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방송사 기상캐스터가 화창한 날씨에 검은 옷을 입고 기상소식을 전할 경우 시청자에 대한 예의를 지키지 않았다고 방송통신심의위원회(위원장 박명진)가 판단할 수 있으니 주의가 요구된다.

방통심의위는 26일 전체회의를 열어 지난달 8일 앵커, 기자, 기상캐스터가 검은색 의상, 넥타이, 리본 등을 착용한 채 프로그램을 진행한 YTN의 뉴스 프로그램에 대해 '시청자에 대한 사과'를 의결했다. '시청자에 대한 사과'는 재허가 때 감점 요인으로 작용하는 법정 제재다. 뉴스보도프로그램에서 앵커나 기자의 옷차림이 문제가 되거나, 일반 프로그램에서 선정적인 이유 외에 출연자의 옷차림이 문제가 돼 법정제재가 결정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방통심의위는 방송심의에 관한 규정 제27조(품위 유지) '방송은 품위를 유지하여야 하며, 시청자에게 예의를 지켜야 한다'는 조항과 제9조(공정성)의 '방송은 당해 사업자 또는 그 종사자가 직접적인 이해당사자가 되는 사안에 대하여 일방의 주장을 전달함으로써 시청자를 오도하여서는 아니 된다'는 조항을 적용해 이와 같은 결론을 내렸다. 제7조(방송의 공적책임)의 '방송은 국민의 윤리의식과 건전한 정서를 해치지 않도록 하여야 한다'는 조항에도 위배된다고 봤다.

   
  ▲ 지난달 8일 오전 YTN 박신윤 앵커가 검은색 옷차림으로 뉴스를 진행하고 있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 지난달 8일 오전 YTN 김지현 앵커가 검은색 옷차림으로 일기예보를 진행하고 있다. 박천일 위원이 황당했다고 지적한 사례이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이번 제재는 해외 출장으로 불참한 정종섭 위원을 제외한 박명진 손태규 김규칠 박정호 박천일 위원이 의결했다. 엄주웅 이윤덕 백미숙 등 3명의 야당 추천 위원들은 검은 옷차림으로 방송에 나선 앵커와 기자들의 의견을 들어봐야 한다는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의결 전 퇴장했다. 엄주웅 상임위원은 "아버지나 친척이 죽어서 검은 옷을 입었는데도 징계할 것인가. 심의 절차를 보다 공정하게 가져가려고 하는데 뭐가 그리 급한가"라며 맞섰으나 수적 열세를 거스를 수는 없었다.

특히 방송심의소위 위원인 백 위원은 지난 14일 YTN 보도국 고위간부의 '의견진술'이 자의적인 판단아래 회사 쪽 입장을 대변했다며 전체회의에서 앵커와 기자들이 소명할 기회를 줘야 한다고 요구했다. 백 위원에 따르면, 이 간부는 제재 전 소명이라고는 볼 수 없는 '시청률 저하가 우려된다', '주변의 친구들도 그렇다고 한다' 등의 의견을 진술했다. 아울러 이 간부는 '블랙투쟁'에 동참한 일선 앵커와 기자들의 징계도 암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백 위원의 발언대로라면 YTN 회사 쪽이 '블랙투쟁'에 동참한 일선 기자와 앵커들을 징계하기 위해 재허가 때 감점요인이 되는 제재가 예상되는데도 이를 막기 위한 소명을 적극적으로 하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올 수 있다. 노조의 방송개입을 해사행위로 규정한 구본홍 사장이 '블랙투쟁' 동참자들을 징계한다면, 소명을 제대로 하지 않은 이 간부 역시 해사행위 논란이 일 수도 있다.

   
  ▲ '방송장악 네티즌탄압저지 범국민행동'은 26일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심의 직전 서울 목동 방송회관 1층 로비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공정한 심의를 촉구했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1시간 여의 격론 끝에 야당 추천 위원들이 퇴장하자 의결은 일사천리로 이뤄졌다. 박천일 위원(숙명여대 언론정보학부 교수)은 "YTN 뉴스를 보는데 기상캐스터가 쾌청한 날씨를 보도하면서 검은 옷을 입고 있어 황당했다. 요즘 비 오면 비옷을 입지 않나"라고 말했는가 하면, 박정호 교수(고려대 전기전자전파공학과 교수)는 "혐오감을 준다"고도 말했다. 결국 박명진 위원장은 "방송은 이미지로도 뜻을 전달한다. 노조 쪽이 의견을 적극적으로 전달하려 했던 것은 그들도 인정한다. 공기인 방송을 노조의 의사 전달 도구로 사용한 것도 방송의 공적책임을 위반했다"며 제재를 의결했다.

YTN 쪽이 이에 불복하고 재심의를 요청하지 않을 경우 제재는 확정된다. 현재 YTN 재승인 심사를 진행하고 있는 방송통신위원회(위원장 최시중)는 지난 9월12일 전체회의에서 YTN지부의 행보를 거론하며 방송통신심의에서 감점 요인이 되는 사례들을 꼽아 논란을 일으킨 바 있다. 한편 SBS·MBC 아나운서·기자들이 검은 옷차림으로 방송에 나서는 것으로 YTN지부에 지지의사를 밝힌 것도 제재대상이 될 지는 미지수다. 방통심의위 홍보협력팀 관계자는 "아직 민원이 들어오거나 우리가 모니터하지는 않아 어떻게 될지 예단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 '방송장악 네티즌탄압저지 범국민행동'은 26일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심의 직전 서울 목동 방송회관 1층 로비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공정한 심의를 촉구했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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