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이 무려 30조 원의 추가경정 예산의 조성과 집행을 추진하고 있다. 일자리 창출과 내수경기 진작, 구조조정 지원에 필요한 예산이라는 게 한나라당 설명이지만 민주당은 대규모 토목공사에 쏟아부을 삽질 추경이라며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추경 예산은 다음달 국회의 핵심 쟁점이 될 전망이다.

임태희 한나라당 정책위의장은 8일 기자간담회에서 "올해 추경 예산이 20조~30조를 넘을 수 있다"고 밝히면서 논란이 본격화하는 추세다. 임 의장은 "효과가 명확한 것이라면 예산 규모에 얽매일 필요가 없다"면서 "감사원의 예산평가 관리지침에 고용창출 효과 항목을 추가해 일자리 창출 효과를 예산 편성과 운영에 반드시 반영하도록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경제를 살린다는데 반대한 이유는 없지만 문제는 그 막대한 재원을 어떻게 조달할 것이냐다. 채권 전문가들은 이미 편성된 적자 예산에다 추경을 반영하고 기존 발행 물량의 만기 연장을 위한 차환용 국채 발행을 더할 경우 올해 국채 발행 규모가 100조 원을 넘어설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지난해 22조 원보다 4배 이상 늘어날 거라는 이야기다.

이렇게 엄청난 규모의 국채를 시장이 받아낼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서도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실제로 기획재정부가 올해 1월과 2월 발행한 국채는 4260억원과 6040억원으로 당초 목표 월 8000억 원에 턱없이 못 미쳤다. 10년 만기 국고채 금리도 지난 5일 기준 5.07%로 뛰어올라 조달 비용도 부담스러운 상황이다.

   
  ▲ 한국은행이 기준 금리를 2.0%까지 낮췄지만 국고채 금리는 걷잡을 수 없이 뛰어오르고 있다. ⓒ한화증권.  
 
국고채 금리가 높다는 건 정부의 지불 능력에 대한 시장의 불신도 팽배하다는 의미도 된다. 또 다른 문제는 정부가 시중의 여유 자금을 쓸어가 버리면서 회사채 시장이 얼어붙고 가뜩이나 신용경색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기업들 자금난이 더욱 가중되고 민간 투자를 위축시킬 우려도 있다. 이른바 재정지출의 구축효과(crowding out effect)다.

우리투자증권 박종연 연구원은 "추경이 최소 20조원만 되더라도 금리 상승 압력은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SK증권 양진모 연구원도 "만약 추경이 모두 국채 발행으로 조달된다면 정부 차입 증가에 따른 민간부문 구축효과 뿐만 아니라 중장기 금리 상승으로 민간 차입금리도 높아지는 악영향이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정부는 이런 우려를 애써 무시하는 분위기다.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은 5일 외신 기자들과 간담회에서 "보통 때는 국채를 많이 발행하면 구축효과가 있겠지만 지금은 시중에 투자가 되지 않는 부동자금이 많다"면서 "민간이 투자를 하지 않는 상황이기 때문에 정부가 투자 및 소비를 이끌어야 한다"고 강력한 추경 집행 의지를 밝히기도 했다.

정부 발표에 따르면 정부 부채는 298조 원 규모. 그런데 한국재정학회가 최근 국회에 제출한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행 등 공기업들 부채를 모두 포함할 경우 실제로 정부 부채는 688조원이라고 봐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이런 상황에 100조 원의 추가 국채 발행은 심각한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한국은행이 기준 금리를 사상 최저 수준인 2.0%까지 끌어내렸는데도 시중 금리가 좀처럼 움직이지 않거나 오히려 치솟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정부는 한은이 국채를 직접 인수하거나 한은 차입 한도를 늘리는 등의 대안을 검토하고 있지만 대외 신인도에 부정적인 영향을 초래할 가능성도 있다.

