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여당이 2월에 언론법 처리 근거로 내세운 '경제살리기', '국부 창출' 논리가 허점 투성이라는 지적이 자유선진당 토론회에서 제기됐다. 자유선진당은 4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소회의실에서 '미디어 다양성 확보와 신문 방송 겸영 문제'(주관 김창수 미디어대책위원회 위원장) 주제로 미디어대책위원회 제1회 정책토론회를 열었다.

이회창 자유선진당 총재는 이날 축사에서 "언론이 공정성 잃고 여론 독과점 있을 때를 피부로 겪었기 때문"이라며 "현재 우리 당은 한나라당이 내세운 법안은 그런 측면에서 겸영 비율 등에서 미흡하다"고 포문을 열었다.

그동안 정부·여당에서 "융합되면 바로 일자리 2만 명, 무궁무진한 새로운 일자리로 젊은이 위한 일자리가 많이 생긴다."(이명박 대통령), "엄청난 일자리 창출하고 엄청난 국부를 창출할 것"(박희태 한나라당 대표), "'미디어산업발전법안'이 통과되면 방송분야에서만 당장 2만 개의 일자리가 새로 생겨난다. 연관산업의 생산유발효과도 수십조 원에 달한다."(홍준표 한나라당 원내대표)는 주장이 이날 조목조목 '각개격파' 됐다.

장밋빛 IPTV 시대, 일자리 창출? "근거 없다"

   
  ▲ 자유선진당은 4일 오전 10시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소회의실에서 '미디어 다양성 확보와 신문 방송 겸영 문제'(주관 김창수 미디어대책위원회 위원장) 주제로 미디어대책위원회 제1회 정책토론회를 열었다. ⓒ김창수 의원실  
 
토론 발제를 맡은 최영묵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의 '뻥튀기 일자리 보고서'를 문제로 지적했다. 이 보고서는 정부·여당이 언론법 통과시 유발되는 일자리 규모로 주로 인용된 것이다. 최 교수는 "2만 몇 천은 산정 근거를 확인할 수 없다"며 "겸영이 되면 매체 수 줄어든다. 고용이 늘어날 수 없다. 상식인 것"이라고 반박했다.

토론 발제문에 따르면, 미국 연합통신위원회(FCC)가 언론의 소유제한 규제를 완화한 이후 거대 미디어 그룹이 미국 전체 언론 시장의 약90%를 장악하게 되면서 언론계 종사자수가 감소했다. 특히 1996년 FCC가 언론사의 소유제한을 완화했던 '텔레커뮤니케이션법'이 통과된 이후 언론계 종사자들의 수가 전체적으로 감소했다. 구체적으로 아나운서는 1999년 4만5010명에서 2003년에는 3만8990명으로 줄었고, 기자는 1999년 1만7530명에서 2003년 1만6350명으로 감소했다.

정부·여당이 IPTV 시대의 고용 창출을 강조하는 것도 도마에 올랐다. 최 교수는 "핵심은 콘텐츠 경쟁력"에 따라 시장 상황이 좌우된다며 "뉴스가 기본적으로 각계 매체에서 양질의 메시지가 만들어져야 시청자와 네티즌의 만족도도 높아진다"고 설명했다.

그는 발제문에서 "IPTV 사업자가 콘텐츠 확보를 위해 많은 투자를 해야만 하는데 숙원이던 지상파 재전송이 해결됐기 때문에 얼마나 콘텐츠 영역에 투자할지 불확실하다"고 의문을 제기했다. 즉, 정부 정책의 핵심이 막연히 IPTV 시대를 강조할게 아니라 경쟁력 있는 콘텐츠 확보 방안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지적이다.

일간지 규제 풀고 인터넷은 옥죄고, "인터넷 규제 보면 당혹스럽다"

정부·여당이 주장하는 언론법 처리 입장이 '제각각'인 것도 문제로 제기됐다. 이남표 MBC정책협력팀 전문연구위원은 "박희태 대표, 홍준표 원내대표는 '무엇보다도 미디어법안 핵심은 경제살리기'라고 한다. 어제 방송학회 토론회에선 정병국 의원이 '경제 살리기가 중요한 목표 아니다. 우리가 제일 중요한 건 여론 다양성'이라고 말했다"며 "정부·여당의 입장이 무엇인지 모르겠다"고 꼬집었다.

언론법을 '경제 살리기법'으로 포장한 것이 세계적으로 이례적인 경우라는 지적도 나왔다. 이남표 위원은 "세계 어떤 나라에서도 교차 소유 문제, 대기업의 방송 진출 문제를 경제적 문제로 먼저 접근하지 않는다"며 "소유 규제의 가장 큰 목표는 (여론)다양성"이라고 반박했다.

