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방송 사수 투쟁,  재승인 고비 뒤에도 위협요소 많아

지난해 6월15일 저녁, 초여름이라 아직 해가 떨어지긴 이른 시각이었다. 서울 남대문로 YTN 사옥 앞, 하나둘 모인 초가 모두 합쳐 6개. 그들은 ‘낙하산 사장 반대 투쟁’을 벌이고 있던 전국언론노동조합 YTN지부(지부장 노종면)를 지지한다며 모인 첫 번째 ‘YTN지키미’들이었다. 그리고 다음날인 16일, 6개의 초는 15개로 늘었다. YTN에 모인 촛불은 한목소리로 “막둥이 YTN을 지켜야 한다”고 말했다. YTN에 대한 시민들의 지지는 8개월이 다 되도 식을 줄을 모른다.

▷YTN노조 투쟁은 ‘막둥이’가 ‘윤택남’돼 가는 과정= 이명박 대선 캠프에서 방송특보를 지낸 인사는 언론사의 사장으로 올 수 없다는 YTN노조의 ‘낙하산 사장 반대 투쟁’이 10일로 208일째에 접어들었다.

지난 5일 열린 ‘공정방송투쟁 200일 문화제’에서 현덕수 전 지부장은 지난해 6월17일 연 첫 집회를 떠올렸다. “YTN노조는 집회를 꾸리는 것조차 낯설었던 조직이었다. 아무것도 할 줄 몰랐던 YTN노조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사회의 시시비비를 가리는 언론사에 대선 캠프 방송특보 출신인 구본홍씨는 안 된다는 한결같은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직업인으로서의 소명의식을 지키기 위한 노력이 모인 결과다.”

   
  ▲ 지난 5일 밤 서울 남대문로 YTN사옥 앞에서 ‘공정방송투쟁 200일 문화제’가 열렸다. 이치열 기자  
 
처음 YTN이 투쟁을 시작할 때 많은 사람들은 YTN노조에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하지만 서툴게 ‘상식’을 외치던 YTN노조는 이제 ‘비상식’에 맞서 언론자유를 지키는 살아있는 투쟁의 현장이 됐다.

올해로 16살이 되는 YTN이 ‘막둥이’를 거쳐 진정한 ‘윤택남’이 되어가고 있는 것으로 24시간 뉴스를 내보내는 보도전문채널의 정체성을 고민하며 성장통을 겪고 있는 셈이다(‘막둥이’와 ‘윤택남’은 시민과 누리꾼들이 YTN에 붙여준 별칭이다).

노종면 지부장은 “‘공정방송 사수 투쟁’을 통해 그간 구호로 그칠 수 있던 ‘공정방송’에 대한 염원이 YTN 기자들 스스로에게 체화된 것 같다”며 “외부단체와 시청자들에게 제대로 된 방송 만들겠다고 한 약속을 지킬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24일 재승인, 또 한 번의 고비= 재승인 심사를 앞두고 있는 YTN에게 오는 24일은 또 한번의 고비가 될 전망이다. 안팎에서는 YTN이 ‘조건부 재승인’을 받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하지만 내부에서 느끼는 불안감은 외부에서의 것보다 클 수밖에 없다.

황선욱 미디어전략팀장은 “재승인이 날것으로 기대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장담할 수도 없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황 팀장은 “재승인 심사 조건으로 걸었던 인사명령 이행과 방송사고 재발 방지 약속 등은 보도국장과 노조위원장이 대화를 통해 각각 입장을 밝혔고, 노조 역시 방송을 통한 투쟁을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며 “방송통신위원회에서는 재승인이 난 뒤 노조가 투쟁수위를 높이는 것을 걱정하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다른 회사쪽 관계자는 “조건부 승인이 나겠지만, 승인 조건이 뭐가 될지는 누구도 예상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현재 회사 쪽은 재승인 보류 사유에 대한 소명서를 방통위에 제출한 상태다.

YTN노조 역시 조건부 재승인이 나올 것으로 보고 있다. 재승인 보류 결정은 YTN노조의 투쟁을 약화시키는 등 정권의 이득이 크지만 이번에 재승인을 내주지 않을 경우 정권으로서 부담도 큰 데다 실익도 적다는 판단에서다.

