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효백 경희대 국제법무대학원 교수는 1932년 5월1일자 아사히신문 1면에 실린 윤봉길 의사 연행 사진이 조작됐을 가능성을 지난 1999년 처음 제기한 사람이다. 그는 중국 상하이 홍커우 공원의 거사를 전한 당시 현지 보도 등을 근거로, 아사히가 보도한 사진 속 인물은 '윤 의사가 아니다'라고 주장해왔다. 국가보훈처가 지난 8일 ‘윤 의사 사진이 분명하다’고 다시 밝힌 가운데, 20일 강 교수의 입장을 들어 보았다.

   
  ▲ 강효백 교수  
 
- 국가보훈처가 지난 8일 ‘윤 의사 사진 논란’에 종지부를 찍는 식으로 발표했는데?
10년을 묵살로 일관하더니 종지부를 찍었다는 결정적 논거가 ‘한창때라 기절해도 금방 일어날 나이 운운’하고 있다. 분노를 넘어 절망을 느낀다.

- 사진 속 인물은 윤 의사가 맞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어떤 의도가 있다고 믿나?
자꾸 일부 유족의 증언을 들면서 일반사람들이 ‘유족’이라는 글에서 느끼는 동정심과 권위에 기대 사진이 맞다고 넘어 가려 한다. 하지만 증거자료로 있는 것은 의거를 전후로 한 문제의 사진들이다. 객관적, 과학적으로 비교 가능한 사진이 공개되어 있는데 유족들의 주관적 기억력이 일반인보다 신뢰도가 높다고 단정하는 근거가 뭔가?
만에 하나 아사히신문의 사진 속 인물이 진짜 윤 의사라 한다면 수많은 1차 자료는 전부 오보란 말인가? 윤 의사를 피투성이로 묘사한 현장 스트레이트 기사들도 전부 환상이고, 두 사진 속 인물의 얼굴 윤곽이 다르다고 한 성형외과 전문의들도 전부 돌팔이란 말인가?
당시 현지 1차 자료를 확인하는 게 취재의 기본이다. 윤 의사 의거 같은 근세의 대사건은 현지 발행신문 몇 부만 제대로 검토했어도 알 수 있는 일이었다. 국민의 수준을 얼마나 얕잡아 보았으면 그런 기본도 지키지 않은 채 거짓을 우기는지 모르겠다. 일본의 무오류성을 숭상하는 잠재적, 현재적, 고질적 식민지 근성에 찌든 결과라고 본다.

- 강 교수와 같은 주장을 펴는 학자들이 또 있는가?
처음 사진에 문제를 제기했던 1999년이나 2000년을 전후로 내 주장에 힘을 실어주는 기자들이나 교수들, 성형외과 전문의들이 있었다. 김학준 동아일보 회장은 당시 내게 직접 편지를 보내 ‘강 영사 덕에 윤 의사에 대한 오류가 바로잡혔다’고 말한 적도 있다.
얼마 전 김천홍 SBS 보도국 부국장이 ‘SBS스페셜’을 제작하는 과정에서 일본 아사히신문사를 방문하며 사진이 가짜라는 사실을 재확인 했다고 한다. 지난 14일 저녁에 나와 장시간 통화한 내용이다. 일본외무성 비밀문서 2만5천 페이지 분량을 전부 복사해 결정적 자료를 보관중인데, 다큐제작이 끝나고 한 3주가 지난 뒤인 11월 중에 진실을 폭로하겠다고 했다.  한겨레21 6월13일호에도 윤봉길 의사 사진은 가짜라는 아사히 쪽 반응을 싣고 있다.

- 유족들의 항의가 대단했다고 들었는데?
‘유족들’이 아니다. 역사의식이 부족한 방계 유족 1~2명이 나를 탄압하고 있다. 이름을 밝힐 순 없고, 그 중 한 명이 내가 중국에서 영사로 있던 2000년 9월에 홍순영 당시 주중대사에게 팩스를 보냈다. 내 주장이 잘못됐고, 앞으로 윤 의사 사진과 관련해 어떤 주장도 하지 않겠다는 자필 사죄문을 보내라는 내용이다.
순국선열을 명예훼손 했다는 죄목으로 나를 서울중앙지검에 고소한 일도 있다. 당시 담당 검사가 그런 얘기를 하더라. 일본 아사히신문에 대한 명예훼손이라면 몰라도, 윤 의사가 일본군 폭행에 의해 만신창이가 됐다는 사실을 새로 발굴해냈는데 고소인이 외려 고맙게 여겨야 하는 것 아니냐고. 당연히 나는 무혐의 처분됐다.
오래된 착오는 바로잡힐 수 있다며 참아 왔다. 하지만 친일파의 후손이라는 둥, 정신이 잘못된 사람이라는 둥, 정치인이나 누리꾼으로부터 인격적 모독을 많이 받았다.

- 하고 싶은 말이나 앞으로의 바람이 있다면?
일제에 의해 조작된 사진이 긴 시간 상해 대한민국임시정부 청사를 비롯한 우리 독립사적지에 전시되어 왔다. 또 역사 교과서와 참고서, 각종 책에도 문제의 사진이 실려 있다. 80년이 다 되도록 이러한 사실을 몰랐던 것인데, 우리 국민의 체면과 자존심을 생각해 이를 없던 일로 덮어버릴 수는 없다. 윤 의사는 특정 개인의 부형이 아니라 민족적, 역사적 영웅 아닌가? 사진의 진위여부를 따지는 것은 국민의 존엄을 확립하는 데 직결되는 문제다.
때문에 정치논리로 사실을 호도하지 않았으면 한다. ‘잃어버린 10년이다, 아니다’ ‘교과서 개편 논쟁’ 등 최근 정치적 이슈와 이 문제가 결부되는 듯하다. ‘10년 논쟁 종지부를 찍다’라는 식의 제목으로 언론이 보도하고 있는데, 정권이 바뀌었다고 가짜 사진이 진짜 사진이 될 수 없다. 일부 네티즌은 나를 친북 좌빨교수로 몰고 있는데 분명히 말해두지만 나는 좌파도 아니고 우파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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