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 무너져도 여러분들이 들어주시는 촛불 희망을 봤습니다. 이 참담한 일이 유가족들만의 문제가 아니란 거 많은 분들이 함께 해주셔서 외롭지 않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집회는 처음입니다. 아버지들이 돌아가시지 않았다면 집회 나가와 시위에 나가서 마이크 잡고 발언 하리라고 상상도 못했을 것입니다.…누가 거리로 내몰고 집으로 내몰았습니까. 아버지를 내몰고 처음 집회에 와서 쫓겨나서 처음 집회에 나왔습니다. 살기 위해서. 운동권이요? 운동권은 누가 만듭니까. 이 사회와 부자들이 만듭니다. 재개발이 시작되고 운동권이 되었습니다. …우리 가족들은 똑같은 시민들이었습니다. 혼자 싸우기 벅차서 똑같은 처지의 사람들이 모인 것입니다. …나의 사랑하는 아버지 앞에서 품안에 앉아서 '아버지 사랑해요' '아버지 사랑해요'라고 해보고 싶습니다."

   
  ▲ '이명박 정권 용산 철거민 살인진압 범국민대책위원회'는 31일 오후 서울 중구 청계광장 부근에서 '이명박 정권 용산 철거민 희생자 2차 범국민 추모 대회'를 열었다. ⓒ이기범 언론노보 기자  
 
31일 오후 7시께 서울 중구 청계광장 부근. 8000명(주최측 추산·경찰 추산 1500명)의 시민들은 "이성수 열사 살려내라. 윤용헌 열사 살려내라. 이상림 열사 살려내라. 양회성 열사 살려내라. 한대성 열사 살려내라"며 유가족의 울음 섞인 절규에 화답했다. 이날 경찰은 추모 대회가 예정된 청계 광장을 전경 차량으로 원천 봉쇄했지만, '이명박 정권 용산 철거민 살인진압 범국민대책위원회'는 인근에서 '이명박 정권 용산 철거민 희생자 2차 범국민 추모 대회'를 이어갔다.  
 
   
  ▲ 추모대회에 참석한 시민 모습. 최훈길 기자 chamnamu@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 배은심씨는 연단에 올라 "국민을 하늘 같이 여기겠다는 이명박 정권이 1년도 못돼서 귀중한 목숨을 공권력에 의해 앗아갔다. (그런데)이명박 정권은 추모제를 거행하지 못하게 경찰차로 막아 그 속에는 아무도 들어가지 못하게 했다"며 개탄했다. 그는 "그렇지만 이렇게 많은 국민이 이 자리에 모여서 돌아가신 분들의 명복을 빌고 있다"며 목청을 높였다.

   
  ▲ 경찰 차량이 청계 광장을 봉쇄한 모습. 최훈길 기자 chamnamu@  
 
오히려 경찰의 원천 봉쇄로 시민들의 함성은 더욱 커졌다. 강기갑 민주노동당 대표가 연단에 올라 "(경찰이)원천봉쇄해서 애도 심정에 대못질을 하고 있다. 모이는 시민, 국민들의 뜨거운 힘이 영정들의 마음을 달래고 추도하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그러자 청중 곳곳에서 "옳소"라며 박수 갈채가 쏟아졌다.

강기갑 대표도 "추도사가 아니라 규탄사를 해야 영정들의 한을 조금이나마 달랠 수 있지 않나. 책임질 사람이 너무나 명백한데 무엇을 더 밝힐 것인가"라고 목청을 높이며 팔을 치켜 올렸다.

   
  ▲ 추모대회장 인근에 걸린 '걸개그림' 모습. 이명박 대통령과 김석기 경찰청장 내정자를 해학적으로 그린 모습이 눈에 띈다. 최훈길 기자 chamnamu@  
 
노회찬 진보신당 공동대표는 이명박 대통령을 겨냥해 "1년 전 청계 광장에서 촛불 있었을 때 양초를 어떻게 샀는지 물었다"며 "지금은 어떻게 무모한 진압으로 사람이 죽었는지는 조사를 하지 않고 돈을 어떻게 모아서 누구한테 줬는지 계좌추적하고 있다. 1년 전 5월과 똑같은 것 아닌가"라고 꼬집었다. 

