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정부 들어 숨가쁘게 쏟아지고 있는 미디어 정책에 지역방송사들은 “벼랑 끝에 몰린 심정”이라고 토로하고 있다. 특히 한국방송광고공사(KOBACO·코바코) 해체·민영 미디어렙 도입 논란과 관련해 지역방송 한 관계자는 “중환자실에 누워 있는 이의 산소호흡기를 떼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위기의식을 표했다. 

이들은 한목소리로 ‘경쟁 체제 도입’이라는 빛 좋은 개살구 뒤에 가려진 지역 방송의 현실을 들여다볼 것을 권한다. 한국지역방송협회 김석창 사무총장은 “민영 미디어렙 문제는 단순히 ‘경쟁체제 도입’이라는 거창한 말만으로 판단할 수 없는, 방송영상산업의 재원구조, 물적 토대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문제임을 알아야 한다”고 설명한다.

‘끼워 팔기’라는 이름으로 ‘덤’으로 치부되는 방송광고 ‘연계판매’와 관련해서도, 김 총장은 왜곡된 중앙·지역 방송사간의 재원 분배 구조 속에서 ‘연계판매’가 필수 보완재 역할을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지역MBC의 경우, 광고수익의 상당부분(65.6%)은 전파료 수익이다. 전파료는 광고수익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전국단위 광고판매’에서 제작비 부분(70%)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으로, 개별 방송사들이 이를 나눠 갖는 구조다.

수도권에 전송하는 서울 MBC가 전파료 중 20%를 취하고, 나머지를 19개 지역MBC가 나눠 갖다보니 개별 지역사에 할당되는 수익은 약 1.2∼1.3% 정도다. 예를 들어 1억 원 광고가 난다면 제작비를 제외하고 전파료 중 약 2400만원을 19개 지역MBC가 나누는 셈이다.

지역민방은 더 열악해 보인다. 서울SBS가 전파료 수익의 80∼90%를 갖고 9개 지역민방이 나머지 10∼20%안팎의 전파수입을 나눠 갖는 실정이다. 지역민방의 경우 전파료 수익이 48.8% 정도로 자체판매율이 높은 편이나, 열악한 재정 상황에서 자체편성비율이 높다보니 질 낮은 프로그램을 만들어낼 수밖에 없는 악순환 구조가 반복되는 형편이다.

김 총장은 “지역의 경우 수익이 적으니 콘텐츠 경쟁력도 낮을 수밖에 없다. 왜곡된 구조 속에서 나름대로 공익적 분배를 고민하는 속에서 나온 것이 바로 연계판매다. 이를 두고 단순히 ‘끼워 팔기’다, ‘탈법이다’라고 주장하는 것은 논거에 맞지 않다”고 주장한다.

안준호 KNN 편성기획팀 차장도 “광고요금 판매에 있어 중요한 기준이 되어야 할 인구비율이나 GDP기준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으로 비율이 책정되어 있다”며 “시장이 왜곡되어 있는 상태에서 무조건 경쟁을 도입한다고 될 일인가”라고 되묻는다.

안 차장은 “만약 지금 상황에서 민영 미디어렙이 도입된다면 첫해부터 적자가 나고 몇 해 안가 자본잠식 상태에 들어가게 될 것”이라며 “이런 경우 구조조정도 피해가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자체편성 비율도 현재 33%에서 10% 이내로 줄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편성이나 제작이 오히려 손해가 나는 구조가 되는데 어떻게 편성비율을 유지하겠는가. 무료 음악회, 영화제 시상 등 지역행사 후원이나 개최도 당연히 어렵게 될 것이다. 국가 시책으로 운영하는 디지털 방송 전환도 가능할지 의문이다”라고 말했다.

지역방송협의회의 이영훈 공동의장은 “현 수도권 중심 시스템 속에서 지역방송에 ‘알아서 경쟁하라’는 것은, ‘알아서 죽으라’는 이야기나 마찬가지”라고 잘라 말했다.

그는 “지역방송은 애초 시장성과는 거리가 있다. 배타 문화적 경계 내에서 지역 문화와 여론을 만들라고 생긴 것이 바로 지역방송이다. 이러한 ‘공적 베이스’를 빼고 지역방송을 이야기할 수는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이 의장은 “유료방송 영역이 확대되면서 무료 보편적 공공방송의 영역은 줄고 지역방송의 생존도 그 만큼 어려워졌다”며 “문제는 그런 지역 기반이 없어지게 되면 지역문화와 지역민들의 삶이 더 피폐해지는 결과로 이어지게 된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최근 미국발 경제 위기 한파 속에 지역방송사들은 실질적인 생존 위기에 시달리고 있다.

특히 지역 MBC는 최근 경영 위기 속에서 명예퇴직 등 ‘구조조정’을 진행 중이다. 강릉MBC가 지난달 17일까지 명퇴 신청을 받았는데, 68명의 직원 중 19명(27%)이 신청했다. 대전MBC, 춘천MBC, 안동과 마산MBC 등도 이에 동참하고 있고, 이러한 ‘명퇴 광풍’에 올해 들어서만 50여 명 이상이 그만두게 됐다. 

지역MBC 한 관계자는 “IMF 때보다 더 심하다. 지역방송의 생존 자체가 흔들리는 상황에서 공공성의 가치를 얘기한다는 것이 어렵다. 하지만 그것이 지역방송의 정체성이기 때문에 포기할 수 없다는 것이 문제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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