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 미디어 현실과 전망

미국의 경제 주간지 포브스가 지난 1월 뽑은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언론인 1위는 지난해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이었다. 주목할 부분은 허핑턴포스트의 창업자면서 칼럼니스트인 아리아나 허핑턴이 토머스 프리드먼이나 오프라 윈프리 같은 쟁쟁한 언론인들을 제치고 당당하게 2위를 차지했다는 사실이다. 허핑턴포스트는 사실 언론이라기 보다는 2천여개의 개인 블로그가 들어찬 팀 블로그에 가깝다.

허핑턴포스트는 정치 전문 블로그로 출발했지만 지금은 생활과 비즈니스, 미디어, 엔터테인먼트, 환경 등으로 영역을 넓혔다. 닐슨온라인에 따르면 허핑턴포스트는 방문자 수 기준으로 미국 뉴스 사이트 가운데 20위, AP통신이나 시사주간지 타임보다도 높다. 영국의 일간지 옵서버는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블로그로 허핑턴포스트를 꼽기도 했다. 바야흐로 블로그가 주류 언론의 영역을 넘보고 더욱 강력한 영향력을 갖는 시대가 됐다.

허핑턴포스트의 블로거들은 주류 언론의 기자들과 달리 아마추어들이 대부분이지만 현장의 이면을 파고들면서 주류 언론이 놓치고 있는 팩트와 관점을 날카롭게 잡아낸다. 워싱턴의 정치인들이 아침마다 허핑톤포스트를 읽는 것으로 일과를 시작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발빠른 정보와 참신하고 다양한 관점의 논평, 거미줄처럼 연결된 수많은 링크, 무엇보다도 독자들의 능동적인 댓글과 쌍방향 의사소통이 허핑톤포스트의 차별화된 매력이다.

허핑턴포스트 뿐만이 아니다. 영향력 있는 언론인 25위 안에 5명이 블로거거나 블로그 관련 사업을 하는 언론인이었다. 8위에 오른 조슈아 미카 마셜이 편집장으로 있는 토킹포인트메모는 허핑턴포스트와 함께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블로그로 꼽힌다. 16위의 매튜 이글레시아스나 18위의 글렌 그린왈드, 23위의 케빈 드럼 등도 블로거들이다. 일부 전직 기자들도 있지만 현재는 모두 전업 블로거로 활동하고 있다.

우리나라에도 수많은 블로거가 있지만 전업 블로거는 거의 없고 이들처럼 주류 언론의 영향력을 넘어서는 수준까지는 가지 못했다. 이유가 뭘까. 블로거들은 수익모델의 부재를 첫 번째 이유로 꼽았다. 무엇보다도 일단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돼야 한다는 이야기다. 또한 폐쇄적인 취재 환경도 블로거 저널리즘의 장애 요인으로 거론된다. 애초에 동등한 조건이 아닌데다 보도자료를 받기도 힘들고 아예 현장에 접근조차 할 수 없는 경우도 많다.

   
  ▲ 블로거 미디어봉구 김정환씨.  
 
미디어몽구라는 아이디를 쓰는 김정환씨는 “집회현장에서 블로거들의 취재를 거부하는 일은 거의 없지만 국회나 검찰, 정부 부처는 여전히 벽이 높다”고 말한다. 취재만 허용된다면 어디든지 갈 수 있고 기꺼이 가보고 싶다는 이야기다. 김씨는 자신의 경쟁력을 “할 말을 다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주류 언론의 기자들과 달리 언론사의 입장에 휘둘릴 일도 없고 자본과 권력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다.

