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협박을 하고 보복인사를 하고 징계를 하더라도 터져 나오는 분노와 저항을 막을 수는 없습니다. 밟힐지언정 피하지 않겠습니다. 역사의 시계를 거꾸로 되돌릴 수는 없습니다."

이병순 KBS 사장의 9·17 보복성 인사에 대해 22∼25기 KBS PD 153명도 격렬히 규탄하고 함께 싸워나갈 것이라고 천명했다. 이로써 23일 현재 전체 950여 명의 PD 중 과반수에 이르는 470여 명이 개인 실명을 걸고 이병순 사장의 인사와 회사운영을 규탄하고 나섰다.

이들은 23일 오전 성명을 내어 이번 인사에 대해 "방송 80여년의 역사상 이런 해괴한 인사가 있었는지 참담할 따름"이라며 "보복인사의 백과사전을 보는 듯하다"고 혹평했다. "이번 인사는 오로지 복수심에 불타오르는 이병순 사장의 감정적 배설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라고도 했다.

이들은 "불행하게도 민주주의의 수혜가 민주주의를 위해 피를 흘렸던 사람들이 아니라 그들을 탄압하며 몽둥이를 들고 설쳤던 사람들에게 돌아갔다는 것"이라며 "그리고 그들이 살아남아 다시 우리에게 몽둥이를 휘두르고 있다"고 개탄했다.

이들은 "우리는 투사가 아닌 방송 제작자일 뿐이지만 이런 몰상식과 적의가 횡행하는 KBS를 그저 바라보고만 있지는 않을 것"이라며 "싸워야 한다면 싸울 것이다. 그리고 가차 없이 싸울 것입니다. 이것은 이념이나 신념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사랑스런 직장, KBS에서 상식이 통용되지 않는 것에 대한 최소한의 항의일 뿐"이라고 경고했다.

   
  ▲ 지난 18일 낮 12시 '공영방송 사수를 위한 KBS 사원행동' 소속 사원들이 서울 여의도 KBS 본관 2층 민주광장에 모여 전날 밤 이병순 사장이 기습적으로 한 보복성 인사에 대해 규탄 기자회견을 벌였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다음은 이날 KBS PD 153명이 낸 성명 전문이다.

역사의 시계를 거꾸로 돌릴 수는 없습니다
-9·17 보복인사에 대한 22, 23, 24, 25기 PD들의 입장

부끄러운 일입니다. KBS에 사복경찰이 난입하고 사장을 쫓아내더니, 급기야 한밤중에 섬뜩한 적의로 가득 찬 인사발령이 내려졌습니다. 공사창립 34년, 아니 방송 80여년의 역사상 이런 해괴한 인사가 있었는지 참담할 따름입니다.

철저한 등급분류에 따른 차등조치. 본인이 가장 싫어할 만한 곳이 어디인지를 정확히 조준하여 떨어뜨리는 치밀함. 직전 인사발령이 6개월이 지나지 않아도 보복은 가능하다는 걸 보여준 파견발령. 6개의 송중계소에 분산하여 떨어뜨리는 낙하산 수법. 가히 보복인사의 백과사전을 보는 듯합니다.

그 내용뿐 아니라 절차와 형식 또한 기가 막힐 지경입니다. 통상근무시간을 훌쩍 넘긴 밤 10시에 발령을 내는 것도 몰상식인데, 발령 날짜가 당일자입니다. 사실상의 소급적용 인사입니다. 하루라도 빨리 보복을 해야 직성이 풀리겠다는 광기를 느낍니다. 게다가 형식적 절차일망정 인사 대상자에게 최소한의 통보나 의견개진의 기회는 주었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본인은커녕 해당 팀장조차 모르는 인사를 내는 회사가 대한민국의 대표방송 KBS라는 현실이 부끄럽고 통탄스럽습니다.

이번 인사는 오로지 복수심에 불타오르는 이병순 사장의 감정적 배설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항간에는 인 사후 각 본부별로 평가를 받았다는 얘기도 들립니다. 가장 악랄한 인사를 한 본부장에겐 가뭄의 단비 같은 사장의 칭찬이 따랐고 연약한(?) 모습을 보인 본부장에게는 차후 인사행태를 보고 재신임을 묻겠다는 공갈이 돌아갔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우리의 선배인 것이 한없이 부끄럽습니다.

