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경제논객 미네르바로 지목된 박아무개씨에 대한 체포·구속이 사회적 파장을 낳고 있는 가운데, 이에 대한 조선·중앙·동아일보의 보도가 또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이들 신문은 박씨의 사생활을 캐거나 학벌주의에 경도된 모습을 보이는가 하면, 자사의 입맛에 맞는 이중적 태도를 보이며 사실상 ‘사이버 모욕죄’ 도입을 촉구했다.

▷사생활 공개 논란= 일부신문은 ‘무죄추정원칙’을 거슬러 박씨의 실명을 공개했다. 조선일보가 지난 9일자 1면과 5면에서 가장 먼저 박씨의 실명을 언급한 데 이어, 중앙일보(10일)와 국민일보·서울신문·문화일보(12일)가 그 뒤를 이었다.

박씨의 얼굴을 모자이크 처리하지 않은 채 공개하거나, 그의 주민등록번호를 노출시킨 언론도 있다.

헤럴드경제는 지난 10일 박씨의 구속 소식을 전하면서 박씨의 얼굴 정면을 그대로 노출했으며, YTN은 13일 오후 5시 방영된 ‘뉴스Q’ 3부에서 박씨의 이름과 주민등록번호를 1초 이상 내보냈다.

‘국민의 알권리’를 벗어난 박씨의 신상을 낱낱이 들춰내기도 했다. 중앙은 박씨가 살고 있는 빌라를 촬영해 지면(9일자 10면)에 담는가 하면, 박씨의 부친과 여동생·고교3학년 담임교사·고교동창·대학교수·대학동창들의 발언을 인용해 그에 대한 평가(10일자 3면, 8면)를 전했다.

중앙은 특히 9일자 10면 <“오빠, 몇 달 간 집에서 온종일 인터넷에 글 써”>에서 “그의 집은 유난히 택배 배달도 잦았다. 경제 지식을 얻기 위해 책을 배달시켜 읽은 것으로 보인다”, “무직자였지만 그는 정신적으로 안정된 상태였던 것으로 보인다”와 같은 확인되지 않은 내용도 기사에 담았다.

조선도 10일자 4면 <이웃 동창이 본 박씨 “집 밖 거의 안나온 얌전한 청년”>에서 박씨가 사는 빌라 사진 함께 그의 대학 성적·고교 등수·회사 이직 내용 등을 ‘꼼꼼히’ 보도했다. 동아는 10일자 10면 <이웃들 “외출 거의 안하고 택배상자만 수북”>과 경향신문 10일자 4면 <고교동창 “그는 평범했던 친구”> 역시 박씨의 사생활에 초점을 맞춘 본질을 벗어난 기사였다.

▷전문대 졸업한 백수에 놀아났다?= 박씨에 대해 ‘무직, 백수, 공고, 전문대, 30대’를 강조하는 보도가 ‘학벌주의’ 폐단을 드러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중앙은 9일자 1면 머리기사로 “실체 드러난 ‘경제대통령’ 가짜에 놀아난 대한민국”이라는 제목을 올렸으며, 3면에서는 수사팀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돌팔이 의사에게 당한 꼴”이라고 조롱했다.

동아도 같은 날 사설 <‘31세 골방도사 경제대통령’ 누가 만들었나>에서 박씨에 대해 “온종일 집에 틀어박혀 컴퓨터를 두들기던 31세 무직 청년”이었다는 점을 강조하며 “박씨가 인터넷에 올린 내용 중 몇 가지 예측이 운 좋게 맞았다고 하지만 경제를 잘 아는 사람의 눈으로 보면 조악한 점이 많았다. … 박씨의 실체가 밝혀진 뒤 상당수 국민은 신흥종교 교주에게 사기 당한 듯한 심정을 느끼고 있다”고 폄하했다.

조선은 10일자 사설 <전 청와대 경제수석이 ‘국민 경제 스승’으로 모신 분>에서 “김태동 교수, 신경민 앵커가 모시던 ‘미네르바’라는 필명의 네티즌을 붙잡았더니 공업전문대 출신의 30세 무직자였다”고 깎아 내리며 “이 엉터리 ‘경제 스승’ 사건은 이념 운운하는 지식인들의 정신세계가 얼마나 천박한가를 드러낸다”라고 비난했다. 요컨대 ‘변변찮은 학벌에 농락 당한 걸 보니 고소하다’는 식이다.

하지만 이에 대해 진중권 중앙대(독어독문학과) 겸임교수는 미네르바 신드롬을 만든 게 외려 조선·중앙·동아일보였다고 지적했다. 진 교수는 지난 12일 인터넷언론 ‘프레시안’에 기고한 글에서 “그 좋은 학벌 갖고 조중동은 뭐라고 했던가”를 물으며 △파산할 리먼 브러더스를 인수하자고 했던 게 조선이고 △‘미네르바’를 향해 ‘시장을 비교적 잘 보고’ ‘전문용어를 술술 구사’하는 ‘환율프로’라 추켜세웠던 게 중앙이며 △그에게 기고를 받았다고 자랑을 했던 게 동아였다고 꼬집었다.

▷조중동의 이중잣대…사이버모욕죄 도입 포석?= 이른바 보수신문의 ‘이중잣대’는 박씨의 신상을 누구보다 철저히 까발린 이들이 박씨의 구속영장을 발부한 판사의 이력이 인터넷에 공개되자 이를 ‘사이버 마녀사냥’이라며 반발하고 나선 데서도 찾을 수 있다.

중앙은 12일자 10면에서 “박씨의 구속영장을 발부한 판사를 비난하는 글이 인터넷에 확산돼고 있다”는 점을 지적한 데 이어, 13일자 3면에서는 “판사 개인을 지목해 협박에 가까운 공격을 하는 것은 민주사회의 일원임을 포기한 것”이라는 법조인들의 지적을 옮겼다. 동아도 12일자 5면 <“법복 벗겨라”…막가는 ‘사이버 테러’>에서 이를 “익명성에 기댄 마녀사냥”이라고 비판했다.

기실 이들의 주장은 ‘사이버 모욕죄 도입’으로 모아진다. 동아는 이 기사에서 “법관에 대해서도 이런 사이버 공격을 할 정도로 누리꾼들 스스로 자제하지 못한다는 인식이 퍼지면 사이버 모욕죄 도입이 정당화되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장영수 고려대 법학과 교수의 말을 인용했다.

동아는 이날 사설 <미네르바 구속에 ‘사이버 보복’하는 서글픈 악의>에서도 “법관에게 인신공격과 위협적인 언사를 늘어놓은 행위는 사법권에 대한 위협이자 또 다른 범죄행위가 될 수 있다”며 “이러한 철부지 누리꾼들의 행위는 역설적으로 사이버 모욕죄 도입의 정당성을 뒷받침해줄 뿐”이라고 강조했다.

중앙 역시 13일자 사설 <법관까지 사이버 테러 당하는 세상>에서 “서울중앙지법 김용상 영장전담 부장판사가 인터넷 논객 미네르바 박대성씨에게 구속영장을 발부했다가 ‘사이버 테러’를 당하고 있다”며 이는 “인터넷의 폭력을 더 이상 묵과해서는 안 된다는 산 증거”라고 주장했다.

중앙은 이 사설에서 “인터넷 공간의 자정기능에만 기대하기에는 폭력·모욕의 정도나 수법이 너무 교활해지고 독해졌다”며 “더 이상 머뭇거릴 이유가 없다. 표현의 자유를 제대로 지키기 위해서라도 사이버 역기능 예방·해소를 위한 대책을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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