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가 다시 '3월 위기설'을 들고 나왔다. 한겨레는 16일 8면 "CDS 가산금리 급등… 불거지는 3월 위기설"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올해 만기가 돌아오는 국내 은행 외화 채무 350억 달러 가운데 3월에만 약 100억 달러가 집중돼 있다"면서 "금융권 일각에서 3월 위기설이 제기되고 있다"고 전했다. 
 
한겨레는 특히 "130억 달러의 엔화 차입금 가운데 10억~20억 달러도 다음 달에 만기가 돌아온다"면서 "국내 금융기관들은 여전히 자체 외화 조달은 엄두도 내지 못하는 모습"이고 한겨레는 "위기를 언급할 단계는 아니지만 조그마한 악재에도 금융시장이 크게 출렁거리고 있는 점을 고려하면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이른바 3월 위기설의 원조는 인터넷 논객 미네르바다. 특히 문제가 되는 건 지난해 11월 월간 신동아에 미네르바의 이름으로 실린 "최악의 스태그플레이션 온다 환투기 세력 '노란 토끼'의 공격이 시작됐다"는 제목의 기고문이다. 이 글은 검찰에 구속된 박대성씨와 무관한 K씨 등 7명의 그룹이 썼다는 게 신동아의 주장이다. 
 
K씨 등은 이 글에서 노란 토끼는 "10년 전 외환위기 당시 환율을 끌어올렸던 바로 그 환투기 세력"이라면서 "외양은 미국 헤지펀드지만 그 배후에는 일본 엔캐리 자본이 버티고 있다"고 경고했다. 이들이 원화 약세와 정부의 경기부양 정책을 틈타 상대적으로 강세인 달러를 빼내가기 위해 한국을 주 타깃으로 삼고 있다는 주장이었다. 
 
   
  ▲ 한겨레 2월16일 6면.  
 
K씨는 "스태그플레이션 국면을 맞이하는 정부 대응이 현재같이 이어진다면 내년 3월 이전에 파국이 올 수 있다"면서 특히 "일본의 IMF 외환보유고 제공 등 일본계 자본의 저의를 주목해야 한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K씨는 신동아 2월호 인터뷰에서도 "노란 토끼는 일본 전후 세대 자금인 단카이 자금"이라면서 "일본 자금의 3월 침투를 확신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미네르바는 지난해 10월 말 아고라에 올린 글에서 "노란 토끼가 시작된 거야, 내년 꽃피는 봄이 되면 알꺼야"라고 슬쩍 흘린 바 있다. K씨는 신동아 기고문에서 "노란 토끼가 원화 약세와 정부의 경기부양 정책을 틈타 상대적으로 강세인 달러를 빼내가기 위해 한국을 주타깃으로 삼았다"면서 구체적으로 3월 위기설을 거론했다. 
 
검찰에 구속된 박씨와 신동아의 K씨가 서로 자신이 진짜 미네르바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굳이 따지자면 3월 위기설은 K씨의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K씨는 신동아 기고문에서 "연초부터 정부의 고환율 정책을 틈타 이들이 주식과 국내채권, 부동산을 서둘러 매각해서 외환시장에서 환차익을 얻어 송금했다"고 주장했다. 
 
한겨레의 3월 위기설은 K씨의 신동아 기고문의 연장선에 있다. 세계적인 신용 경색으로 외화 조달이 쉽지 않은 상황에서 일본계 자금이 한꺼번에 빠져 나가면서 외환위기가 닥칠 수 있다는 주장인데 한겨레는 여기에 엔화 차입금 만기가 3월에 집중돼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K씨와 신동아가 제기한 음모론에 한겨레가 한몫을 거들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다른 언론의 반응은 냉담하다. 일단 3월 만기가 엔화 차입금 규모가 그리 크지 않은데다 굳이 한꺼번에 빠져 나갈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한국일보는 16일 "3월 위기설의 허실"이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3월 위기설이 현실화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면서 "시장도 언론도 좀 진득해질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서울신문도 16일 3면 "3월 금융 꽃샘추위"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전문가들은 3월 위기설을 기우라고 일축한다"고 전했다. 이 신문은 "지난해 12월말 기준 3개월 외화 유동성 비율이 100% 수준이고 올해 들어 만기 1개월 이상 대외 차입도 100억달러에 이른다"면서 "대외 차입이 사실상 막혀 있던 지난해 4분기와 상황이 전혀 다르다"고 지적했다. 
 
일본 차입금 10억~20억 달러는 크게 문제될 정도는 아니라는 게 한국은행의 입장이다. 국내 금융기관들 충당금이나 자산 건전성도 다른 나라들과 비교하면 양호한 수준이다. 안병찬 한은 국제국장은 "최근 외화 유동성이 다소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3월 위기설이 현실화될 가능성은 작다"고 밝힌 바 있다.

물론 최근 금융시장이 매우 불안한 것은 사실이다. 외국환평형기금 가산금리가 치솟고 있고 CDS(신용부도스와프) 프리미엄도 급등세를 보이고 있다. 환율 역시 두달 만에 다시 1400원대를 넘어섰다. LG경제연구원은 최근 보고서에서 외국 자본 이탈이 당분간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그러나 위기의 징후를 예의주시하는 것과 근거 없는 위기설에 휘둘리는 것은 다르다. 지나친 낙관론을 경계할 필요도 있지만 언론이 위기설을 확대 재생산하고 나서면서 불안 심리를 조장하고 위기를 앞당기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경향신문과 국민일보도 16일 금융시장 불안에 대한 기사를 내보냈지만 비교적 차분한 논조로 접근했다.

한국일보는 "5개월 전, 그러니까 9월 위기설이 거짓 판명 난 직후 전혀 다른 차원의 대형위기가 왔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면서 "가짜 위기를 진짜로 믿고, 진짜 위기는 낌새도 차리지 못했던 쓰라린 추억을 정부도 시장도 잊어선 곤란하다"고 지적했다. 근거없이 떠도는 설에 휘둘리기 보다는 위기의 본질을 짚는 깊이 있는 분석과 전망이 아쉬울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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