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오늘

블로거들, 정세균 민주당 대표를 만나다
블로거들, 정세균 민주당 대표를 만나다
한나라당 탓으로 일관… 원론적인 비판에 대안제시는 미흡

"미디어 국민위원회 100일 논의가 흐지부지 끝나면 어떻게 되나. 다시 국회를 점거하고 몸 싸움을 벌일 것인가. 그래서 막아낼 수 있겠나." 정세균 민주당 대표가 블로거들과 만났다. 블로그 서비스 업체 태터앤미디어 주관으로 23일 국회 민주당 대표실에서 열린 블로거 간담회에서 10명의 블로거들은 소수 야당의 무능을 호되게 질책했다.

그러나 정 대표는 관록의 정치인 답게 능수능란했다. 블로거들의 질문은 대개 상식적인 수준 이상을 넘어서지 못했고 정 대표는 그런 질문들을 유들유들하게 받아넘겼다. 관심이 집중됐던 정동영 전 당의장과의 갈등 관계에 대해서는 오프 더 레코드를 전제로 속내를 털어놓기도 했지만 역시 미묘하게 핵심을 빗겨 나갔다.

언론 관계법 논의와 관련, 정 대표는 "욕을 먹어가면서 붙잡을 것이냐, 끝까지 싸우다가 장렬히 전사할 것이냐, 명분과 실리 사이에서 고민하다가 일단 붙들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면서 "일단 시간을 벌긴 했는데 한나라당이 끝까지 밀어붙인다면 파국이 올 수밖에 없다"는 원론적인 답변을 내놓았다.

정 대표는 "필요하면 다시 싸워야겠지만 그 전까지 최대한 타협을 도출하고 국민들에게 잘 알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간담회에 배석한 전병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 의원은 "여론 조사 등 객관적인 절차를 거쳐 국민 여론이 수렴된다면 국회는 무조건 받아들여야 한다"고 덧붙였다.

   
  ▲ 23일 국회 민주당 대표실에서 열린 블로거 간담회.  
 
이날 간담회의 최대 관심사는 역시 22일 귀국한 정동영 전 당의장의 전주 덕진구 보궐선거 공천 여부였다. 정 대표는 "당도 살고 개인도 사는 방법을 찾겠다"면서 구체적인 답변을 꺼렸지만 "과거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울 종로구를 버리고 부산에 출마한 것은 지역주의를 극복하기 위한 용기있는 결단이었다"면서 정 전 의장을 의식한 발언을 흘리기도 했다. 

정 대표는 "왜 아직까지 민주당에는 정 전 의장을 대신할만한 스타 플레이어가 없느냐", "왜 정 대표는 대중적 지지를 얻는데 실패했다고 생각하느냐"는 등의 질문에 "하루 아침에 깜짝 스타가 탄생하는 경우도 있지만 부단한 노력을 통해 지지를 얻는 방법도 있을 거라고 본다"면서 "시간을 갖고 지켜봐 주시라"고 받아 넘겼다.

블로거 '미디어몽구'는 "만약 민주당이 정권을 잡았으면 1년이 지난 지금 어떤 평가를 받을 거라고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정 대표는 "우리가 했으면 이 정도로 욕을 먹지는 않았을 것"이라면서 "첫째, 남북문제 파탄을 가져오지 않았을 것이고 둘째,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을 그렇게 졸속으로 하지 않았을 것이고 셋째, 언론악법으로 민주주의를 이처럼 후퇴시켰을리 만무하고 넷째, 경제 역시 한나라당보다는 잘 했을 것이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고 답변했다. 정 대표는 "지금 같은 위기국면에는 취약계층을 돌보는 복지와 사회 안전망을 확충하는 일이 무엇보다도 중요한데 이명박 대통령은 그런 미래 지향적인 비전이 없는 사람"이라면서 "늘 환경 탓을 하지만 애초에 국정 철학이 잘못된 것"이라고 비판했다.

"진보도 아니고 보수도 아니고 민주당의 포지션이 모호하다"는 지적에는 "한때 민주당을 두고 왜 왼쪽 깜빡이를 켜고 오른쪽으로 가느냐는 비난도 있었지만 여당은 그런 비난을 감당해야 한다"면서 "왜냐 하면 대통령은 국민의 대통령이지 자기를 지지하는 사람들만의 대통령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이명박 정부를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 정세균 민주당 대표.  
 
이날 간담회에서는 "경찰에 체포된 YTN 기자들을 면회하러 갈 용의가 있느냐", "교통사고를 줄이기 위해 ABS 장착을 의무화하는 법안을 발의할 계획이 있느냐", "돔 구장 건설을 추진할 의사가 있느냐" 등등의 현안 질문이 쏟아졌지만 정 대표는 "좋은 생각이다", "최선을 다하겠다"는 정도의 뻔한 답변으로 일관했다.

청년 실업 및 일자리 대책과 관련해서는 "6개월짜리 건설 노무직이 아니라 교육과 복지 등 사회 서비스 분야 일자리를 늘려야 한다"고 답변했고 비정규직법과 관련해서는 "1년에 20만명씩 3년 동안 매년 1조 2천억의 예산을 들여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계획을 추진 중"이라고 밝혔다.

이밖에도 "사이버모욕죄는 절대 용납할 수 없고 인터넷 실명제도 일부의 경우를 제외하면 바람직하지 않다는 생각"이라고 밝혔고 뉴스통신진흥법 개정과 관련해서는 "연합뉴스의 독립성과 중립성을 지켜내는 방식이 돼야 한다"고 밝혔다. 한미 FTA에 대해서는 "조건부 찬성이지 무조건 반대는 아닌데 민주당이 입장을 바꿨다고 보는 건 곤란하다"고 지적했다.

정 대표는 이명박 정부의 정책 실패에 대한 비판으로 일관했을 뿐 이를 넘어설 속 시원한 해법을 내놓지 못했다. "한나라당이 정책 인해전술을 펴고 있다"면서 소수 야당의 현실적인 어려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일문일답 형태의 간담회가 갖는 한계였겠지만 결국 민주당의 대안 부재를 드러내는 자리가 됐다.

이날 간담회는 블로그 저널리즘을 표방하는 태터앤미디어가 야심차게 준비한 기획이었지만 블로거들은 흔히 주류 언론의 기자들이 할 법한 질문을 던졌고 이미 언론을 통해 알려진 입장을 확인하는데 그쳤다. 3시간 가까이 질의응답이 이어졌는데 뉴스에서만 보던 피상적인 정치인과 일반인 유권자 사이의 인식의 차이는 좀처럼 좁혀지지 않았다.

태터앤미디어 한영 공동대표는 "상당수 블로거들이 각자의 분야에서는 전문가들이지만 대체로 정치 현안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지 못하거나 관심이 없어서 패널과 질문 선정에 애를 먹었다"면서 "주류 언론과 차별화된 콘텐츠를 만들어 내려면 다른 접근 방식을 고민해 봐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정운현 공동대표는 "미국에서는 블로거들이 백악관을 공식 출입하고 있고, 부시 전 대통령도 블로거들과 간담회를 가지기도 했다"며 "각계 오피니언 리더들과의 간담회에 이어 내년께 이명박 대통령과의 간담회도 성사시키고 싶다"고 말했다. 다음 간담회는 31일 임태희 한나라당 정책위 의장을 초청해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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