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신동아를 발간하는 동아일보가 마침내 2009년 2월17일 스스로 ‘신동아 미네르바는 가짜’라고 시인하고 사과문을 게재했다. 2008년 12월호에 시작된 신동아의 거짓행각이 2009년 3월호에 와서야 ‘희대의 오보’임이 판명난 것이다. 공신력을 인정받는 언론기관이 거짓행각을 벌여 진짜 미네르바는 구속되고 법적 처벌을 받는 위기상황이 왔음에도 불구하고 설득력없는 기사로 버티다가 결국 항복하는 과정에서 너무 많은 문제점을 남겼다.

언로가 통제되던 군사정권시절 심층보도와 민감한 주제를 다루며 독자의 알권리를 위해 노력하던 신동아의 모습과는 너무나 달라져버린 오늘의 신동아는 실망, 좌절, 조작, 불신, 오보를 상징하고 있다. 동아일보는 이런 점을 우려해서인지 진상조사만큼은 확실히 하겠다는 의지를 표했다. 동아는 사과문을 게재하면서 "조사 과정의 객관성을 담보하기 위해 진상조사위에 외부의 법조인과 언론학자도 참여시켜 조사 내용을 철저하게 검증받고 조사가 마무리 되는대로 독자 여러분께 결과를 알려드리겠다"고 덧붙였다.

이 말을 곧이곧대로 믿고싶지만 그동안 언론사들의 행태를 보면, 별로 설득력이 없다. 외부의 법조인, 언론학자로 누구를 선택할 지는 동아일보가 자의적으로 판단, 선택하겠지만 이들이 들러리 역할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형식적으로 외부인사를 동원하여 객관성을 담보하지만 실제로는 동아일보에 우호적인 인사 혹은 무늬만 객관, 실제는 동아식구같은 언론학자가 가담하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언론학자 모두가 정의와 진실에 목말라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1990년대 한국언론학회는 중앙일보가 ‘김일성사후, 최초 동토의 땅, 북한을 가다’라는 기획시리즈에 언론상을 수여했다. 그러나 곧 오보논란에 휘말리자 자체 진상조사위원회를 구성했지만 결과 발표조차없이 흐지부지 되고 말았다. 그 이유가 이유같지 않았다. 진상조사위원회가 ‘정치적 판단을 내렸기 때문’이라는 후문이 들렸을 뿐이다.

동아일보가 진상조사에 그처럼 고심하고 있다면 학계에서 공정성, 객관성을 인정받는 학자를 찾기란 어렵지않다. 진상조사위원을 누구로 구성하느냐는 동아일보의 진상조사 의지를 가늠하는 첫 번째 시험대가 될 것이다. 동아일보에 공개적으로 필자를 ‘진상조사위 언론학자’ 후보군의 한사람으로 자천하고자 한다. 그러나 현실성이 없음을 알고있기 때문에 공허한 주장이 될 것이라고 본다. 이런 일련의 행태가 ‘미네르바’를 악용한 신동아의 상업주의를 뒷수습하는 형식적 수순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신동아는 단순히 있을 수 있는 오보를 저지른 것이 아니다. 한 개인의 인권을 짓밟았고 공신력있는 언론기관의 사회적 책임을 방기했다. 이것은 일종의 사회범죄행위에 해당한다. 그 이유를 제시하기 전에 분명히 해 둘 일이 있다. 언론사의 오보에 대해 무조건 잘못됐다고 매도하는 것은 곤란하다는 점이다.

언론사는 불가피하게 오보를 할 수 있고 이 점에 대해 한국사회는 좀 더 너그러워질 필요가 있다. 그러나 법적으로도 그런 오보가 ‘오로지 공익을 위하고 진실이라고 믿을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을 때’라고 규정하고 있다. 언론사라는 자사이익이 아니고 취재성실의 의무, 검증의 과정을 모두 다했음에도 불구하고 오보가 나왔다면 그것은 법적으로도 처벌해서는 안 된다는 일종의 언론사 면책특권을 부여하고 있다.
신동아는 과연 여기에 해당하는가. 이제 그 판단은 진상조사위원회에서 하게되겠지만 그동안의 과정에서 나타난 문제점을 분석하면 회의적이다.

우선, 신동아가 주장하는 K씨는 조작된 허구의 인물인지 실제인물인지에 대한 기초적인 물음에조차 답변하지 않았다. 2008년 12월호는 ‘미네르바’를 단독으로 인터뷰한 것처럼 대서특필했지만 검찰에 구속된 미네르바는 인터뷰 요청은 받았지만 거절한 것으로 보도됐다. 이 당시는 설혹 오보를 했더라도 진짜 미네르바가 구속까지 된 상황에서 2009년 2월호에 다시 ‘7명의 미네르바 그룹’이라고 주장할 정도면 회사전체 차원에서 나름대로 검증과정을 거쳤다고 봐야 한다. 사과를 할 것인지 자신들의 주장이 맞다고 계속 밀고 나갈 것인지 늦어도 2월호에서는 밝혔어야 했다.

