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 화폐주의, David Roche와 Bob McKee 지음.  
 
지난해 10월 출간된 '뉴 머니터리즘(신 화폐주의)'이라는 책 맨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 코코넛 섬에 대한 짧은 이야기는 최근 세계 금융 불안과 관련, 시사하는 바가 크다. 간단히 줄거리를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코코넛이 많이 나는 섬이 있었다. 섬 사람들은 코코넛을 먹고 살면서 남는 코코넛은 지나가는 배에 팔아 현금을 마련했다. 현금은 매트리스 밑에 보관했다.

그러던 어느 날 육지에서 온 한 사람이 이 섬 최초의 은행을 세웠다. 섬 사람들은 현금을 꺼내서 은행에 맡겼고 이자를 받아 예금을 불렸다. 섬 사람들은 은행에서 대출을 받아 코코넛 나무를 심을 돈을 마련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예금보다 대출이 더 많아지게 됐다.

코코넛 나무 한 그루는 100달러인데 해마다 8달러를 벌어다 준다. 소득세는 25%, 이자는 4%다. 만약 은행에서 100달러를 빌려 코코넛 나무를 심으면 8달러를 벌어 이자를 4달러 내고 소득세를 1달러 내면 된다는 이야기다.

만약 코코넛 나무 한 그루를 키우던 농부가 은행 대출을 받아 한 그루를 더 키운다고 가정해 보자. 이 경우 매출은 200달러, 영업이익은 16달러, 이자는 4달러, 소득세는 3달러가 된다. 은행 대출 없이 그냥 한 그루만 키울 때는 6달러를 벌었는데 대출을 받아 두 그루를 키우니 은행 이자를 주고도 이익이 9달러로 늘어났다.

   
  ▲ 농부의 대차대조표와 손익계산서. 왼쪽이 대출 받기 전, 오른쪽은 100달러를 대출 받아 코코넛 나무를 두 배로 늘렸을 경우.  
 
그런데 어느 날 육지에서 똑똑한 젊은이들이 찾아와 코코넛 컴퍼니를 차렸다. 이들은 굳이 힘들게 농사를 지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이들은 농부를 찾아가 자본금의 50%를 60달러에 사들였다. 그런데 이 젊은이들은 자본금이 10달러밖에 없었고 나머지 50달러는 은행 대출로 해결했다. 농부의 자본금은 100달러인데 그 50%를 60달러에 사겠다고 하니 농부로서는 사양할 이유가 없었다. 농부들은 대출금을 갚거나 집을 늘리는데 이 돈을 썼다.

   
  ▲ 코코넛 컴퍼니의 대차대조표와 손익계산서.  
 
이제 농부가 9달러를 벌면 이 코코넛 컴퍼니는 4.5달러를 가져가게 된다. 이 회사는 은행 대출금 50달러에 대한 이자를  2달러, 소득세를 0.625달러 내고 나면 1.875달러가 순이익이 된다.

얼마 지나지 않아 좀 더 똑똑한 젊은이들이 찾아와서 은행의 자산을 사겠다고 했다. 이른바 자산 유동화라는 첨단 금융기업이었다. 은행의 자산은 코코넛 나무 대출 100달러와 코코넛 컴퍼니 대출 50달러를 더해 150달러였는데 젊은이들은 이 절반을 75달러에 사들였다. 은행은 이 돈을 받아 부동산 담보 대출에 쏟아 부어 이익을 늘렸다.

이 젊은이들은 자본금이 7.5달러 밖에 없었는데 나머지 67.5달러는 일본 은행에서 연 0.25%로 대출을 받았다. 그 결과 이들은 은행에서 75달러에 대한 이자 4%인 3달러를 받고 일본 은행에는 67.5달러에 대한 이자 0.25%인 0.2달러만 지불하면 되게 됐다. 소득세 0.7달러를 내고 나면 순이익이 2.1달러가 됐다.

   
  ▲ 코코넛 헤지펀드의 대차대조표와 손익계산서.  
 
다시 정리를 하면 이렇다. 농부는 이제 50달러를 투자해서 4.5달러를 번다. 코코넛 컴퍼니는 10달러를 투자해서 1.875달러를 번다. 은행 자산을 사들인 헤지펀드는 7.5달러를 투자해서 2.1달러를 번다.

그래서 한때는 모두가 행복해진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부동산 담보 대출이 늘어나면서 은행은 이익을 챙겼고 부동산 가격이 뛰어오르면서 갑자기 많은 사람들이 부자가 됐다. 소비도 늘어나고 세금도 늘어나고 복지 혜택도 늘어났다.

   
  ▲ 코코넛 섬 전체 대차대조표.  
 
그런데 사실 따져보면 섬 전체에 늘어난 것은 코코넛 나무 한 그루밖에 없었다. 농부가 100달러를 대출 받았을 때는 코코넛 나무가 생겼지만 코코넛 컴퍼니나 헤지펀드가 대출을 받았을 때는 회계 장부에 숫자 몇 줄만 바뀌었을 뿐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부채는 늘어났지만 자산은 늘어나지 않았다.

섬 전체의 대차 대조표를 보면 더욱 명확하다. 자산은 코코넛 나무 두 그루, 200달러인데 부채는 300달러가 됐다. 자본잠식이나 마찬가지인 상태다. 결국 어느 날 코코넛 가격이 25% 하락하자 저축이 줄어들면서 은행 이자율이 두 배로 뛰어올랐다. 그 결과는 우리가 지켜보는 바와 같다. 연체율이 늘어나고 부동산 가격이 폭락하고 소비가 줄어들고 코코넛 가격이 다시 폭락하면서 심각한 경기 침체로 돌입하게 된다.

코코넛 섬의 이야기는 간략히 도식화한 비유지만 세계 경제를 뒤흔든 금융 불안의 본질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준다. 금융회사들이 신용 창출을 남발하면서 과잉 유동성과 자산가격 거품을 만들고 소비를 늘리지만 언젠가 자산시장이 붕괴하게 되면 금융회사들 부실을 국민들 전체가 나눠서 부담해야 한다. 극단으로 치닫는 자본주의의 탐욕이 과연 적절한 규제와 통제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인지 자본주의의 근본적 모순인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할 문제다.

대우증권 김정훈 연구원은 "신용창출은 자본주의의 매력인데 과도한 레버리지가 가져올 부작용이 간과됐던 것이 위기의 원인이 됐다"고 지적했다. 김 연구원은 최근 주가 폭락과 관련, "글로벌 금융 공조는 어느 정도 효과적인 것으로 평가되지만 시장에는 아직도 자산 가격 바닥에 대한 믿음이 부족한 것 같다"고 덧붙였다.

   
 
참고 : 신 화폐주의(New Monetarism), 대우증권 10월23일 보고서 '코코넛 섬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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