸워왔던 그를 죽음으로 몰고 간 것은 무너져 내린 명예와 여론의 압박이었다. 범죄를 정당화할 수는 없겠지만 검찰 수사의 배후와 그 의도 여부도 밝혀져야 한다.

홍만표 대검 수사기획관은 지난달 13일 수사 브리핑에서 "최근 솔직히 확인되지 않은 직설적인 보도가 많이 나간 것은 사실"이라고 말한 바 있다. 박지원 민주당 의원은 14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회의에서 김경한 법무부 장관에게 "(검찰이) 우리나라 전직 대통령 피의사실을 공표하면서 코너로 몰아붙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김 장관은 이 자리에서 "검찰에서 피의사실을 공표한 일은 없는 것으로 본다"면서 "조사 받은 당사자나 변호인에게 흘러나온 것으로 언론의 허위보도가 많다"고 해명했다. 노 전 대통령 서거 소식이 알려진 23일 오전 검찰은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를 모두 종결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검찰과 언론은 노 전 대통령의 죽음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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