구조적인 한계도 많다. 태터앤미디어는 지난 대통령 선거 때 대선 후보들을 초청해 블로거들과 간담회를 추진했는데 기자 간담회는 가능하지만 일반 유권자들과 간담회는 선거법 위반이라는 경고를 받았다. 기자들은 간담회가 아니라도 언제라도 정치인을 만나서 인터뷰할 수 있지만 블로거들은 애초에 모임 자체가 금지됐다. 결국 태터앤미디어는 인터넷 언론사로 등록된 블로터닷넷과 공동 주최하는 형태로 편법을 써야 했다.
태터앤미디어는 지난 1월 야구 소식을 다루는 야구타임즈와 최근 해외 소식을 전하는 세계WA라는 블로그 전문 언론을 출범시킨데 이어 연예 전문 엔터팩토리와 자동차 전문 카홀릭 등의 창간을 준비하고 있다. 이성규 팀장은 “자동차 전문 블로거들은 신차 시승기를 쓰고 싶어하는데 자동차 회사들의 협조가 전혀 안 된다”면서 “그나마 정치, 경제, 시사 쪽에는 일부 기자 블로거들 말고는 현장취재를 할 수 있는 블로거가 거의 없다”고 말한다.

블로거들의 영향력이 이 정도로 확대되기까지는 다음 블로거 뉴스의 기여가 컸다. 다음 블로거 뉴스 첫 페이지에 오르면 하루 방문자가 많게는 20만 명까지 늘어나는 경우도 있다. 개인 블로그로서는 포털의 힘이 아니면 기대하기 어려운 독자 기반이다. 지난해 다음 블로거 뉴스에서 최다 조회수를 기록한 포스트는 무릉도원이라는 블로그가 쓴 “현충일 오후에 불이 났습니다”라는 제목의 글. 무려 152만 명 이상이 이 글을 읽었다.

고준성 다음 오픈플랫폼 팀장은 “일부에서는 포털 종속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많지만 블로거들이 포털의 영향력을 잘 활용해서 독립적인 독자 기반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황용석 건국대 신방과 교수는 “우리나라는 기자들이 직장인에 가까운데 미국은 특정 언론사에 소속되지 않은 프리랜스 저널리스트가 많기 때문에 애초에 환경이 다르다”면서 “우리나라는 기자 집단의 진입장벽이 높기 때문에 블로거는 물론이고 프리랜스 저널리스트도 활동 반경이 매우 좁다”고 지적했다. 대부분의 기자들이 기자 개인의 브랜드가 아니라 언론사 브랜드를 내세워 활동하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다.
블로거 김태우씨는 “특히 우리나라는 포털 블로그들이 많아서 독자적인 수익모델 확보가 어렵고 독자 확보 역시 포털에 의존하게 되는데 포털이 밀어주는 글은 이슈나 논쟁 중심이라 오히려 전문성 있는 콘텐츠들이 뒤로 묻히기 쉽다”고 지적했다. 김씨는 “여러가지로 척박한 환경이지만 차별화된 질 높은 콘텐츠로 공신력과 권위를 구축하면 영향력은 자연스럽게 따라오게 돼 있다”고 덧붙였다.

블로거들은 이슬만 먹고 사나요
배너광고 단가 낮고 콘텐츠 판매도 제한적
미디어몽구의 고민은 블로깅이 즐겁긴 하지만 여전히 생계 방편은 안 된다는 데 있다. 방문자 수가 늘어나면서 한때 구글 애드센스로 상당한 수입을 올리기도 했지만 지난해 구글이 광고단가를 조정하면서 수입이 절반 이하로 줄어든 상태다. 최근에는 동영상 공유 사이트인 곰TV나 엠군닷컴 등에 콘텐츠를 공급하고 수수료를 받는다. 미디어몽구는 “교통비나 식대 정도는 해결되지만 직업으로 삼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국내 최초로 블로그 미디어를 표방하고 나선 야구타임즈 역시 수익모델이 고민거리다. 야구타임즈의 수익모델은 배너 광고와 콘텐츠 수수료다. 현재 포털 사이트 다음과 파란에 기사를 공급하고 있다. 상근기자 2명에 객원기자가 1명 더 있는데 다들 재택근무를 하기 때문에 인건비 말고는 크게 비용 지출이 없어 부담이 덜하다. 김홍석 편집인은 “넉넉한 정도는 아니지만 최소한의 수익모델은 확보했다”고 말했다.

인터넷 비즈니스를 주제로 글을 쓰는 김태우씨도 흔히 전업 블로거로 꼽히지만 블로그로는 별다른 수입이 없고 대부분 비즈니스 컨설팅이나 단행본 저술 등으로 생계를 유지한다. 그에게 블로그는 자신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도구면서 자기계발의 원동력이기도 하다. 그는 “블로그로 먹고 살려면 충분한 영향력과 수익모델을 확보해야 하는데 아직 우리나라에는 제대로 된 수익모델이 없다”고 지적했다.

