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김일성이 사망할 1994년도 당시 한국 국내 금융권 내의 달러 차입 루트가 모조리 다 봉쇄 되서 그때 일본 미쓰비시를 위시한 일본 금융권에서 엔화를 차입해서 조달했다는 걸 절대로 잊지 말아야 한다. 그 당시 일본 금융 기관들이 직접 엔/달러 스왑으로 달러 확보를 하는 데 도와줘서 그때 간신히 버텼다는 건 아무도 말을 안 해 준다."

미네르바가 지난해 10월19일에 다음 아고라 게시판에 쓴 글 가운데 일부다. 검찰은 9일 미네르바로 추정되는 박아무개씨에 대해 허위 사실 유포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하면서 "미네르바를 사칭한 네티즌도 있을 수 있지만 세간에서 관심을 끈 미네르바의 글은 체포된 박씨가 쓴 글이 확실하며 진짜 미네르바가 따로 있다고 보지 않는다"고 말했다.

검찰은 "박씨가 전문대 학력의 별다른 직업이 없는 남성으로 외국에서 공부하거나 외국 금융기관에서 일한 경험도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만 30세인 박씨는 검찰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것은 아니지만 경제학에 관심이 많으며 서적 등을 통해 독학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논술 테스트까지 거쳐 그의 문장력과 경제학 지식을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만약 박씨가 미네르바가 맞다면 1994년에 박씨는 16살이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런데 그는 1994년의 국내 은행권 사정을 어떻게 이렇게 잘 꿰뚫고 있는 것일까. 검찰이 주장하고 있는 것처럼 독학으로 이런 정보들을 얻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 가뜩이나 파생상품과 관련해서는 제대로 된 단행본도 나와 있지 않은데 박씨는 과연 무슨 책을 본 것일까.

검찰이 박씨가 미네르바가 확실하다고 판단하는 근거는 첫째, 미네르바가 쓴 글이 2개의 고정된 인터넷 IP 주소에서 작성됐으며 둘째, 그 주소가 박씨의 자택 PC의 인터넷 주소와 일치하고 셋째, 박씨가 범행 사실 일체를 시인하고 있다는 점 등이다. 검찰은 "박씨가 뛰어난 문장력과 해박한 경제학 지식을 갖춘 사실도 확인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금융업계 종사자들은 미네르바가 그동안 썼던 글들이 비전공자가 서적을 보고 독학할 수 있는 수준을 훨씬 넘어선 것으로 보고 있다. 미네르바의 글을 꾸준히 탐독했던 아고라의 누리꾼들 역시 마찬가지다. 미네르바가 단순히 공부를 많이 한 사람 정도가 아니라 고급 정보를 쉽게 얻을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일 거라고 보기 때문이다.

"지금 은행이 왜 저 모양인 줄 알어? 리먼 박살 날 때 그때 국내 시중 은행에서 파생 쓴거 있지. 그 규모가 발표 수치에 최소 13~15배 이상 수준이야. 정부나 은행에서 파생 마이너스 난 거 감춘 게 이 정도란 거지.. 이것도 다 드러난 수치가 아냐.… 무역 수지 10억 흑자 어쩌고 꼴깝떠는 건 현장에서 LC 다 틀어막아서 이젠 대기업이 가도 잘 안 해주는 사실상 마비 상태로 막아서 숫자 껴 맞추기 하고 일선기업보고는 밀어내기로 수출 물량 보내라고 한 거고. 그래서 지금 11월 중반에 보내야 할 물량을 20% 이상 땡겨서 밀어 내기 하고 있는 게 현실이야. 그래서 때려 맞춘 숫자. 외국 애들이나 국내에 있는 애들이 그런 거 모를 눈 뜬 장님이라고 생각 하니?"