특히 정부·여당의 일관되지 않는 입장은 인터넷 규제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정혜승 포털 DAUM 대외협력 부장은 "미디어사업자로서 당혹스런 측면이 있다. 인터넷 미디어 규제를 보면 세계를 놀라게 한다"며 구체적인 사례를 제시했다.

"다른 나라들은 인터넷 실명제만 한다고 해도 놀란다. 미디어 관계법에서 신방 겸영 이슈 때문에 관심 덜 받고 있는 정보통신망법(사이버모욕죄 포함)이 있다. 개정안을 보면 '모니터링 의무화 조항'이 있다. (예를 들어 게시판에)'누구누구 멍청하다'는 댓글이 써졌는데 (포털이)안 지웠다가는 소송을 당하는 근거가 되는 법이다. 법적으로 의무화되는 것이다.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것이다."

이에 대해 최영묵 교수도 "설득의 기본 논리엔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며 "글로벌 스탠더드하면서 일간지는 규제 안 하려고 하고 다른 영역의 규제는 강화하려하느냐"고 따져 물었다.

미디어 산업의 위기? "촛불 시위 때 수십 년 보던 조선일보 끊었다",  "언론 신뢰의 위기"

정부·여당이 현재 언론 현실을 산업적인 시각으로만 바라보는 것도 문제로 지적됐다. 이재국 경향신문 미디어 팀장은 "(지금 국민들이 언론에게)방통 융합 통해 신방 겸영을 통해 일자리 2만개 나오는 것을 원하는 것일까"라고 물은 뒤 "사회적 약자의 권리에 대해 알려줄 수 있고, 용산 사태에서 보듯 국민을 망루로 올라가게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입장을 다양하게 대변하는 언론을 원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재국 팀장은 "언론법은 정치인들이 만들지만 결과적으로 미디어공룡이 탄생한 이후 재벌 방송이 언론권력을 행사하게 될 것"이라며 "언론 권력에 정치가 왜곡되고 서민의 삶도 왜곡이 될 수 있다.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이치수 자유선진당 정조위원장은 발언을 자청해 "촛불 시위 때 수십 년을 보던 조선일보를 끊었다. 왜냐면 내 눈에 보았던 촛불 현장이 조선·동아에 전혀 다뤄지지 않더라"며 "제2 롯데월드 같은 첨예한 문제도 중앙일보에선 (꼼꼼히)한 자도 안 다룬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정혜승 부장은 현 언론 현실에 대해 "왜 인터넷 논객들이 화제가 될까요. 정보는 넘치는데 사람들이 신뢰할 수 있는 눈길 가는 정보는 많지 않기 때문"이라며 "미디어빅뱅전은 산업의 위기가 아닌 신뢰성의 위기"라고 주장해 눈길을 끌었다.

대안은? 기자 노조대표 전문가 참여한 "국민대표자회의", 여론 독과점 사전 규제

이날 토론회에서 언론법을 처리하기 전에 사회적 논의를 충분히 하고 겸영 완화에 따른 부작용을 방지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제안도 제기됐다.

이재국 팀장은 "미디어 특위, 저널리즘 특위를 만들어 법안을 만들자"고 제안했다. 이 팀장은 토론문에서 프랑스 사례를 인용했다. 프랑스는 사르코지 대통령이 지난해 10월2일 엘리제궁에 신문사 경영자, 기자, 노조 대표, 언론 전문가들을 초청해 신문의 위기를 다룰 '국민대표자회의' 개막 선포했다. 또 독자와 시민등 152명이 참여하는 토론회를 열었고 10주간 걸쳐 TV 인터넷 중계를 한 바 있다.

권호영 한국방송영상산업진흥원 정책연구팀 책임연구원은 "특정지역에서 한 기업이 TV 방송사, 라디오 방송사, 신문사, 케이블 TV를 겸영할 경우에 그 지역에서 여론 집중으로 인한 폐해는 매우 클 것"이라며 사후 규제가 아닌 사전 규제를 제안했다.

권호영 연구원은 △방송시장에서 시청점유율을 일정비율 이하로 제한 △신문시장에서 발생부수(ABC제도 정착이전에는 매출액으로 가능) 점유율을 일정비율 이하로 제한, △신문시장에서 일정 비율 이상의 점유율을 보유한 사업자는 방송시장에 진입 금지 △방송시장에서 일정 비율 이상의 점유율을 보유한 사업자는 신문시장 진입 금지 등을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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