방통위는 지난해 12월11일 ‘노사문제’ 등을 지적한 방송채널사용사업자(PP)재승인심사위원회의 보류 결정을 받아들여 YTN의 재승인 심사를 24일까지 보류했다. 당시 YTN은 mbn, GS홈쇼핑, CJ홈쇼핑 등과 함께 심사를 받았고 YTN을 제외한 다른 사업자는 재승인을 받았다. YTN에서는 이르면 이번 주 말에 일정이 잡혀 2월 셋째 주에 구체적인 일정이 진행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새 경쟁자 종편·보도PP 승인 배제 못해=현재 보도를 전문으로 편성하는 PP는 YTN과 mbn 둘 뿐이다. 하지만 방통위가 종합편성·보도PP의 승인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YTN의 새 경쟁자가 시장으로 진입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최종 결정이 내려지지는 않았지만 방통위는 종편PP가 필요하다는데 의견을 모았으며 올해 상반기 중에 종편PP 신규 승인을 위한 정책 방안을 내놓을 것으로 알려졌다. 보도PP 승인은 올해에 별도로 논의할 예정이다.

지금의 방송법과 신문법은 일간신문을 운영하는 기업이나 개인이 뉴스방송을 하는 지상파와 종편·보도PP 사업을 하지 못하게 막고 있으나 한나라당의 방송법 개정안이 통과될 경우 대기업과 신문사들의 방송진출이 현실화된다. 조선 중앙 동아일보는 종편PP 혹은 보도PP 진출에 대한 의지를 강하게 내비쳐왔으며, 다른 신문사도 법안이 통과되면 종편·보도PP를 하고 싶다는 속내를 보여왔다. 국민일보-쿠키TV, 머니투데이-MTN, 서울경제-SEN, 조선일보-비즈니스앤, 한국경제-한국경제TV, 한국일보-석세스TV 등 현재 많은 신문사들은 경제·증권 전문채널을 운영하고 있다.

한정된 시장에서 추가로 보도PP가 승인을 받을 경우 YTN으로서는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YTN 관계자는 “현재 방송 시장은 이미 포화상태임에도 추가로 종편·보도PP를 내주겠다는 것은 방송을 시청하는 이들이 원해서가 아니라 사업자들이 원하기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하지만 그는 “장기적으로는 종편PP든 보도PP든 승인이 날 것”이라며 “광고 파이가 커지지 않는 다는 점에서 당연히 YTN에 영향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 YTN 공기업 지분 매각되면 구조조정될 수도= YTN의 지분 구조 역시 YTN에게 위기 요소로 작용한다. 정부가 가지고 있는 YTN의 주식을 팔겠다는 정권 차원의 압력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내부에서는 사기업이나 신문사가 YTN의 지분을 소유하게 될 경우 공정한 뉴스를 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위기를 느끼고 있으며 이와 함께 대량 감원을 동반한 구조조정이 현실화될 거라는 우려도 나왔다.

YTN의 주요주주는 지난해 9월 말 기준 한국전력공사 자회사인 한전KDN이 21.4%, KT&G(옛 담배인삼공사)가 19.9%, 미래에셋생명이 13.6%, 한국마사회가 9.0%, 우리은행이 7.4% 등이다. 미래에셋생명과 이미 민영화된 KT&G를 제외하면 모두 정부가 최대주주로 있는 공기업들이다. 지난해 신재민 문화체육관광부 제2차관이 ‘YTN 공기업 지분 매각’ 발언을 쏟아낸 뒤 우리은행이 갑자기 YTN 지분 2만주 가량을 팔기도 했다. 압력이 이어지자 YTN은 “지분 매각 문제는 회사의 존립기반을 흔들고 뉴스 전문 채널의 공정성과 공공성을 훼손하는 것”이라며 ‘YTN 민영화(공기업 지분 매각) 반대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하기도 했다.

하지만 YTN 공기업 지분 매각에 대한 간부와 조합원 사이에 온도차가 느껴진다. 실국장 중 한 명은 “YTN노조의 투쟁도 문제지만 YTN의 공기업 지분이 팔린 뒤, 구조조정이 현실화되는 게 더 큰 걱정”이라고 말했다. 차장급 사원도 “YTN의 공기업 지분이 팔려 일반 기업이나 신문 재벌로 넘어갈 경우 대대적인 구조조정은 불가피할 것”이라며 “중간이상 위치에 있는 사원은 이 때문에 불안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노조 관계자는 “가끔 신 차관이 돌발 발언을 해 논란이 되긴 했지만 취재기자들이 취재한 바에 따르면 현재로서는 YTN 공기업 지분 매각 논의가 나오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만약 움직임이 있을 경우 적극 대응할 것”이라고 밝혔다. 앞서 YTN노조는 성명을 통해 “민영화 저지는 보도전문 방송의 공적 구조를 유지하기 위한 투쟁이며, 보수언론인 조중동에 국민의 방송 YTN을 넘겨줄 수 없다는 시대적인 요청인 동시에 공정방송의 근간을 지키는 가장 본질적인 투쟁”이라고 말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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