최진순 한국경제 전략기획국 기자는 “블로그 콘텐츠를 상품으로 인정할 만한 수요가 뒷받침돼야 하는데 아직은 마케팅 차원의 관심만 있을 뿐 콘텐츠에 대한 수요는 많지 않다”면서 “안정적인 수익모델을 기대하는 것은 시기상조고 지금은 콘텐츠의 질을 높이고 네트워크를 확장하는 단계라고 보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최 기자는 “시기의 문제일 뿐 소셜 네트워크에 기반한 새로운 콘텐츠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고 지적했다.

배너광고 수입이 워낙 별 볼 일 없긴 하지만 희망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영향력이 충분히 늘어나면 배너광고 단가가 올라갈 수도 있고 굳이 배너광고가 아니라도 다른 수익모델이 얼마든지 가능하다. 포털이나 언론사에 콘텐츠를 판매하거나 블로그 포스팅을 묶어서 단행본을 내거나 컨설팅을 하거나 장기적으로는 독자들에게 직접 구독료를 받는 새로운 수익모델도 검토되고 있다.

기자들 흉내? 전혀 다른 글쓰기 필요
주관을 담되 저널리즘의 원칙과 열린 소통 자세 갖춰야
기자들 흉내 내는 것으로 기자들과 경쟁할 수 있나. 많은 블로거들이 갖고 있는 고민이다. 특화된 전문 영역이 없는 전업 블로거들이 이런 함정에 더 쉽게 빠진다. 주류 언론과 달라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차별화에 실패하고 주류 언론의 대안이 되기보다는 결국 부진한 아류에 머무르게 될 위험이 있다. 결국 핵심은 정확하고 깊이 있는 정보와 독특한 관점, 친절하고 명료한 글쓰기 방식이다. 이는 주류 언론의 경쟁 공식과 정확히 같다.

주관적인 글쓰기에 대해서는 평가가 엇갈린다. 태터앤미디어 이성규 팀장은 “형식적인 객관성을 유지하는 글쓰기는 경쟁력이 없다”고 주장한다. 이 팀장은 오히려 주관의 총합이 객관이 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주관을 선명하게 드러내되 서로 소통하고 차이를 인정하고 대안을 찾아나가는 과정이 더욱 중요하다는 이야기다. 고준성 다음 오픈플랫폼 팀장도 “블로거들이 객관화의 틀에 갇히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황용석 건국대 교수는 블로그는 이미 개인적인 공간이 아니고 대중과 커뮤니케이션을 하려면 저널리즘의 기본 원칙을 지켜야 한다는 입장이다. 황 교수는 “검증된 정보에 기초하되 자신이 쓰는 글의 영향력과 그 책임을 명확하게 인식해야 하고, 공중의 이익을 우선하고 정치적이거나 상업적인 이익에서 독립해야 한다는 최소한의 양심과 원칙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진순 한국경제 기자는 “우리나라 블로그 문화는 지나치게 폐쇄적이고 독단적인 경향을 보인다”고 지적했다. 최 기자는 “내 블로그니까 내 맘대로 쓴다거나 무조건 내가 맞고 너는 틀리다고 우기는 등 애초에 논의를 거부하는 태도를 보이기도 하고 그러다 보니 상업적으로 변질되는 경우도 있고 마케팅 기업들이 의제설정을 주도하는 웃지 못 할 상황까지 벌어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시사인 고재열 기자는 “독자 수 늘리는데 연연하거나 수익 확보에 매달리기보다는 네트워크를 확장하는 데 더 많은 열정을 쏟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100만 명이 읽게 할 수는 없지만 블로고스피어의 오피니언 리더 100명만 읽어도 그 100명이 논의를 이어받는다면 주류 언론 못지 않은 영향력을 확보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고 기자는 “숲이 우거져서 거대한 산소공장이 되는 것처럼 소셜 미디어의 장점을 최대한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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