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밖으로 비행기가 휙휙 지나가는 모습을 보면 기분이 어떨까. 높이 555m, 122층. 국내에서 가장 높은 건물로 만들겠다는 제2롯데월드의 안전문제를 놓고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성남 서울공항에 이착륙하는 비행기들이 충돌할 위험 때문이다. 비행 고도가 280미터 정도로 이 건물의 절반 높이 정도밖에 안 되는데다 17~34초의 여유밖에 없어 조종사가 대처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상당히 부족하다는 지적도 있다.

흥미로운 건 국방부의 반응이다. 국방부는 지난 15년 동안 제2롯데월드 신축에 적극 반대해왔는데 이명박 정부 들어 찬성 입장으로 돌아섰다. 한때 서울공항 이전이나 활주로의 10도 이상 변경 등을 전제 조건으로 내걸었던 국방부는 활주로를 3도만 틀면 된다는 대안을 내놓았다. 국방부의 태도 변화는 건설비 1조7천억 원, 2만3천개의 일자리 창출 등에 대한 정부의 기대와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 한겨레 2월6일 1면.  
 
공군 조종사의 75%,관제사의 85%가 이 건물 신축에 반대한다는 설문조사 결과도 나온 바 있다. 이진학 전 공군참모부장은 5일 CBS 라디오에 출연, "항공기가 시속 360km 정도 되면 1분에 6km를 움직이는데 1km 가까이 떨어졌다고 해도 10초밖에 안 걸린다"면서 "입주해 있는 분들이 자기 높이보다 낮은 고도로 비행기가 지나다니고 소리도 들리고 어느 때는 상당히 가까이 올 때도 있고 그러면 불안감을 느끼는 것은 당연하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재벌에 대한 특혜 또는 정경유착이라는 비난이 쏟아지고 심지어 한나라당 의원들조차 "국방부가 안보보다 경제를 중시한다"며 반대 목소리를 내고 있는 상황인데 언론의 반응은 또 다르다. 한겨레가 "조종사 이탈 땐 10초면 제2롯데월드와 충돌" 등 적극적인 반대 입장을 보이고 있는 반면 조중동 등 이른바 보수 성향 신문들은 침묵하거나 기계적인 중립을 지키고 있고 경제신문들은 부동산 가격 동향 등에만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3일 국회 국방위원회에서 열린 공청회와 관련, 조선일보와 중앙일보는 아무런 기사도 내보내지 않았다. 한겨레는 "반대의견 예비역 장성들 갑자기 불참, 국방부·공군서 못 나가게 압력 의혹"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외압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한겨레는 6일에도 국방부가 제2롯데월드 승인을 막기 위해 2007년 10월 법 개정안까지 마련했다는 신학용 민주당 의원의 주장을 소개하면서 국방부의 입장 변화와 그 배경에 대해 의혹을 제기했다.

한편 다른 신문들은 대부분 논란 또는 공방 등으로 양쪽의 의견을 나란히 소개하고 있다. 활주로에서 5km나 떨어져 있기 때문에 비행 착각을 일으켜 건물에 부딪힐 확률이 희박하다는 주장과 항공기 결함이나 납치 등의 경우 대형 참사를 유발할 수 있다는 주장이 격렬하게 부딪혔다. "특정 건물을 짓기 위해 활주로 각도를 변경한 사례는 세계 어느 나라에도 없다"는 주장도 나왔다.

   
  ▲ 매일경제 2월4일 5면.  
 
제2롯데월드를 둘러싼 논쟁의 지형은 크게 세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째, 일부 위험이 있긴 하지만 경제적 효과를 생각해 위험을 줄이는 방향으로 추진하자는 주장으로, 정부의 입장이기도 하고 중도 성향의 신문과 경제지들도 대체로 동의하고 있다. 둘째, 안보의 위협을 무릅쓰고 특정 재벌에 특혜를 줘서는 안 된다는 입장으로, 한겨레가 가장 완강히 반대하고 있고 MBC도 국방부의 원칙 없는 태도 변화를 비판하는 보도를 몇 차례 내보낸 바 있다.

주목할 대목은 셋째, 조중동 등 보수성향 신문들의 애매모호한 반응이다. 보수단체들이 일찌감치 안보 위협을 문제 삼으면서 격렬히 반대하고 있는 가운데 이들 신문들은 아직까지 뚜렷한 입장 정리를 못하고 있다. '국민행동본부'의 양영태 부본부장은 지난달 MBC 라디오에 출연해 "이상희 국방장관이 몸보신을 위해 입장을 바꿨다"고 맹비난하기도 했지만 이들 신문은 보수진영의 목소리도 애써 외면하는 분위기다.

   
  ▲ 제2롯데월드 조감도.  
 
이와 관련, 대표적인 보수논객으로 꼽히는 김용갑 전 한나라당 의원이 지난달 평화방송 라디오에 출연해 "만약 좌파정권에서 지금처럼 활주로를 3도 틀어서 (롯데월드 건설을) 허용해주겠다고 했다면 보수단체에서 반대 집회를 하고 난리가 났을 것"이라고 지적한 것도 주목된다. 김 전 의원은 "이게 보수에서 이뤄진 이명박 정부가 이렇게 하니까 이러지도 못하고 참 곤혹스럽다, 걱정이 많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조중동의 입장에서는 이명박 정부의 기업 살리기와 일자리 창출 정책에 섣불리 제동을 걸기도 부담스럽고 그렇다고 안보 위협을 문제 삼는 보수 진영의 목소리를 마냥 무시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이들 신문이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는 것은 이명박 정부의 성장 이데올로기와 보수 진영의 안보 이데올로기가 충돌 또는 분열 조짐을 보이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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