이 글은 미네르바가 10월30일에 쓴 글이다. 익명을 요구한 금융업계 관계자는 "이 업계에서 10년 이상 일했지만 책 보고 공부해서는 쓸 수 없는 글"이라고 평가했다. 업계에서도 핵심 인물 아니면 접근할 수 없는 고급 정보들이라는 이야기다. 이 관계자는 "업계에서는 진짜 미네르바가 따로 있다는 소문이 파다하다"고 전했다.

실제로 선물업계의 큰손으로 불리는 Y씨가 진짜 미네르바라는 소문이 떠돌고 있지만 사실 확인은 안 된 상태다. Y씨는 지난해 정보기관 관계자가 언론에 흘렸던 것처럼 51세인데다 금융기관 근무 경력이 있고 한때 선물시장을 들었다 놨다 했던 사람이다. 그의 출신 대학에 '미네르바 동산'이 있다는 것도 이런 소문에 설득력을 더한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30세 젊은이가 독학으로 그 정도 통찰력을 가졌다면 그는 아마 천재임에 틀림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다음 아고라에서는 "만약 그가 진짜 미네르바라면 그를 체포할 게 아니라 기획재정부 장관이나 금융감독위원회 위원장으로 특채해야 한다"는 주장이 우스개소리처럼 나돌기도 했다.

미네르바가 자신의 친구 K일 거라고 밝힌 '리드미(readme)'라는 아이디를 쓰는 또 다른 '경방 고수'도 8일 박씨의 체포 직후 "나는 알고 있다, 미네르바가 아니라는 것을"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아마 고문이나 회유를 통한 단순한 자백, 자백조차도 불필요한 사치에 불과할 초법적 삼류 시나리오에 따랐을 것"이라고 의혹을 제기했다.

리드미는 K와 1970년대 같은 대학을 나오고 영국 런던 유학시절을 함께 보냈다는 사실을 언급하며 "내가 아는 미네르바 K는 이 정권의 존립이유와 권력유지의 동인으로 삼았던 1% 상위층 중의 상위에 속하는 0.1% 극상위층"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이는 미네르바가 자신의 글에서 여러 차례 밝힌 바와 일치한다.

미네르바를 국민적 스승으로 치켜세웠던 김태동 성균관대 교수 역시 한 인터넷 언론과 인터뷰에서 "오늘 체포됐다고 발표된 사람은 내가 아는 미네르바와 매치가 안 된다"고 의혹을 제기했다. 김 교수는 "미네르바의 글은 (금융) 현장에서 일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는 쓸 수 없는 글"이라며 "30세 무직인 네티즌이 그런 글을 썼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고 말했다.

물론 일부에서는 미네르바가 정확한 예측을 내놓은 것이 단순한 우연의 일치일 뿐이며 그가 쓴 글이 누구나 인터넷을 통해 찾을 수 있는 정보인데다 틀린 부분도 많다는 지적도 있다. 김광수 경제연구소의 정기 보고서를 참조한 것 아니냐는 분석도 있는데 이 연구소의 보고서가 월 200만 원 상당의 유료 콘텐츠라는 점을 감안하면 무직인 박씨가 이를 구독했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한편에서는 검찰이 미네르바에 대한 불신을 조장하려고 박씨의 학력 등을 부각시키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또한 박씨를 면회하고 나온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소속 변호사들에 따르면 박씨는 미네르바라는 아이디로 올라온 500여 편의 글 가운데 자신이 쓴 글은 100편 밖에 안 된다고 밝힌 것으로 전해지는 등 미네르바 진위 공방은 한동안 계속될 전망이다.

그러나 정말 중요한 논쟁의 지점은 박씨가 진짜 미네르바가 맞느냐 보다는 그가 누구든, 대졸이든 고졸이든 그의 직업이 무엇이든 미네르바가 쓴 글이 과연 긴급체포·구속될 만큼 심각한 범죄를 구성하느냐다. 미네르바의 구속은 수많은 누리꾼들의 표현의 자유를 심각하게 위협하고 자기 검열을 강화하고 온라인 의사소통을 압박할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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