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년 창립한 이후 전국언론노동조합연맹(언론노조)의 발자취는 말 그대로 ‘투쟁’의 역사였다. 이는 87년 6월 항쟁과 민주화 열풍에 힘입어 각 언론사에 불어닥친 노동조합 결성 움직임을 모아 이듬해 11월, 41개 언론사 노조의 연맹체가 탄생하는 자리에서 ‘언론해방 투쟁’을 선포했을 때 이미 예견된 것이었다. 

언론노련은 창립 이후 줄곧 권력과 자본으로부터의 독립에 힘썼다. 낙하산 인사 반대, 편집권 독립은 언론노련 가맹 노조의 단골 구호였다.

   
   
 
89년 노태우 정권이 리영희 당시 한겨레 논설고문을 북한을 찬양·고무했다며 구속하고 한겨레를 탄압하자 언론노동자들은 국가보안법 철폐를 요구하며 정권의 언론탄압을 비판했고, 한화그룹의 요구로 경향신문이 초대 노조 간부 5명을 해고하자 연대 투쟁과 출근 투쟁으로 2년 반 만에 복직을 쟁취하기도 했다.

90년은 ‘KBS 대투쟁’의 해였다. 당시 노태우 정권의 낙하산 인사인 서기원 사장을 반대하며 벌인 KBS노조의 파업은 현대중공업 노동자들의 골리앗 투쟁과 함께 90년 상반기를 흔든 대투쟁으로 꼽힌다.

92년에는 노 정권이 청와대 인사인 김영수씨를 MBC 사장으로 내려보냈고, 이에 MBC노조가 50여일 동안 파업 투쟁을 펼쳤다. 당시 MBC노조는 ‘MBC 공정방송, 국민의 힘으로’를 외치며 투쟁을 전개했으며, MBC에 공권력이 투입되면서 당시 박영춘 MBC 쟁의대책위원과 손석희 대외협력위원회 부간사 등이 구속되기도 했다.

   
  ▲ 언론노련 창립 20주년 참가자들이 기념식을 시작하며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하고 있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이 해는 그러나 언론노련에게 시련만 안겨주지는 않았다. 언론노련은 노동부가 언론노련의 설립신고서를 반려하고 불법 단체로 규정하자 소송을 제기, 4년의 다툼 끝에 92년 12월 대법원으로부터 합법화 확정 판결을 받아냈다.

95년, 언론노련은 기관지인 언론노보를 대중지로 전환하기로 결정해 <미디어오늘>을 창간한다. 한국 사회의 민주화에 제대로 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언론을 감시하고 비판해 대중들에게 알리겠다는 취지였다. 이 해는 정권의 탄압을 딛고 노동운동의 구심체로 기능하겠다며 민주노총이 창립된 해이기도 하다.

김영삼 정권의 노동법 날치기 통과로 97년 언론노련은 언론 역사상 최초로 총파업을 벌였다. 언론노련 출범 이후 첫 총파업이기도 했다. 그런 11월 IMF 구제금융 사태로 8천여 명의 언론인은 명예퇴직과 희망퇴직이라는 이름으로 언론계에서 사라졌다.

언론노련이 탄생한 지 10년이 되는 98년도 투쟁으로 점철된 해다. 언론노련의 창립 목표였던 언론민주화는 사회 변화와 함께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는 듯 보였다. 그러나 경제위기로 언론사의 경쟁이 치열해지고 노동운동도 전체적으로 약화되면서 그 성과는 후퇴하는 경향이 나타났다. 이 과정에서 SBS 노조는 방송세습 저지를 결의했으며, 세계일보 노조는 종교재단과 치열한 싸움을 벌이다 노조가 해체되기도 했다.

단위노조의 연맹체였던 언론노련은 2000년 11월 산별노조로 전환하면서 제2의 도약을 한다. 언론노조는 이 해 언론사 세무조사 정국을 맞아 정간법 개정과 신문개혁 촉구투쟁 등을 이어갔다.

2004년에 언론노조가 시민사회단체와 오랫동안 준비해 온 정간법 개정이 비록 반쪽 짜리이긴 하지만 ‘신문 등의 자유와 기능보장에 관한 법률(신문법) 제정’으로 이뤄진다. 2005년에는 삼성그룹의 검·경·언 유착 내용이 담긴 X파일이 폭로되면서 자본권력과의 싸움이 본격화되고, 2006년에는 한미자유무역협정을 저지하기 위한 총파업이 언론노조(노련) 역사상 두 번째로 단행됐다.

2007년 불거진 회계부정 사태로 언론노조는 최대의 위기를 맞는다. 당시 언론노조 위원장은 이 사안을 검찰에 고발해 내부의 거센 반발을 샀고, 그 후유증은 이후 언론개혁협의회 출범, KBS·한국경제TV가 산별 탈퇴를 결의하면서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올해, 언론노조는 가장 바쁜 한 해를 보내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통령의 멘토를 자처하는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 내정부터 전방위 낙하산 인사 강행, 각종 법 개정 등을 통해 이명박 정부가 언론의 공공성과 독립성을 파괴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상재 위원장이 24일 열린 창립기념식에서 “기념사가 아니라 결의문을 낭독해야 하는 자리가 됐다”고 한 것도 언론노조의 여정이 앞으로 더욱 험난하다는 것을 시사한 것이다.

언론노조의 가장 큰 과제는 ‘연대’로 모아질 수밖에 없다. 이 정부의 미디어정책이 미디어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정치권력과 자본, 보수적인 시민사회세력과 궤를 같이 하고 있기 때문이다.

성유보 방송장악·네티즌탄압 범국민행동저지 상임운영위원장은 “언론노조는 인권에서의 민주주의에 절차적 민주주의, 표현의 민주주의와 함께 분배의 민주주의까지 활짝 여는 연대 운동으로 나가야 한다”며 “특히 지금 한국사회가 당면한 문제는 각 분야가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결코 아닌 만큼 산별 전체의 중지를 모으는 것은 물론 네티즌·농민·일반시민 등과도 늘 가슴을 열고 함께 가려는 자세를 더욱 굳건히 가질 것을 부탁한다”고 당부했다.

“언론민주화의 역사가 거꾸로 되돌려지는 지금, 언론노조 투쟁의 역사는 말한다. 단결과 연대로 언론공공성을 사수하라.”(언론노조 20년사 영상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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