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문순 민주당 의원이 5일 박희태 한나라당 대표에게 공개 도전장을 던진 것은 4·29 재보선을 ‘조중동 방송법’ 심판의 장으로 만들려는 노림수가 담겨 있는 것으로 보인다. 최문순-박희태 맞대결이 펼쳐진다면 4·29 재보선 최고의 흥행카드가 될 가능성이 있다.

야당 비례대표 의원이 의원직 반납을 공언하며 여당 대표에게 도전장을 던진 상황 자체도 이례적인 일이다. 국회의원이 의원직을 거는 정치행위는 쉽게 선택할 수 있는 성질의 문제가 아니다. MBC 사장 출신인 최문순 의원은 지난해 4월9일 18대 총선에서 민주당 당선 안정권인 비례대표 10번을 받아 원내 입성에 성공했다.

언론계에서 정계로 직행한 데 따른 우려와 비판도 있었다. 하지만 최문순 의원은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를 대표하는 야당 정치인이라는 평가를 받았고, 이명박 정부의 언론장악 움직임에 맞서는 데 의정활동의 초점을 맞췄다.

   
  ▲ 최문순 민주당 의원. 이치열 기자 truth710@  
 
최문순 의원은 국회 국정감사와 상임위원회 활동을 통해 의정활동 능력을 평가 받았으며 시민단체가 선정하는 우수 국회의원으로 뽑혔다. 최문순 의원은 여야 방송법 타결 이후 박희태 대표가 사회적 논의기구 위상을 폄하하는 발언을 하자 의원직을 건 정치 승부수를 던지게 됐다.

최문순 의원은 5일 <박희태 대표님! 한판 붙기를 청합니다>라는 제목의 공개 서한을 통해 “이번 4월 보궐 선거에 출마하신다는 얘기를 듣고 있다. 그래서 외람되지만 감히 청하고자 한다. 기왕이면 저와 한 판 붙어 주시기를 정중히 요청한다. 저는 의원직을 사퇴하고 달려갈 생각”이라고 밝혔다.

최문순 의원은 “박 대표께서 TV 인터뷰에서 언론 관계법(한나라당 용어는 미디어 법)을 논의하기 위한 ‘사회적 논의 기구’를 폄하하는 발언을 하셨다는 얘기를 들었다. 박 대표께서 여야가 합의한 내용을 채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격하시키는 것도 문제거니와 이를 통해 결국 언론 관계법을 한나라당 마음대로 처리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은 더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5일 현재 4·29 재보선이 확정된 지역은 인천 부평을과 전주 완산갑, 전주 덕진, 경북 경주 등 4곳이다. 울산 북구와 경남 양산 등 일부 지역이 추가될 가능성도 있다. 박 대표가 재보선 출마를 결정하면 인천 부평을이나 경남 양산이 될 가능성이 있다.

   
  ▲ 박희태(사진 왼쪽) 한나라당 대표. ⓒ연합뉴스  
 
경남 양산이 재보선 지역으로 확정되지 않으면 인천 부평을에 출마하거나 10월 재보선까지 기다릴 가능성도 있다. 관심 포인트는 인천 부평을 재보선이다. 박 대표는 2월 임시국회에서 한나라당이 판정승을 거두면서 자신감을 얻었고, 인천 부평을 출마를 검토하고 있다는 언론보도도 나왔다. 한나라당 강세 지역인 경남 양산에 출마하면 당 대표가 편안한 길로만 간다는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다.

박 대표가 인천 부평을 출마를 확정하면 민주당은 이에 맞서는 전략 공천을 선택할 가능성이 있다. 현재 인천 부평을은 홍미영 전 민주당 의원과 18대 총선에 출마해 38.15%를 득표한 홍영표 당시 민주당 후보가 출마를 준비하고 있다.

박희태-최문순, 최문순-박희태 맞대결이 성사되려면 박 대표가 인천 부평을 출마를 결정하고, 민주당이 대항마로 최문순 의원을 전략 공천하는 시나리오가 가능하다. 최문순 의원의 5일 공개 서한은 민주당 지도부와 교감이 이뤄진 결정으로 보기는 어렵다.

노영민 민주당 대변인은 미디어오늘과의 통화에서 “모르는 일”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민주당도 승산이 있다고 판단하면 최문순 카드를 전략공천의 방안 중 하나로 선택할 가능성이 있다. 인천 부평을 재보선 문제는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의 거취 등 변수가 적지 않은 상황이다.

최문순-박희태 ‘언론법 재보선’이 성사될 것인지는 현재로서는 예측하기 어려운 문제이다. 그러나 최문순 의원은 이번 결정으로 언론법 문제를 4·29 재보선의 정치 쟁점으로 올려놓는데 성공했다. 주요 언론은 최문순 의원의 공개서한을 기사로 다뤘다. 최문순-박희태 맞대결이 실제로 성사된다면 4·29 재보선의 가장 큰 관심사로 떠오를 것으로 보인다.