진영옥 민주노총 수석부위원장은 "이 죽음은 이명박 정권이 집 없는 세입자를 내쫓고 죽어도 좋다는 것을 뜻한다"며 "우리는 이제 폭력 살인 정권에 책임을 묻고 검찰, 보수언론도 바로 묻어버리겠다"고 다짐했다.

용산 참사에 대한 이명박 정권의 책임을 묻는 것을 넘어 시민들의 각성을 촉구하는 추도사도 나왔다. 김해자 한국작가회의 자유실천위원장은 "우리 모두의 무감각이 당신들을 죽음으로 내몰았습니다. 갈 곳 없는 자들을 폭력으로 짓밟고 쫓아내고 하루를 못 기다려 깡패와 공권력을 동원하는 자들에게 권력을 쥐어 준 우리 모두는 죄인"이라며 추모시 '미안합니다 부디 용서하세요'를 낭송했다.

   
  ▲ '더 이상 죽이지 마세요' 등 추모 리본을 달고 있는 모습. ⓒ이기범 언론노보 기자  
 
연단 옆에는 간이 '용산 살인진압 희생자 합동 분향소'가 마련됐다. 시민들은 향을 피우고 고인들의 명복을 빌었다. 일부 시민들은 분향소 게시판에 '우리는 그저 살고 싶었다', '같이 살자 우리도 같이 살자', '개개인의 일이 아니고 우리 모두의 일입니다'라는 메모를 남기고 가기도 했다.

   
  ▲ 추모대회에서 촛불을 들고 있는 모습. ⓒ이기범 언론노보 기자  
 
한편, 범국민대책위원회는 2월 이명박 대통령 취임식과 맞춰 추모 대회를 계속 열어나갈 방침이다. 대책위 관계자는 연단에 올라 "7일 오후 4시 청계 광장에서 3차 추모대회를 열고, 10만 명 이어 100만 명이 (이 대통령이)취임한지 1년 된 날 25일 모일 것"이라며 "더 이상 죽을 수가 없어서 우리는 투쟁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날 밤 7시 이후 수천 여명의 시민들은 종로에서 명동까지 거리 행진을 이어갔고, 명동 성당에서 촛불 집회를 열기도 했다.

   
  ▲ 추모 대회가 끝나고 명동 부근에서 시민들과 경찰이 대치하고 있는 모습. ⓒ이기범 언론노보 기자  
 
 

[전문] 미안합니다 부디 용서하세요

당신들을 보았습니다
꿈속에서 저는 죽어가는 당신들을 안고 뛰었습니다
피할 틈도 주지 않고 전차가 도시 한가운데를 미친 듯 질주하고 있었습니다
아이를 살리려고 전차를 온몸으로 받아내며 한 에미가 바스라지고 있었습니다
병원으로 뛰어가는 동안 당신들은 계속 쪼그라들어
마침내 아주 갓난아이처럼 작아졌습니다
철석같이 믿은 병원은 당신들을 돌봐주지 않았습니다
아이가 진동하듯 떨더니 눈이 스르르 감겨지는 즈음에야 저는 소리쳐 항의했습니다
그제서야 의사는 당신 입에 주사바늘을 꽂아넣었습니다
저 가녀린 입에 주사바늘을 꽂아넣다니!
소스라치며 막으려다 그래도 의사의 처치이니까 하고 믿으며 기다렸습니다
의사가 건넨 우유병을 아이에게 먹이려는데 우유병이 뚫려서 다 새어버렸습니다
다시 우유병을 가져와 먹이는데 몇 모금 마시다 영영 눈 감아버렸습니다
저는 아기를 흔들고 통곡하였습니다
그제서야 그 아이를 죽게 한 제 어리석음을 알아 차렸습니다
아기는 제가 죽였습니다. 아기 입술에 물만 축여주었더라도
아니 병원과 의사를 철석같이 믿지만 않았더라도
아기는 곧 기운 차리고 방싯거렸을 겁니다
더 간절하게 말했어야 합니다 더 간절하게 행동했어야 합니다

