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진실씨의 자살로 인한 사회적 충격과 슬픔은 아직 엄청나다. 이런 상황에서 언론이 관련 기사를 가능한 많이 보도하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매사가 그렇듯 지나치면 문제가 생긴다. 세인의 관심이 너무 높다보니 일부 언론은 정상을 벗어난 모습을 보인다. ‘차가운 전문가’라는 영역을 벗어나 흥분상태에 빠져 자살보도에 대한 윤리강령조차 팽개친 언론이 다수다. 특히 일부 수구언론은 이 기회에 인테넷상의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려는 정치권의 ‘흉계’에 공범자 역할을 하고 있다.

대부분의 자살은 그 원인이 복합적이다. 최씨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밝혀지고 있다. 그러나 일부 수구언론은 최씨에게 충격을 주었다는 인터넷 괴담에 초점을 맞춰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법 개정안' 등 이른바 ‘최진실 법’ 만들기에 동조하는 편파 보도를 일삼고 있다. 이들 언론은 과거 유명인들이 악풀로 충격을 받아 자살했다는 이유를 앞세워 목청을 높이고 있다.

최씨의 비극를 초래한 원인은 악풀 외에도 여러 가지라는 것이 경찰 수사결과 밝혀졌다. 즉 수년 전 이혼 후 앓아온 우울증,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스타가 정상의 위치에서 벗어나면서 겪는 정신적 고통 등이 그녀를 괴롭혀 왔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언론은 악풀만큼 다른 원인들을 비중있게 다루지 않고 있다.

언론은 또한 최씨에 대한 동정심을 자아내게 하는 기사를 주로 보도하고 있다. 이는 자칫 모방자살을 부추길 요인이 될 수 있다. 자살은 개인적 비극으로만 끝나는 것이 결코 아니다. 한 사람의 자살로 인해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평생 씻을 수 없는 고통의 멍에를 지고 살아야 한다. 최씨의 경우 그녀가 아끼던 자녀 양육 문제, 가족과 주변 사람들의 큰 충격과 상실감 등이 눈에 띄는 또 다른 비극들이다.

최씨가 최근 자살을 예고하는 언행을 많이 했다는 사실은 가족 등이 최소한의 전문적인 지식을 갖추고 대처했더라면 하는 아쉬움도 갖게 한다. 특히 우리 정부의 자살에 대한 복지 시책이 황무지 상태라는 점도 안타까운 점이다. 우리 사회가 자살에 대해 외국과 같이 제도적으로 대처하는 시스템이 갖춰져 있었다면 이번 사건도 방지할 수 있었을지 모른다.

언론이 최씨 사건에 대해 냉정한 자세로 다각도로 보도한다면 유사한 비극을 방지해 좀더 좋은 사회로 만들 수 있는 여건이 만들어질 수도 있다. 최씨를 죽음으로 몰아간 개인적 원인에 대한 차분한 접근과 분석, 우리나라 자살률이 OECD 평균보다 두 배나 높고 하루 평균 34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현실과 외국의 자살 예방 시스템 등에 대한 정보를 균형감 있게 전달할 때 언론의 기초적 책무는 완성된다. 특히 우리사회에서는 아직도 자살을 개인의 비극으로 여기지만 선진국에서는 자살을 사회문제의 하나로 보고 정책적으로 대처한다는 점 등을 상세히 소개한다면 우리 사회의 복지의식을 한 단계 높이는 자극제가 될 것이다.

최씨 사건 발생 후 우리 언론의 전반적인 보도 추세는 매우 실망스럽다. 대부분의 언론이 최씨의 자살 동기, 가족과 지인 또는 일반인 등의 반응에만 초점을 주로 맞춘다. 언론은 우리나라의 높은 자살률의 원인에 대한 집중 조명이나 그 예방책에 대해서는 거의 관심이 없다. 한나라당의 한 의원이 자살 예방에 대한 법률안을 국회에 제출했다고 한 통신사가 보도했는데도 이를 부각시킨 신문 방송은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

<뉴시스 통신>에 따르면, 한나라당 임두성 의원이 3일 발의한 '자살예방 및 생명존중 문화 조성을 위한 법률안'은 광역자살위기대응팀'을 설치, 자살 위험성이 높은 사람을 조기에 발견하고 정신과 전문의 등이 작성한 계획에 의해 치료를 받도록 하고 자살자 또는 자살미수자의 친족들도 심리적 상처를 빨리 치유할 수 있도록 국가가 심리치료프로그램 등 적절한 지원을 하도록 했다.

또 국무총리실에 '자살예방대책위원회'와 산하기관으로 '자살예방대책실무기획단'을 두어 자살예방책에 관한 주요 시책을 심의하도록 했으며, 보건복지부 장관로 하여금 4년마다 '자살실태조사'를 실시·발표하는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자살로 인한 사회경제적 비용이 최대 3조856억 원으로 추산되고 자살율을 10% 감소할 경우 연간 약 3900억  원의 사회경제적 손실을 방지할 수 있다는 점에서 임 의원의 발의는 매우 시의 적절하다.

언론이 자살 예방 법률안을 자세히 보도하면서 외국의 경우 등을 소개한다면 우리 사회에 새로운 복지정책이 도입되는데 큰 도움을 줄 것이다. 그런데 대부분 언론의 보도는 선정적 인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 사회의 구조적 모순, 부조리나 정치권의 무책임, 관련 학계의 무관심 등에 대한 냉철한 지적이나 반성 촉구, 해결책 강구에는 전혀 관심조차 보이지 않는다.

이번에 인터넷 악풀을 지나칠 정도로 부각시키는 언론은 ‘촛불 시위’에서 혼쭐이 난 언론들이다. 이들은 여권과 한 통속이 되어 ‘최진실 법’을 만들어야 한다고 날뛰고 있다. 사이버 테러가 반사회적인 것은 분명하지만 극소수 특수 사례를 보편화시켜 법적 장치를 강화하려는 것은 민주주의에 대한 테러 행위다. 사이버 모욕죄는 기존법으로 처벌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인터넷상의 표현의 자유를 봉쇄하는 쪽으로 관련 법을 강화하는 것은 민주주의를 뒷걸음치게 하는 것이다. 이는 내란, 반란죄를 처벌할 관련법이 있는데도 국가보안법을 만들어 사상의 자유를 원천 봉쇄했던 발상과 유사하다.

일부 언론과 정치권이 최씨 죽음을 정략적으로 이용하려는 것은 고인을 욕되게 하는 짓이다. 진정 고인을 추모하려 한다면 자살 예방법 제정에 앞장서 이 나라가 복지 후진국을 면하게 하는데 힘을 쏟아야 할 것이다. 언론과 정치는 사회를 바라보는 눈높이가 다른데도 지금처럼 수구언론과 정치권이 한 통속이 되어 같은 목소리를 내는 것은 권력과 언론의 야합이다. 더욱이 민주주의를 후퇴시키는 쪽으로 힘을 모으는 것은 가장 추악한 범죄적 권언야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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