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이런 대통령이 어디 있나. 과도한 공권력 사용으로 국민들이 죽거나, 갇히거나, 다치는 참혹한 일이 잇따르고 있는데도 끊임없이 공권력의 위축만을 걱정하는 대통령, 국민들이 날마다 거리를 가득 메우며 정권퇴진 구호를 외치는 데도 정부가 하는 일에 무조건 반대하는 소수의 사람들이 있다고 말하는 대통령, 노사 간 갈등엔 무조건 기업주 편만 드는 대통령! 선진국 어느 나라에 이런 대통령이 있을까?

이명박 대통령은 9일 용산 철거민 참사 추모시위 과정에서 빚어진 경찰관 집단폭행사건과 관련, “이런 나라가 어디 있느냐”며 목소리를 높였다고 한다. 대통령은 “선진 일류국가를 만들기 위해선 공권력이 확립되고 사회질서가 지켜져야 한다. 경찰관이나 전경들이 자부심을 갖고 일할 수 있도록 최대한 지원하고, 일을 열심히 하는 사람들이 불이익을 입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참으로 섬뜩하다. 대통령이 누구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는가. 바로 강희락 경찰청장과 이길범 해양경찰청장 등 경찰 수뇌부에게 임명장을 수여하는 자리였다. 같은 날 한승수 국무총리까지 나서서 “선진국 어느 나라에서 공권력을 행사하는 경찰관이 이렇게 폭행 당하는 나라가 어디 있느냐, 법질서 확립을 위해 공권력 집행을 방해하거나 훼손하는 세력과 행동에 대해서는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법과 원칙에 따라 엄단해야 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렇지 않아도 과잉 진압으로 끊임없는 논란을 빗어온 대한민국의 공권력이 시위대를 향해 ‘풀 스윙’으로 곤봉을 휘둘러도 좋다는 ‘007 면허‘를 득한 셈이다.

공권력은 가만히 내버려둬도 근육질을 자랑하고 싶어하는 속성을 지니고 있다. 그런데 대통령께서 직접 나서서 일을 열심히 하는 사람들이 불이익을 입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고 다독여 주기까지 하신다. 얼마나 어깨에 힘이 들어가겠는가.

   
  ▲ 이명박 대통령이 강희락 신임 경찰청장(사진 오른쪽)에게 임명장을 수여하고 있다. ⓒ사진출처-청와대  
 
이미 그 서슬의 조짐이 보이고 있다. 경찰 총수에서 일선 서장에 이르기까지 앞으로는 진짜 공권력의 쓴맛을 보여주겠다며 새롭게 각오를 다지고 있다. 강희락 청장은 취임식에서 “불법이 합법을 우롱하고 폭력과 억지가 국민의 일상을 짓밟는 일은 다시는 용인될 수 없다”고 말했다.

주상용 서울경찰청장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상습 시위꾼들은 200∼300명 정도로 그간의 채증 자료 등을 바탕으로 전원 검거 하겠다”고 말했다.

이철성 영등포경찰서장은 시위대에 폭행을 당해 입원 치료를 받고 있는 순경을 병문안 하는 자리에서 “차라리 전쟁 상황이라면 마음껏 진압했을 텐데 그럴 수 없으니 우리로서도 답답하다”고 말했다. 이들의 발언 속엔 국민을 적으로 돌리는 듯 한 내용마저 들어있다. 오싹하기까지 하다.

경찰이 무슨 잘못이겠는가. 문제는 대통령의 시국관이요 해법이다. 시위가 자꾸 극렬해지고 이른바 상습 시위꾼들이 느는 것은 바로 현 정권의 ‘작용’에 대한 ‘반작용’이다. 쥐도 막다른 골목에 몰리면 고양이를 무는 법이다. 재벌과 부자들 편에 서서 가지지 못한 자들을 벼랑으로 몰아대고 있으니, 견디지 못한 국민들이 거리로 나서는 것 아닌가.

   
   
 
대한민국 대통령은 1%만의 대통령이 아니다. 극단적 상황에 몰려 때때로 불법·탈법의 저항을 하는 일부 국민들이 있다손 치더라도 그들 역시 대통령이 끌어안아야 하는 대한민국 국민들이다. 현 정권이 금과옥조처럼 되뇌는 ‘법대로’를 실행하기 이전에 먼저 거리로 나선 국민들의 처지와 아픔을 헤아리는 게 순서다.

정권을 쥔 권력자들은 경찰과 검찰, 국정원 등 자신이 지닌 물리력을 과신하는 경향이 있다. 기억하라. 역대 어떤 권력도 물리력으로 국민의 저항을 누르는데 성공하지 못했다. 그런데도 이명박 대통령이 과거 독재자들의 카드를 계속 만지작거리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기만 하다. 이른바 ‘TKK(대구·경북·고려대) 출신’ 친위인사들로 권력기관을 채우고, 엄정한 법질서 확립을 외치는 대통령의 모습에서 과거 독재자들의 망령이 어른거리고 있다. 물리력으로 촛불 민심을 돌파해 보겠다고? 차라리 일엽편주로 광란의 바다를 건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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