정치권의 엇갈린 입장을 정리하면 한나라당은 추경을 늘려서 일자리를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고 민주당은 토목공사에 과도한 예산이 배정될 걸 경계하면서 일단 어디에 쓸 것인지 계획부터 내놓으라고 반박하고 있다. 정부는 한나라당과 비슷한 입장이지만 재정 건전성 악화를 고민하고 있는 상황이다.

한나라당은 "일자리를 지키는 추경을 하면 실업 급여로 나가는 추경을 줄이는 선순환 효과가 있기 때문에 추경을 과감하게 해도 괜찮다"는 입장이다. 관건은 한나라당의 일자리 지키는 추경이 과연 얼마나 실효성이 있느냐로 정리된다. 단기적인 삽질 일자리에 그치는 것 아니냐는 비난에 한나라당은 설득력 있는 대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 국민일보 3월5일 23면.  
 
언론의 반응 역시 미묘하게 엇갈린다. 한나라당의 발표를 단순 인용하는데 그친 곳도 있고 민주당의 반론에 더 비중을 둔 곳도 있다. 국민일보는 사설에서 "과감하고 신속한 재정 정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고 한겨레는 "쓸 곳부터 따져야지 추가 추경이라니"라면서 "추경은 곧 부자 감세로 세수를 줄여놓고 국민 대부분의 부담을 늘리는 꼴"이라고 비판했다.

국민일보는 "재정 투입이 절실한 위기 상황에서 추경 규모가 충분치 못하면 그 효과는 반감될 수밖에 없다"면서 "미래의 재정 건전성 이상으로 당장 국민의 살림살이가 큰 탈 없이 유지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주장해 눈길을 끌었다. 이 신문은 추경을 50조 원까지 늘려야 한다는 삼성경제연구소의 보고서를 인용하기도 했다.

   
  ▲ 한겨레 3월5일 23면.  
 
경향신문은 한나라당의 분열 조짐에 주목했다. 이 신문은 "이한구 예결위원장이 '몇 십조원을 동네 애 이름 부르듯이 하니 굉장히 무책임한 자세'라고 비판했다"고 전하면서 "국가재정을 경기부양의 보조수단으로 사용하는데 대한 우려도 제기된다"고 지적했다. "슈퍼 추경이 성장률을 확 끌어올릴 것이란 환상을 버려야 한다"는 유승민 의원의 말을 전하기도 했다.

   
  ▲ 한국경제 3월9일 4면.  
 
한편, 파이낸셜뉴스가 "조세연구원의 추정에 따르면 현재 정부가 감당할 수 있는 추경 규모는 10조∼15조원 정도"라고 지적한 것도 주목된다. 이 신문은 "특히 올해 재정적자가 성장률 감소와 감세 등에 따른 세수 부족으로 추경을 제외하고도 24조8000억 원에 이를 전망이어서 추경 규모가 커지면 향후 나라빚을 갚는데 상당한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서울경제도 사설에서 "단순 공공근로 등의 일회성 일자리는 재원투입의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점에서 다양한 일자리 창출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 신문은 "소비 쿠폰이나 현금 지급 등 저소득층을 위한 생계지원도 좋지만 장기적인 소비 진작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경제지들은 대체로 추경 편성에 찬성하는 입장이면서 좀 더 신중한 예산편성을 요구했다. 아시아경제는 "30조원 이상의 추경을 편성할 경우 올해 국내총생산 대비 재정적자가 40%대까지 올라 갈 수 있다"는 기획재정부 관계자의 말을 전하기도 했다. 이 관계자는 "이번 추경으로 모든 일을 해결할 수 있는 것도 아닌데 외부의 바람잡기가 지나치다"고 지적했다.

무더기 감세에 이은 무더기 추경 남발. 그 둘의 상관관계를 주목한 언론은 거의 없었다. 홍헌호 시민경제사회연구소 연구원은 MBN과 인터뷰에서 "상위 10%가 거의 80% 이상의 조세 혜택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면서 "부자 감세로 세수를 줄여놓고 국채를 발행해 국민의 부담을 키웠다는 따가운 눈총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지적해 눈길을 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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