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홀을 만들어내는 실험이 진행 중이다. 시간과 공간을 모두 끌어당긴다는 블랙홀이 혹시 지구를 통째로 집어삼키지는 않을까. 우주 탄생의 비밀을 밝힌다는 이 거창한 실험을 앞두고 세계 곳곳에서 항의와 반발이 빗발쳤던 것도 이런 우려에서다. 일부에서는 지구의 소멸과 종말을 거론하기도 했다. 물론 전문가들은 이 블랙홀이 아주 작은 규모인데다 금방 사라지기 때문에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반박하고 있다.

스위스 제네바 접경 지역에 있는 유럽입자물리학연구소(CERN) 대형 강입자 가속기(LHC, Large Hadron Collider)가 10일 오전 가동을 시작했다. 이날 발사된 수소 양성자 빔이 지하 100m에 설치된 지름 8km의 원형 터널을 한 바퀴 돌 때 걸린 시간은 52분. 이 양성자 빔은 궤도를 돌면서 점점 속도를 높여 빛의 속도 2.99792458×108m/s의 99.99991%에 이르면 반대 방향의 양성자 빔과 충돌을 하게 된다.

   
  ▲ 입자를 가속시키는 장치.
 
 
이 정도 속도면 이 지름 8km의 원형 궤도를 1초에 11245번씩 돌게 된다. 양성자 하나가 7TeV의 에너지를 갖는데 반대 방향으로 돌던 양성자가 정면으로 충돌하면 1150TeV의 에너지를 만들게 된다. 이걸로 우주 탄생 초기의 블랙홀을 재현하고 물질의 구성 원리를 밝히는 것이 이 실험의 목적이다. 만약 설비 점검이 순조롭게 진행되면 이르면 다음달, 늦어도 올해 안에 충돌 실험이 가능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 입자 가속기는 14년에 걸쳐 전체 건설비용은 95억달러가 소요됐다. 전력 소비량이 최대 180㎿에 이른다고 한다. 세계적으로 1만여 명의 과학자들이 이 실험에 참여하고 있다. 한가위 특집 기획으로 미디어오늘에서는 이 사상 초유의 실험이 갖는 의미를 살펴보고 과연 이 실험이 지구의 종말을 불러올 가능성을 검토해 봤다. 먼저 입자물리학의 기초적인 상식을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 원자의 구성.  
 
첫 번째 상식.
분자 밑에 원자, 원자 밑에 핵자, 핵자 밑에 쿼크, 그 밑에는?

중고등학교 교과서에도 나오지만, 화학적 성질을 지닌 최소 단위 입자를 분자라고 한다. 분자는 원자로 구성돼 있는데 이 원자를 물질의 기본 구성단위로 친다. 그런데 원자는 다시 + 전하를 지닌 양성자와 전하를 띠지 않는 중성자, 그리고 - 전하를 지닌 원자로 구성돼 있다. 양성자와 중성자를 핵자라고 하는데 이 핵자들은 다시 쿼크로 구성돼 있다. 이와 별개로 크기를 거의 차지하지 않는 렙톤이라는 소립자도 있다.

원자의 크기는 10-10m, 핵자는 10-14m, 핵자로 뭉쳐 있는 핵의 주변을 빙빙 돌고 있는 전자는 10-19m 정도다. 쿼크의 크기도 전자와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이해를 돕기 위해 만약 핵자의 크기가 10cm라고 가정하면 전자는 0.1mm보다 작게 된다. 이렇게 작은 전자가 핵을 중심에 두고 지름 10km의 원을 그리면서 돈다. 그래서 원자의 99.99%는 빈 공간이다.

+2/3의 전하를 갖는 업 쿼크 두 개와 -1/3의 전하를 갖는 다운 쿼크 하나면 양성자가 되고 업 쿼크 하나와 다운 쿼크 두 개면 중성자가 된다. 여기에 렙톤인 전자가 결합하면 원자가 된다. 렙톤 가운데는 매우 짧은 시간 동안만 존재하는 뮤온이나 타우온, 질량이 거의 없는 중성미자 같은 입자도 있다. 물질은 이처럼 스핀이 1/2의 홀수 배인 쿼크와 렙톤, 그리고 이들을 매개하는 스핀이 1/2의 짝수 배인 보존이라는 입자의 결합으로 구성된다.

   
  ▲ 쿼크와 렙톤.  
 
두 번째 상식.
중력과 전자기력, 강력, 약력…우주를 구성하는 네 가지 힘.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힘은 중력이다. 질량을 가진 물체를 서로 끌어당기는 힘이다. 중력을 매개하는 중력자라는 입자를 가정하고 있지만 실제로 발견된 바는 없다. 중력자는 질량도 전하도 없다. 중력 만큼이나 친숙한 전자기력은 +와 - 전하가 서로 끌어당기고 같은 전하끼리는 서로 밀어내는 힘이다. 전자기력을 매개하는 입자를 광자라고 한다. 역시 질량은 없고 흔히 빛의 속도로 움직이는 전자기파의 형태로 존재한다.

흥미로운 것은 원자의 핵 안에서 같은 + 전하를 지닌 양성자들이 어떻게 그렇게 가까이 붙어 있을 수 있느냐다. 전자기력을 감안하면 서로 밀어내야 맞겠지만 입자물리학에서는 쿼크 사이를 묶는 전자기력보다 훨씬 강력한 힘이 있다고 가정한다. 전자기력보다 100배 정도 강한 이 힘이 바로 강력이다. 이 힘은 10-15m 정도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만 작용한다. 강력을 매개하는 입자를 글루온이라고 한다.

