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내 활동은 통신비밀보호법 개악을 막는 데 집중되어 있다. 논평과 성명을 쓰고 기자회견을 연다. 이러한 활동의 상당수는 언론을 의식하고 이루어진다. 촛불로 대변되는 거리의 직접 행동이 이루어지는 시대에, 영향력 있는 대안미디어로 부상한 인터넷 활동가로서, 아직도 TV, 일간지 등 주류 미디어의 보도를 의식하며 활동하는 데 대한 소회는 따로 풀 기회가 있을 것이다.

다만 지난 17대 국회서부터 이 시점까지 똑같은 내용의 통신비밀보호법 개악에 반대하는 활동을 해오면서 언론에 대해 느낀 점을 풀자면 이런 것이다. “문제점을 잘 다룬 보도가 참 없다.” 2007년부터 그랬다.

문제점 다룬 보도 찾기 힘들어

현재 이한성 의원안으로 둔갑한 통신비밀보호법 개정안이 일반에 처음 알려진 것은 2007년 3월께였다. 사안이 워낙 심각하였기 때문에 우리는 가장 먼저 국회 앞 기자회견을 진행하였다. 그러나 3월 30일 첫 기자회견에 기자는 거의 없었다. 작은 단체의 목소리라지만 언론의 무관심은 냉혹할 지경이어서 그 이후로 수차례 연 기자회견에도 기사 한 줄 나기가 쉽지 않았다. 주류 미디어의 프레임에 이 의제가 등장하기까지 참 어려웠다는 얘기다. 다행히 언론의 뒤늦은 관심에 힘입어 17대 국회에서는 법안 통과가 무산되었다.

2008년 10월, 통신비밀보호법 개정안이 다시 등장했을 때, 다행히 언론은 처음부터 지대한 관심을 보여주었다. 여야간에 첨예한 정쟁대상이라는 프레임이 설정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어느 언론에서나 이 법안을 ‘휴대폰 감청법’이라는 별명으로 불렀다. 아마 눈에 잘 띄는 표제였기 때문일 것이다.
휴대폰 감청의 개시도 중요한 쟁점이다. 그러나 이러한 명명으로는, 실제 감청의 98%는 일반 범죄수사와 관련이 없는 국가정보원이 실시하고 있으며, 그렇기에 이 법안의 주요 이해당사자가 국가정보원이라는 사실을 담을 수 없다. 이 법안의 주요 내용이 ‘휴대폰 감청’이 아니라 ‘휴대폰과 인터넷 등 모든 통신에 감청설비를 의무화’하는 것이며, 모든 국민의 모든 통화내역과 모든 인터넷 이용기록을 보관하도록 의무화하는 것이라는 점도 담을 수 없다. 그런데도 대다수 언론에게 이 법안은 ‘휴대폰 감청법’일 뿐이며 아직까지 그러하다.
솔직히 2007년부터 지금까지 이 법안에 대한 언론의 관심이 단편적이며 평면적이라는 생각을 버릴 수가 없다. 물론 하루가 다르게 쏟아지는 사건사고 속에서 언론 종사자가 한 사안에 대해 꾸준한 관심을 가지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다들 중요하다고 말하면서도 이렇게 오랜 기간 동안 제대로 보도되지 않는 사안도 참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도 답답해서 몇몇 기자들에게 물어보았다. 대체 왜 다른 방식으로는 보도가 안될까요? “내용이 어렵습니다.” “쉽지 않네요.” 그 말이 내 귀에는 이렇게 들린다. “다른 일에 바쁩니다.” “시간과 노력을 기울일 수 없습니다.” 결국 ‘휴대폰 감청법’의 쟁점을 넘어서려는 순간 유리 천정에 부딪치는 것이다. 그것은 다름 아닌 프레임의 유리 천정이다.

언론의 유리 천정 프레임

   
   
 
이런 반응은 인터넷에 대한 다른 쟁점에서도 종종 접한다. 결국 비주류 인권단체의 의제는 주류 미디어의 의제로 등장하기가 쉽지 않고, 등장하더라도 지배적인 프레임에서 벗어난 문제제기는 소외당하기 마련이다. 반면 해당 사안이 관료적 전문가의 권위를 표방하고 매력적인 표제까지 달고 있으면 그 프레임이 전 언론을 통틀어 손쉽게 관철된다.

통신비밀보호법은 언론 자유의 본질적인 문제이다. 모든 통화내역이 장기간 보관되고 모든 전화국에 감청 설비가 갖추어진 상황에서 어느 내부고발자가 취재원이 되려 하겠는가. 부디 프레임을 벗어나 조금 더 전진해 보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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