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방송과 신문이 ‘박연차 리스트’ 관련 기사를 봇물처럼 쏟아내고 있다. 전직 대통령이 연루된 사건이라는 점에서 언론의 취재 경쟁도 뜨겁다. 그러나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의 진술이 언론에 여과 없이 실리면서 무차별 받아쓰기 보도에 대한 우려를 낳고 있다. / 편집자

▷검찰 프레임, 언론 받아쓰기 논란=검찰이 박 회장 진술에 의존한 수사를 이어가면서 언론도 박 회장 발언을 인용한 기사를 쏟아내고 있다. 그러나 “알려졌다” “전해졌다” 등 언론의 사실 관계 확인이 부족한 기사도 적지 않다. 검찰을 출입하는 한 기자는 “전부 검찰에서 받아쓰고 있다. 검찰의 짜여진 프레임에 따라 보도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검찰 프레임의 치명적인 약점은 구체적인 물증이 없고, 박 회장 진술에만 의존하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검찰이 언론에 정보를 흘리면서 특정한 방향으로 여론의 흐름을 유도하는 ‘언론플레이’에 나서고 있다는 지적도 이 때문이다. 안희정 민주당 최고위원은 “확인되지 않은 내용이 검찰발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마치 사실인 양 언론에 보도된다면 그 책임은 결국 검찰에 있는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홍만표 대검 수사기획관도 13일 수사브리핑에서 “최근 솔직히 확인되지 않은 직설적인 보도가 많이 나간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국회 법사위, 피의사실 공표 논란=14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도 검찰의 ‘박연차 리스트’ 관련 언론 보도가 쟁점이 됐다. 박지원 민주당 의원은 김경한 법무부 장관에게 “나는 언론 인터뷰에서 우리나라 전직 대통령 피의사실을 공표하면서 코너로 몰아붙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검찰이) 노무현 전 대통령 문제 피의사실 공표 안 한다고 보는가”라고 질의했다. 김 장관은 “검찰에서 피의사실 공표한 일은 없는 것으로 본다”라고 답변했고, 박 의원은 “매일 혐의 내용이 언론에 자질구레하게 보도되는 것은 무엇인가”라고 재차 질의했다. 김 장관은 “그것은 검찰이 발표한 것이 아니다. 제일 많은 것(언론 보도로 인용되는)이 조사받은 당사자나 변호인이 의논하는 것이 많다”면서 “언론의 허위보도가 많다. 언론에 나온 것을 다 검찰 탓으로 돌리는 것은 맞지 않다”고 해명했다.

▷노무현 반격, 엇갈린 평가=노무현 전 대통령은 12일 인터넷 홈페이지 ‘사람사는 세상’에 <해명과 방어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는 제목의 세 번째 글을 올렸다. 노 전 대통령은 “언론들이 근거 없는 이야기를 너무 많이 해 놓아서 사건의 본질이 엉뚱한 방향으로 굴러가고 있는 것 같다. 소재는 주로 검찰에서 나오는 것으로 보인다. 사실과 다른 이야기들이 이미 기정사실로 보도가 되고 있으니 해명과 방어가 필요할 것 같다”고 말했다. 노 전 대통령의 적극적인 해명은 정당한 방어라는 평가도 있지만, 또 다른 언론플레이로 보는 시각도 있다. 경향신문은 13일자 사설에서 “자기 패는 감추고 상대가 공격해오기를 기다렸다가 반격을 가하는 게임이라도 하겠다는 것인지 여전히 그 속내가 궁금하다”고 비판했다. 윤상현 한나라당 대변인은 “지금 노 전 대통령에게 필요한 것은 해명과 방어가 아니라 자기고백이다. 방어한다고 해서 또 언론 탓, 남 탓하는 것도 보기 민망하다”고 지적했다.

▷이상득 의원 개입 의혹=‘박연차 리스트’ 의혹은 전임 정부와 현 정부 인사가 골고루 섞여 있는 사건이다. 그러나 검찰 수사는 참여정부 인사에 집중됐고, 언론도 이를 따라가는 모습이다. 내일신문과 한길리서치가 지난 10~11일 정례 여론조사를 벌인 결과, 현 정부 인사에 대한 의혹 수사가 미흡하다는 평가가 60.1%, 잘 이뤄지고 있다는 평가는 29.7%로 조사됐다. 보수층도 미흡하다는 평가가 58.6%에 달했다.

한편, 박지원 의원은 14일 법사위 회의에서 “이상득 의원이 한상률 국세청장을 불러 촛불시위에 대한 문제, 한나라당 친박 의원들의 정치자금 관계를 파악하기 위해 박연차 회장 관계 회사 세무조사를 하라고 했다는데 그것을 알고 있느냐”고 물었다. 김경한 장관은 “금시초문”이라고 답변했다. 김 장관은 이날 이상득 의원 소환조사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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