여기 살아남아 님들 앞에 선 우리 모두는 죄인입니다.
이미 당신들은 죽음에 더 가까이 가고 있었습니다
살육에 가까운 당신들의 비참한 죽음 앞에 무슨 말이 필요하겠습니까
살려고 살아보려고 잘 살아보려고 몸부림친 곳이 벼랑 끝이었습니다
가공의 방법으로 자행된 공권력을 막지 못한 우리 모두는 죄인입니다
개발과 발전의 이름으로 오직 배부른 자들의 배를 더 불리기 위해 하늘 높이 쌓아가는 부자들의 바벨탑, 너도나도 그 위에 서고자 서로 다른 말, 서로 다른 생각으로 삶을 짓밟고
서로를 훼손하고 관계는 금이 가고 공동체는 파괴된 괴물 같은 바벨탑
이 미쳐 돌아가는 사회를 막아내지 못한 우리 모두는 죄인입니다

욕망과 증오의 바벨탑 한 가운데서
화염이 솟는 순간 뜨겁게 소리쳤을 아우성과
입으로 들어간 불길이 목구멍과 식도를 태우고 내장을 그을리는 순간,
녹아내린 나일론 천에 달라붙은 엉겨 붙은 살점과
타들어간 뼈들의 비명소리가 아직도 들리는데
뜨겁다고 아프다고 소리조차 내지르지 못한,
아아아 모음뿐인 외침과 절규가 환청처럼 들리는데
이 아픈 주검들 앞에 예의도 슬픔도, 하다못해 염치조차 없이
개죽음을 만들고 있는 파렴치한 세상을 날마다 받아들여야 하는
살아 있는 우리 모두는 정말 죄인입니다
이런 아픈 세상을 아픔 없이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무감각이 당신들을 죽음으로 내몰았습니다
갈 곳 없는 자들을 폭력으로 짓밟고 쫓아내고 하루를 못 기다려
깡패와 공권력을 동원하는 자들에게 권력을 쥐어 준 우리 모두는 죄인입니다

국가의 지도자는 국민의 어버이입니다
살아보려고 몸부림치다 몰려 마침내 벼랑에 선 자식에게
어느 아버지가 자식을 벼랑 아래로 밀어낸답니까
억울하다고, 내 말을 더 들어보라고, 아직 갈 곳이 없다고 하소연하는 자식에게
어느 어머니가 으름장을 놓으며 각목으로 두들겨 패고 석유를 부은단 말입니까
국가의 녹을 먹는 권력자는 국민의 어버이여야 합니다
뼈 빠지게 일해도 희망이 없는 세상에서 그래도
하루 종일 손발이 부르트도록 일하고 부모 공양하고 자식 길러내며
희망의 끝자락이라도 붙들고 사는 가난한 자식들에게
어느 부모가 생존과 죽음의 양자택일만을 강요한답니까
어느 미친 어버이가 살아보려고 몸부림치는 가난한 자식들의 것까지 빼앗아
부자 자식의 바벨탑에 보탠답니까

부디 용서하세요
몇 십 년밖에 안 살고도 어찌 우리는 이 따위 세상에 익숙해질 수 있습니까
당신들의 죽음은 전적으로 우리 책임입니다
우리가 하지 않은 생각이 대체 어찌 이 세상에서 벌어질 수 있겠습니까
생명이 생명을 죽이는 생각을 하고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말을 하고
폭탄과 화염 속에서 죽이고 죽어가는 오늘 이 세상에서
대체 누구에게 심판의 잣대를 들이대야 합니까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짓을 용납한 우리 모두가 죄인입니다
가난하고 사람들이 더 가난해지고 부자가 더 부자가 되는 이런 세상을
발전이고 진보라고 생각한 우리 모두는 죄인입니다
사람이 사람을 위해 일하고 사람이 사람과 함께 먹고 함께 서로 사랑하는 대신
사람이 사람을 미워하고 죽이는 뼈아픈 세상을 용납하고 있는 저희들을 용서하세요
제발 저 짓은 내가 하지 않았다고 발뺌하지 않게 해 주세요

저희들을 용서해 달라는 말은 하지 않겠습니다
부탁드리나니 부디 저희들 스스로 이런 저희들을 용서하게 해주세요
그 용서의 힘으로 당신들의 죽음을 헛되지 않게 하도록 도와주세요
부디 이런 뼈아픈 죽음이 용납되지 않을 세상을 만들도록 도와주세요
삼가 고인들께 바칩니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