지난 5년이 우리에게 가르쳐준 것이 있습니다. 불행하게도 민주주의의 수혜가 민주주의를 위해 피를 흘렸던 사람들이 아니라 그들을 탄압하며 몽둥이를 들고 설쳤던 사람들에게 돌아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살아남아 다시 우리에게 몽둥이를 휘두르고 있습니다.

우리는 투사가 아닙니다. 각자의 양심을 잣대로, 시청자의 평가를 양식으로 KBS의 하루를 전투처럼 살아가는 방송 제작자일 뿐입니다. 그러나 이런 몰상식과 적의가 횡행하는 KBS를 그저 바라보고만 있지는 않을 것입니다. 싸워야 한다면 싸울 것입니다. 그리고 가차 없이 싸울 것입니다. 이것은 이념이나 신념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사랑스런 직장, KBS에서 상식이 통용되지 않는 것에 대한 최소한의 항의일 뿐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이러한 결의는 이러한 보복조치를 부추기며 뒤에서 음흉한 웃음을 짓고 있는 박승규 집행부에게도 똑같이 향하고 있음을 밝히고자 합니다. 우리는 당신들에게 YTN노조의 결기를 기대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사회장 앞에서 똑같이 싸웠던 사원행동의 조합원들에게 등 뒤에서 비수를 꽂는 사측의 조치에 성명서는커녕 선유도 1박2일을 선택한 당신들의 염치가 개탄스러울 뿐입니다. 그럴 바엔 차라리 개인의 영달을 위해 MB에게 줄을 선 한국노총 간부들의 솔직함이라도 본받기를 바랍니다.

좌고우면하지 않겠습니다. KBS를 온전히 지켜내는 것만 생각하겠습니다. 오로지 시청자와 국민만 생각하겠습니다. 아무리 협박을 하고 보복인사를 하고 징계를 하더라도 터져 나오는 분노와 저항을 막을 수는 없습니다. 밟힐지언정 피하지 않겠습니다. 역사의 시계를 거꾸로 되돌릴 수는 없습니다.

2008년 9월 22일

22기 PD

고정훈, 권오훈, 권용택, 김민철, 김상무, 김영삼, 김윤환, 김은주, 김정록, 김정환, 김진수, 김창회, 김한석, 김현기, 김현수, 김현철, 김형석, 김형준, 나원식, 류송희, 민노형, 박건, 박기현, 박성철, 박유경, 박정수, 박충원, 배용화, 서수민, 서용하, 성준해, 손성배, 송웅달, 송주미, 안종호, 안주식, 양홍선, 유태진, 윤성도, 윤성식, 윤중경, 이경묵, 이계창, 이내규, 이명한, 이민호, 이병창, 이선동, 이재오, 이재혁, 이정수, 이진서, 이황선, 임기순, 임현진, 전창근, 전희수, 정일서, 정현모, 정희섭, 최기석, 한경택, 한응식, 홍진표

23기 PD

김은정, 김종석, 김형주, 김희수, 남유진, 문석민, 박성용, 박융식, 박은희, 백종희, 손종호, 손준영, 연종우, 오인교, 은경수, 이병용, 이제석, 장영우, 정승우, 최용수, 최재복, 한상준

24기 PD

강병택, 강성훈, 강요한, 곽정환, 권계홍, 권재영, 기민수, 김강훈, 김상휘, 김석현, 김신일, 김영선, 김원, 김정규, 김정은, 김정희, 김진환, 김필준, 나영, 류명준, 문소산, 문준하, 민일홍, 박기호, 박성주, 박일해, 박창, 백주환, 신동조, 오수진, 원종재, 유경숙, 유웅식, 유현기, 유희원, 윤영식, 윤현준, 이동희, 이세희, 이원규, 이정환, 전우성, 정택수, 정혜경, 조승욱, 조정훈, 조현아, 최근영, 최재형, 최지원, 최필곤, 하태석, 함영훈, 홍기호, 홍순영, 황응구

25기 PD

김영동, 김정민, 박용석, 이경윤, 이동우, 이정섭, 이혁휘, 조준희, 지병현, 지형욱, 한동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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