재보선 당선을 통해 차기 국회의장 자리를 노리는 박 대표 입장에서는 야당 초선 의원의 의원직을 건 공개 도전장이 반가울 리 없다. 최문순 의원이 언론법을 놓고 한판 승부를 벌이자고 공언한 만큼 박 대표의 패배는 언론법 처리 여부에도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최 의원은 “정치 경륜이나 인지도, 정당 지지도, 조직력 등등 어느 면으로 보더라도 박 대표께서 이길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그러나 저도 이명박 정부의 민주주의 파괴와 언론 유린을 잘 알려 낼 수 있다면 만만치 않게 이겨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자신감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다음은 최문순 의원의 공개서한 전문이다.

박희태 대표님! 한 판 붙기를 청합니다.

한나라당 박희태 대표님! 이번 4월 보궐 선거에 출마하신다는 얘기를 듣고 있습니다. 그래서 외람되지만 감히 청하고자 합니다. 기왕이면 저와 한 판 붙어 주시기를 정중히 요청합니다. 저는 의원직을 사퇴하고 달려갈 생각입니다. 장소는 어디든지 좋습니다. 대표께서는 공천권을 가지고 계실 터이니 어디든지 선택이 가능하실 줄 압니다. 저는 제 마음 대로 할 수 없으니 당의 허락을 받는 절차가 남아 있긴 합니다. 

제가 대표님께 승부를 요청하게 된 이유는 이렇습니다. 대표께서 TV 인터뷰에서 언론 관계법(한나라당 용어는 미디어 법)을 논의하기 위한 ‘사회적 논의 기구’를 폄하하는 발언을 하셨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박 대표께서 여야가 합의한 내용을 채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격하시키는 것도 문제거니와 이를 통해 결국 언론 관계법을 한나라당 마음대로 처리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은 더 큰 문제입니다. 이미 두 차례나 여야 간에 큰 갈등을 겪으면서 어렵게 합의한 내용을 또 그렇게 무시하시겠다니 100일 후에 또 싸움을 벌이겠다는 뜻을 가지신 것으로 읽힙니다. 박 대표께서 이끄는 한나라당에서는 언론관계법을 진지하게 논의할 의지를 가지고 있지 않은 결과로 보입니다. 그래서 대표께 요구하게 됐습니다. 국민들로부터 직접 심판을 받아 보시지요.

왜 우리가 사회적 논의 기구를 요청하게 됐는지 다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언론은 정치권력을 감시하는 도구입니다. 그래서 감시를 받는 정치권력이 언론문제를 다루게 되면 감시를 무력화시킬 우려가 있습니다. 그래서 선진국에서도 사회적 논의 기구를 구성해서 언론 문제를 다루는 것입니다. 시간과 노력이 더 들더라도 사회적 논의를 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이 취지를 다시 상기시켜 드립니다. 

돌이켜 보면 현 정부가 언론 문제로 심판받을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닙니다. KBS에 경찰을 투입한 일, YTN에 용역을 투입한 일, MBC PD 수첩에 대한 검찰의 직접 수사, 언론 특보 출신들 낙하산 인사 그리고 기자 PD들에 대한 파면과 해고, 강압적인 언론 악법 추진 등등 우리나라 언론의 민주적 질서를 해체하는 일이 간단없이 진행됐고 아직도 진행되고 있습니다.

며칠 전 대표께서는 한나라당 의원들을 이끌고 국회 의사당을 점거하셨습니다. 저는 경악했습니다. 거대 집권 여당이 의사당을 점거하다니? 자신들이 그렇게 불법 폭력 행위라고 비난하던 그 일을 자신들이 하다니? 박 대표 자신께서 합의 서명한 일을 자신이 번복하기 위해서 그렇게 하다니? 참으로 희한한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세계적인 웃음거리가 아닐 수 없었습니다. 앞으로 한나라당이 서민들의 불법 점거 농성에 대해 어떤 입장을 취할지 몹시 궁금합니다. 어쨌거나 이 일도 결국은 언론 관련법과 관련한 합의 사항 몇 글자를 바꾸기 위해 그렇게 했습니다.   

박 대표께서는 내키지 않을 것입니다. 이겨야 본전이고 지면 망신이니까요. 충분히 이해합니다. 저라도 응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도 비례 대표로 3년 남은 임기를 던지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저도 그리 남는 장사는 아닙니다. 이겨봐야 본래 임기 3년 채우는 것이고 지면 끝이니까요. 아무래도 정치 경륜이나 인지도, 정당 지지도, 조직력 등등 어느 면으로 보더라도 박 대표께서 이길 가능성이 높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도 이명박 정부의 민주주의 파괴와 언론 유린을 잘 알려 낼 수 있다면 만만치 않게 이겨낼 수 있지 않을까하는 자신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정부 여당이 선포한 언론법 전쟁입니다. 대표님의 답변을 기다립니다. 

2009년 3월 5일                      

민주당 최문순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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