그런데, 신동아는 2월호에서조차 K씨 등 7명의 미네르바 그룹이 검찰에 구속 기소된 박대성씨와 IP 주소를 공유했다고 주장했는데 왜 그 조작된 IP 주소가 하필이면 박씨의 집 PC 주소인지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못했다. 특히 미네르바가 다음 아고라 게시판에 쓴 글이 모두 'holy~'로 시작되는 박씨의 다음 ID로 로그인 한 뒤 작성됐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신동아 3월호에 관심이 집중돼 왔다. 거짓으로 거짓을 덮기에는 사실이 너무 명백해져버렸다.

신동아는 K씨가 뒤늦게 당초 발언을 번복했다고 밝혔지만 애초에 왜 2월호 취재에서는 이런 사실을 밝히지 못했는지에 대해서도 의문이 남는다. 단순히 IP 주소를 공유하는 것으로는 부족하고 박씨의 ID와 비밀번호를 알지 못하면 K씨 등이 미네르바 행세를 할 수 없었을 거라는 상식적인 의혹조차 해명하지 못했다.

또한, 따지고 보면 박씨의 구속과 법적 처벌의 이면에 신동아의 책임이 가볍지 않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사이버상에서 활동하는 인터넷 논객을 스타로 만드는 데는 오프라인 언론사가 항상 큰 역할을 한다. 신동아가 그렇게 대대적으로 ‘띄우고…’ 집중조명하지 않았다면 박씨가 인터넷상의 글때문에 이렇게 중죄인처럼 법적 처벌대상까지 됐는지는 의문이다.

신동아는 이번 미네르바 파동으로 ‘상업적 목적’은 달성했을지 모르지만 그동안 신동아가 추구해온 그 가치와 공신력은 땅에 떨어졌다. 뒤늦게 진상조사 구성 운운하지만 그 시기조차 놓쳤다. 12월호 보도시점부터 미네르바의 정체에 대해서는 사회적 관심사가 됐고 의구심과 문제점이 지속적으로 제기됐기 때문이다. 여기에 확인보도를 한 것이 2009년 2월호였기 때문에 이미 검증과 확인절차를 마친 것으로 봐야 한다.

‘K'씨가 거짓말했기 때문에 신동아가 속았다는 이유가 타당한 측면을 갖기 위해서는 12월호 보도 직후여야 한다. 기자가 신이 아닌 이상 취재원의 거짓말에 속을 수도 있지만 몇가지 간단한 취재 확인만 했어도 2월호에서처럼 또 다시 대대적으로 엄청난 주장은 할 수 없다. 다른 목적이 있음을 의심하지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유사사례를 살펴보자.

조선일보가 발행하던 여성지 ‘FEEL’이라는 잡지에서 있었던 일이다. 이 잡지는 1994년 8월호 ‘독점수기 호스티스 출신 서울대 여대생의 충격고백’이라는 제목으로 서울대 사회대 86학번의 여학생이 운동권 선배와 연애끝에 배신당한 후 호스티스 생활과 재벌회장과의 동거 등의 과정을 거치면서 남자들에 대하여 부정적인 생각을 갖게 됐다는 선정적인 보도를 게재했다.

이에 서울대 사회대 86학번 여학생 총 48명중 11명의 신청인들이 서울대 86학번 여학생으로서 기사내용과 같은 경력을 가진 사람이 존재하지않는다는 정정보도문을 청구했지만 이 잡지는 거부했다. 당시 필자는 문제의 여성지 편집국장에게 실체를 밝히지못하는 이유를 물었다. 그는 ‘또 다른 취재원의 신원이 밝혀지고 피해가 우려되기때문’이라며 법적으로 대응하겠다고 주장했다. 그 걱정해주는 취재원이 허구의 인물이 아니냐고 물었지만 법적대응을 내세우며 세월의 망각에 기대는 모습이었다.

결국 이 여성지는 2년의 세월끝에 허구의 인물을 내세워 상업적 목적을 추구한 것으로 드러났고 법적으로도 패소했다. 마음고생을 한 신청자들의 긴소송에 비해 변호사 수임료에도 미치지못하는 100-300만원 정도 보상을 받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정보가 공개되고 비밀이 줄어드는 사회에서 시사월간지들이 설 곳을 잃어가고 있다. 그러나 공익보다 사익을 추구하고 한 개인의 인격권을 침해하는 보도를 통해 생존권을 연명해가는 식은 스스로의 존재를 부정하는 행위가 된다. 받아들이기 힘든 명백한 오보를 범한 신동아와 자신의 소신을 칼럼형태로 인터넷에 게재한 인터넷논객중 누가 처벌받아야 할 것인가. 법의 존재이유를 법집행을 하는 검찰과 법원이 부정할 때 정당한 권위조차 땅에 떨어지게 되는 법. 잘못은 누구나 범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잘못에 대한 사과는 적절한 시기에 진정성을 담은 것이어야 한다는 점을 동아일보에 상기시켜주고자 한다.

   
 
 
김창룡 교수는 영국 런던 시티대학교(석사)와 카디프 대학교 언론대학원(박사)을 졸업했으며 AP통신 서울특파원과 국민일보 기자, 한국언론재단 연구위원 등을 지냈다. 현재 인제대학교 언론정치학부 교수 겸 국제인력지원연구소 소장으로 재직중이다. 1989년 아프가니스탄 전쟁, 1991년 걸프전쟁 등 전쟁 취재 경험이 있으며 '매스컴과 미디어 비평' 등의 저서와 논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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