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일련의 미디어 법률 입법을 주도하고 있는 한나라당 미디어특위위원장 정병국 의원은 “과거에는 대기업이 방송에 참여하면 여론 독과점을 형성한다는 지적이 있었지만 IPTV 시대에는 채널이 무한정 늘어나 특정 방송사가 여론을 독과점할 수 없다”면서 신문방송 겸업허용의 정당성을 역설한 바 있다.

정 의원은 그 같은 주장이 불과 1년 전에 신문 방송 겸업이 안 된다고 주장했던 자신의 말을 바꾼 것이라는 지적에 대해서는 “말바꾸기보다는 상황의 변화로 봤으면 합니다. 저도 언론독과점은 안 된다고 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상파중심의 여론독과점시대에 신문 대기업 겸업을 반대했던 것이고요. 방송통신융합에 의한 IPTV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던 것이지요”라고 하면서 당시에는 자신이 IPTV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지난 12일 IPTV상용서비스 출범기념식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세계는 지금 미디어 빅뱅의 시대로 급변하고 있으나, 지난 10년 간 우리 방송은 미디어를 산업적 가치로 인식하는 데 소홀하였으며, 이제 새로운 전기를 마련할 때"라고 강조하면서 "IPTV 산업을 기반으로 방송통신대국으로 나아가야 하며, 일자리 창출과 생산성 향상에 크게 기여하기 위해 네트워크 고도화와 원천기술 개발에 최대한 지원하겠다”고 천명한 바 있다. 이 대통령은 구체적으로 “IPTV 서비스를 잘 활용하면 공공서비스 혁명과 더불어 사교육비 경감과 교육격차 해소 및 진료서비스의 획기적인 개선이 이루어 질 것”이라고 예시하기까지 했다.

이러한 설명들을 듣노라면 IPTV야 말로 방송통신융합시대의 가장 선진적인 기술이요 서비스이고, 새로운 신성장동력이자, 미디어에서 보도의 공정성과 같은 정치사회적 요소는 완전히 사라지고 오직 산업적 가치만이 지배하게 만드는 미디어 비정치화의 최첨단 기술인 것 같은 착각까지도 불러일으킨다. 이쯤 되면 이러한 설명들이 얼마나 부정확하고, 과장되어 있으며, 심지어는 사실까지도 왜곡하고, 현재의 IPTV서비스가 가지고 있는 문제점들을 얼마만큼 간과하고 있는지 설명해야 할 의무감까지 느끼게 된다.

IPTV는 중앙통제식, 폐쇄적 서비스

우선 첫째로 IPTV는 융합서비스이기는 하지만 융합서비스로서 첨단기술의 선진적인 서비스는 전혀 아니다. 뿐만 아니라 IPTV는 인터넷의 가장 근간이 되는 TCP/IP프로토콜을 사용하긴 하지만 폐쇄적이며, 중앙통제식의 과거 전통적 모델의 서비스이다. 개방적이며 종단통제식인(이것을 end-to-end 특성이라고 한다. 종단통제식은 경쟁을 통한 기술혁신을 유발하지만 중앙통제식은 기술정체를 낳는다) 인터넷모델과는 정반대로 IPTV는 과거회귀적인 퇴행적 서비스이다. 그렇기 때문에 세계 어디에서도 IPTV는 인터넷서비스라고 부르지 않으며 단지 온라인 멀티미디어서비스로만 분류한다.

IPTV서비스 사업자들은, 그리고 실제 기술내용도 잘 모르는 정책관계자들은 IPTV서비스에 무슨 엄청난 첨단 기술이라도 사용되고 있는 줄 알고 있지만, 그 기술이라는 것이 기껏해야 특정콘텐츠에 따라 속도를 조절할 수 있도록 하는 QoS기술과 멀티캐스팅 기술 정도이다. 이러한 기술들은 이미 통신네트워크 전반에 보편적으로 알려져 있고 사용되고 있는 기술이며 skype 같은 소프트폰 서비스에도 이미 다 상용화되어 쓰이고 있는 기술이다.

그래도 쓸만한 기술이 없겠냐 하고 굳이 따지자면 셋톱박스 기술이 하나 있긴 한데 이것 역시 기본적으로는 앞서 말한 QoS기술이 핵심에 있는 정도이고 그 외에는 난이도가 그렇게 높은 기술이라고 볼 수는 없다. 그래서 인터넷 기술발전을 전망하는 사람들은 IPTV서비스는 어디까지나 기존의 통신서비스 사업자들이 기존 설비를 이용하여 별다른 큰 추가적인 투자 없이 현금수익을 올릴 수 있는 비즈니스 유형으로서 가치를 인정할 뿐, 장기적으로 인터넷 기술발전에 있어서는 우리나라의 곰TV와 같은 개방형 웹TV가 훨씬 더 중요한 모델이라고 본다.

보도 채널 엄격규제는 세계 공통

둘째로, CATV와 다르게 IPTV는 대역폭의 제한을 받지 않기 때문에 처음부터 채널수가 확정되어 있지 않고 최종사용자가 얼마든지 콘텐츠서비스를 불러다 쓸 수 있기 때문에 수백 개 채널 서비스가 가능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것은 단지 기술이 허용하는 가능성에 불과하다. IPTV는 중앙통제형 폐쇄서비스이기 때문에 어떤 콘텐츠를 제공하느냐 하는 것은 콘텐츠 제공사업자(Contents Provider)에게 달린 것이 아니라 어떤 콘텐츠제공사업자와 계약을 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IPTV서비스 사업자가 결정한다.

즉, IPTV서비스 사업자가 일종의 감시견(watchdog)으로서 채널결정권을 갖고 있으며, 이 경우 IPTV서비스 사업자가 시장지배력을 갖고 있을 경우 현재 이동통신 무선인터넷서비스에서 보는 것처럼 콘텐츠제공사업자에 대한 일방적인 지배력을 행사하는 문제가 나타나게 된다. 물론 시대착오적인 중앙통제경제(command economy)를 추구하는 이들에게는 이러한 특성이 꼭 나쁜 것으로 생각되지는 않을 것이다.

   
  ▲ 전응휘 녹색소비자연대 상임이사  
 
셋째,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지상파 방송과 유료 부가채널 서비스를 동일한 기준으로 규율하는 사례는 없다. 그 이유는 무엇보다도 지상파방송의 보편성과 침투성을 유료 부가채널 서비스의 소비자선택성과 동등하게 보지 않기 때문이다. IPTV와 같은 기술로 인해서 채널이 많아지면 지상파 전파의 희소성은 상대적으로 그 중요성이 약화되는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지상파를 유료 부가채널 서비스와 동등하게 보지는 않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보도채널 - 뉴스서비스에 대한 규제는 어느 나라나 그 나라의 역사적 경험을 반영하고 있으며 당연히 우리의 경우에는 언론탄압과 언론민주화의 역사를 반영하지 않을 수 없다. 현재 방송법에서 지상파 뿐만 아니라 유료 부가채널 서비스에 대해서조차 보도전문채널에 대해서만큼은 허가요건을 까다롭게 규정해 두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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