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의 탈을 쓴 권력이 미치면 살인적인 흉기가 된다. 이성을 잃은 권력은 세상을 적과 우군으로 나눈다. 권력에 우호적이지 않으면 누구든 적으로 간주한다. 그런 권력은 살인과 고문도 서슴치 않는다. 미친 권력은 자기 편 안에서도 피아를 가리고 코드가 맞지 않는 존재는 모두 적으로 돌린다.

미친 권력의 공통점이 있다. 살기등등한 모습으로 정의와 진리를 앞세우거나 민주주의 수호를 외친다. 법에 의한 지배를 금과옥조로 주장한다. 법치 앞에 인권은 의미가 없다. 미친 권력은 상식을 짓밟는다. 권력이 미치면 권력의 핵심은 물론 그 주변부까지 미쳐 돌아간다. 편협한, 때로는 병든 확신과 사명감을 가지고 넓은 세상의 정의와 진리, 민주주의를 적대시 하고 짓밟는다.

미친 권력의 대표적인 사례가 미국 부시 행정부의 포로 학대와 인권 유린이다. 부시 정부는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한 후 포로에 대해 제네바 협약을 적용치 않고, 테러 용의자에 대해 고문도 허용하는 극단적인 조치를 취했다. 부시 정부는 정의 수호와 국가 안보를 앞세워 반인륜적 범죄를 합법화했다. 그 결과 미군은 관타나모의 비공개 수감시설에서 전쟁포로를 학대, 고문하고 공안기구들은 미국 시민까지 불법 구금하거나 가혹행위의 대상으로 삼았다. 9·11테러의 충격이 컸다 해도 부시 정부의 비이성적인 대응은 민주사회의 권력이 어떻게 미쳐 돌아가는 지를 생생히 보여준 대표적인 사례다.

   
  ▲ 경찰특공대의 진압 과정 중 일어난 화재로 철거민 5명 등 6명의 농성자가 사망한 사고현장(서울 용산 한강로 2가) 앞에서 기자와 시민들의 출입을 제한하며 서 있는 경찰 너머로 상가세입자들이 내건 현수막이 보인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용산 참사’는 미국의 미친 정부를 생각나게 한다. 부시 정부가 미국 안보를 이유로 시민사회조차 적으로 돌린 모습은 이명박 정부가 ‘촛불’ 이후 시민사회를 적대시하는 것과 매우 흡사하다. 청와대에 부시 전 대통령의 그림자가 악령처럼 짙게 드리워져 있는 듯하다. 부시의 실패한 신자유주의 정책, 부자 프렌들리 경제 정책, 미디어 소유 집중 추진, 대북 적대정책, 테러와의 전쟁을 구실로 한 인권 유린 행위 등을 청와대가 고스란히 교과서로 삼아 실천하고 있다고나 할까.

이 대통령이 부시 전 대통령을 만날 때마다 짓던 표정은 국내 정치 현장에서 볼 수 없었던 그런 것이었다. 웃는 이의 속내를 알 수는 없으나 그것은 선생님을 만난 제자의 표정이라고 하면 지나친 것일까? 청와대 주인은 물론 그 참모들의 한결같은 미국 부시정부 흉내 내기에 익숙하다 보니 그런 부정적인 느낌이 든 것인지 알 수 없다. 청와대 쪽의 친 부시 기류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라는 매우 진보적 지도자가 등장하면서 어정쩡한 모습으로 변하고 있다.

청와대 등에서 지난 1년 간 촛불을 끌 목적으로 강조한 무자비한 ‘법치주의’는 권력의 집행기구인 경찰이 시민의 생존권 투쟁을 테러행위로 몰고 가는 끔찍한 상황으로 비화했다. 국민의 표현의 자유를 경찰의 곤봉과 군화로 짓밟는 것이 법치의 모범적 관행이 되면서 이 나라는 공포정치의 탁한 독가스로 뒤덮이고 있다. KBS, YTN에서의 언론인과 교단에서의 교사 파면, 해임이 줄을 잇고 인터넷 경제논객 미네르바가 긴급 체포 구속되는 것은 이런 분위기를 반증한다.

공포정치는 위기를 먹고 산다. 미국도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위기의식을 앞세워 막가파식으로 기본권까지 유린하지 않았는가. 청와대가 경제위기 상황을 타개한다면서 지하 벙커의 전시작전상황실을 찾은 것은 집권층이 지닌 위기의식을 상징한다. 상시적으로 위기의식에 잠겨 있는 정신 상태는 솥뚜껑을 보고 자라라고 놀라게 된다.

경찰 특공대는 테러진압 훈련을 받고 가공할 장비로 중무장한 최정예 공권력이다. 그들이 막장에 몰린 철거민들을 상대로 작전을 벌여 많은 인명 피해가 발생했다. 경찰은 농성장에서 새총, 화염병이 목격되었고 그것이 시민의 안전을 위협한다고 판단해 테러작전을 수행하는 결정을 내렸다 한다.

작전은 최소한의 인명 구호 장치도 하지 않은 채 집행되었다. 경찰 수뇌부의 이런 태도는 시민은 물론 경찰 특공대의 생명을 위협하는 극히 위험한 발상이다. 미친 권력은 부하의 안위조차 챙기지 않는 병적인 모습을 감추지 않는다. 전두환이 멀쩡한 군인들을 광주로 보내 민간인을 학살하게 만들어 수많은 병사들이 정신적, 육체적으로 고통을 당했던 일과 유사하다고 할까.

경찰은 공권력의 최 말단 기구로, 그 수뇌부는 집권층의 정치적 눈높이 등에 민감하다. 이번에 승진이 예정된 경찰 고위층의 테러작전 수행 결정은 단순한 과잉충성이 아니다. 그것은 최고 권력자의 비위를 맞추려는 아부 행위다. 권력자가 좋아할 것으로 보이는 방식을 선택한 것이다. 미국에서 공직자가 고문을 자행하고 인권을 유린한 것이나 용산 테러작전을 지휘한 경찰 수뇌부의 그것도 마찬가지다. 청와대는 제 2, 제 3의 용산 참사가 발생치 않도록 하려면 부시 정부식의 미친 정치를 멈춰야 한다.

   
  ▲ 고승우 논설실장.  
 
경찰은 철거민을 상대로 테러진압 작전을 한 후 여전히 ‘불법 폭력 시위는 엄정하게 대처한다’는 태도를 강조하고 있다. 법치주의를 앞세우는 것이다. 그들은 유가족 동의도 없이 부검을 실시했다. 농성장의 철거민도 세금을 내서 경찰의 존재를 가능케 하는 납세자가 아닌가? 그런데 불행하게 숨진 시신을 마치 ‘테러 용의자’를 부검하는 식으로 가족에게 알리지 않은 것이다. 민주주의에서 도저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민주사회라면 공권력 집행에서 인권보호가 우선시 되어야 한다. 공권력이 인권을 도외시하면 흉기가 된다. 권력이 이성을 잃으면 폭력이 된다. 그것은 미친 권력이 되는 것이다. 청와대가 촛불 시민에 대한 탄압적 통치 방식의 모범답안을 미국 부시 행정부에서 취했다면 이제 그것을 멈춰야 한다. 오바마 대통령은 경제 위기를 소통과 통합으로 극복하려 노력하고 있으며 많은 박수갈채를 받고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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