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명의 부녀자를 잔인하게 살해했다고 자백한 강호순(38)씨의 신상공개여부를 두고 공개를 요구하는 시민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일부 언론사에서 마침내 사진공개에 나섰다. 조선일보, 중앙일보가 강씨의 얼굴사진을 공개한데 반해 공중파 방송사, 경향, 한겨레, 동아일보 등은 1월 31일 현재 여전히 공개하지 않고 있다.

‘살인자에게도 인권이 있다’ ‘무죄추정의 원칙은 존중돼야 한다’ ‘여론재판은 안된다’ 등의 주장은 비공개의 논리적 근거가 되고 있다. 반대로 ‘스스로 인권을 포기한 자에게 인권운운 한다는 것은 사치다’ ‘반인륜범죄자들의 얼굴은 공개돼야 한다’ 등은 공개의 논리가 되고 있다.

언론사들 사이에서도 사진을 포함한 범인 신상공개에 대해 입장이 엇갈리고 있어 흉악범 신상공개여부에 대해 보다 광범위한 공론화 과정이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는 공론화에 필요한 하나의 주장을 제기하고자 한다.

그 주장은 적어도 세가지 전제조건을 충족시킬 경우, 비록 최종 재판으로 유죄가 확정되기 전이라도 범인의 신상을 공개해야 한다는 것이다. 첫째, 연쇄살인범이나 아동성폭행범 등 反인륜범죄나 흉악범죄에 한한다. 둘째, 범인임을 스스로 자백, 인정하고 이를 뒷받침할만한 물증 일부 등이 나타나야 한다. 셋째, 스스로 인간이기를 포기하며 타인의 행복추구권 등 인권을 유린한 사건에 한한다.

위의 세가지 조건을 충족할 경우, 언론사에서 자체적으로 판단해서 범인의 신상공개를 원칙으로 할 것을 제안한다. 따라서 조선일보와 중앙일보 등이 과감하게 범인 강씨의 얼굴사진을 공개한 것은 용기있는 도전으로 한국사회에 새로운 규범을 만드는 노력의 일환으로 평가한다.

물론, 범인의 얼굴 등 신상공개가 인권존중이라는 보편적 가치를 훼손할 우려가 있다는 점은 충분히 이해가 간다. 또한 범인의 신상공개로 인해 그 가족과 친척 등이 2차 연쇄적 피해가 우려된다는 측면도 있다.

그러나 잔인한 살인마, 스스로 인간이기를 포기한 흉악범과 그 가족의 인권과 행복추구권은 존중하고 우려해주는 이면에 그의 손에 희생된 무고한 피해자와 그 가족들의 인권은 고려되지않고 있다는 측면도 있다. ‘무죄추정의 원칙’은 하나의 원칙일 뿐이다. 세상에 예외없는 원칙이 없듯이 그 예외를 두지않을 상황에 왔다는 것이다.

국내 언론은 1990년대까지는 살인 등 강력사건에 한해 피의자 얼굴을 공개해왔다. 1994년 9월, 부유층을 납치·살해하고 시체를 소각 처리한 ‘지존파 사건’ 당시 현장 검증에 나왔던 지존파 일당들은 모두 얼굴이 공개됐다. 96년 10월 ‘지존파’를 모방한 ‘막가파’ 5명이 구속됐을 때 역시 이들의 신상은 공개됐다.

그러나 인권을 강조하던 2004년 무렵부터 '인권 수사'가 강조되면서, 피의자들이 언론에 노출될 때 모자와 마스크를 씌워주는 관행이 생겨났다. 경찰이 2005년 마련한 '직무규칙'에는 '경찰서 내에서 피의자와 피해자의 신원을 추정할 수 있거나 신분이 노출될 우려가 있는 장면이 촬영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초상권 침해금지 규정이 만들어졌다. 이것은 초상권 침해, 행복추구권 등 피의자들의 인권이 강조되면서 경찰이 만들어낸 일종의 자구책이었다.

이후 연쇄 살인범 유영철사건(2004년)과 정남규 사건(2006년) 때도 경찰의 신원보호로 국민들은 범인의 얼굴을 볼 수 없었다. 인권보호와 함께 ‘무죄추정의 원칙’이 광범위하게 적용됐기 때문이다.

또한 한국은 법적으로 초상권에 관한한 엄격한 잣대를 적용하는 편이다. 초상권의 경우, 피의자 사전 명시적 동의(묵시적 동의도 안된다)를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공인(公人)의 경우 초상권 보호가 제한적이지만 범인이라하더라도 일반 사인(私人)의 경우 보다 엄격하게 공개를 금하고 있는 추세다.

선진국에서는 대체적으로 흉악범의 인권보다 범죄 예방과 '국민의 알 권리'를 더 중시하는 경향이 있다. 흉악범의 인권보호와 범죄예방 및 국민알권리를 비교형량하여 신원공개를 원칙으로 하고 있는 셈이다. 미국, 영국, 프랑스 등에서 살인범, 아동성범죄자, 총기살인 미수범 등에 대해서는 얼굴사진을 바로 공개하는 편이다. 이들의 인권보호보다 다수 시민들의 인권을 우려하고 범죄예방 차원에서 이루어지고 있으며 이에 대해 사회적 합의가 이미 이루어진 편이다.

지난 2004년 서울 서래마을에서 자신의 영아 2명을 살해한 혐의로 프랑스인 부부가 체포되자, 프랑스 신문과 방송들은 즉시 그들의 얼굴 사진을 크게 보도한 적이 있다. 일본에서도 작년 3월 도쿄 시내에서 흉기를 휘둘러 8명을 사상케 한 20대 남자의 얼굴이 언론을 통해 일본 전역에 널리 알려졌다.

공개수배자들은 전단지나 방송을 통해 신원을 공개하면서 ‘무죄추정의 원칙’이라는 논리를 내세워 이들을 함께 보호해야 한다는 것은 논리의 모순이다. 남의 인권을 유린하고 이를 인정한 범인들에게까지 인권의 이름으로 신원을 공개해서는 안된다는 주장은 일종의 사치에 불과하다. 법은 보호할만한 가치가 있는 권리만을 보호해야 한다.

   
 
 
김창룡 교수는 영국 런던 시티대학교(석사)와 카디프 대학교 언론대학원(박사)을 졸업했으며 AP통신 서울특파원과 국민일보 기자, 한국언론재단 연구위원 등을 지냈다. 현재 인제대학교 언론정치학부 교수 겸 국제인력지원연구소 소장으로 재직중이다. 1989년 아프가니스탄 전쟁, 1991년 걸프전쟁 등 전쟁 취재 경험이 있으며 '매스컴과 미디어 비평' 등의 저서와 논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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