마지막으로 약력은 중성자가 양성자로 바뀌면서 전자와 반중성미자를 방출하는 과정에서 발견된다. 약력의 사정거리는 10-17m로 강력보다 더 가까워야 한다. 약력을 매개하는 입자를 W보존과 Z보존이라고 하는데 문제는 이 입자들 질량이 각각 양성자의 86배와 97배에 이른다는 사실. 갑자기 엄청나게 무거운 입자가 생겼다가 쿼크의 성질을 바꾸고 사라지는데 이를 설명하기 위해 힉스 보존이라는 입자를 가정하기도 한다.

네 가지 힘 가운데 가장 센 것은 역시 강력이다. 전자기력은 강력의 100분의 1 수준이고 약력은 10만분의 1 수준이다. 가장 약한 것은 중력이다. 중력은 강력의 1039 분의 1 수준이다. 과학자들은 이 네 가지 힘을 하나의 이론으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고 보고 대통일 이론 등을 발전시켜왔지만 아직까지는 전자기력과 약력을 합치는 데까지만 성공한 상태다. 초끈이론이 현재로서는 해답에 가장 가까이 와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 태초의 우주 가상도.  
 
세 번째 상식.
무척 비좁고 무척 뜨거웠던 태초의 우주.

우주의 역사는 137억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엄청나게 높은 온도와 밀도에서 폭발이 일어났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를 빅뱅이라고 부른다. 우리가 미루어 짐작 수 있는 건 크기가 10-35m 정도로 불어나는 10-43초 이후부터다. 이때 온도는 무려 1032℃에 이른다. 모든 종류의 쿼크와 렙톤이 뒤엉켜서 서로 부딪히고 끊임없이 형태를 바꾸는 그런 순간이다. 10-35초일 때 우주는 사과 정도 크기로 불어난다.

10-20초가 되면 우주는 쿼크와 글루온이 뒤섞인 플라즈마 상태가 되고 3억km 정도 크기로 불어난다. 이때 온도는 1015℃. 1만분의 1초가 지나 온도가 1012℃까지 내려가면 이 플라즈마가 굳어져 양성자와 중성자가 만들어진다. 우주 탄생 이후 3분이 되면 양성자와 중성자가 결합해 최초의 중수소핵이 되고 다시 이 중수소핵이 결합해 헬륨 원자핵이 된다. 이 헬륨이 아직까지 우주의 80%를 구성하고 있다.

그 뒤의 역사는 우리가 잘 아는 바와 같다. 38만년 뒤에 최초의 원자가 만들어지고 2억년 뒤에 별과 은하계가 나타난다. 우리가 살고 있는 태양계의 형성은 92억년 뒤. 지구에서 생명이 출현한 때는 100억년 뒤다. 이번에 가동에 들어간 CERN의 입자 가속기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우주 탄생 직후 10-25초 무렵, 우주의 온도가 1017℃였던 무렵을 재현하려는 것이다.

   
  ▲ 대형 강입자 가속기 내부.  
 
궁금증 하나.
무엇이 어떻게 충돌을 하나.

양성자 빔을 양쪽으로 쏘아 충돌시키는 것은 그래야 두 배의 에너지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양성자 하나의 에너지는 7TeV지만 두 배면 14eV가 된다. 입자 가속기 내부의 압력은 10-13apm으로 완벽한 진공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온도는 -271.1℃로 이론적인 최저 온도인 -273.15℃보다 1.9℃ 높다. 양성자 빔을 궤도를 따라 회전시키고 가속하기 위해 9600개의 자석이 설치됐는데 자기장은 최대 8.3T에 이른다.

양성자 빔은 2808개의 다발로 구성되는데 각각의 다발에는 1011개의 양성자가 들어 있다. 이 다발은 처음에는 길이 수cm에 너비도 수mm에 이르지만 충돌 확률을 높이기 위해 죽 잡아당겨져서 충돌 직전에는 너비가 16㎛ 정도로 가늘어진다. 참고로 머리카락의 굵기가 50㎛다. 이런 다발이 지름 8km의 궤도를 1초에 1만1245번씩 회전하면서 1초에 3160만번(=2808×11245)씩 충돌지점을 통과하게 된다.

대략 3천개의 다발에 각각 1천억개의 양성자가 들어있는 셈이지만 양성자가 워낙 작기 때문에 충돌 가능성은 2천억개가 지나갈 때 20번 정도 밖에 안 된다. 그러나 이런 다발이 1초에 대략 3천만번씩 지나가기 때문에 1초에 6억번의 충돌을 만들 수 있다. 양성자 빔은 한번 쏘면 10시간 동안 돌면서 무려 100억km를 달린다. 이 정도면 토성까지 한번 갔다 올 수 있는 거리다.

   
  ▲ 입자 가속기 검출실 내부.  
 
궁금증 둘.
무엇을 발견하길 기대하는가.

첫 번째 목표는 신의 입자라고 불리는 힉스 보존을 발견하는 것이다. 힉스 보존은 입자에 질량을 부여하는 입자로 알려져 있다. 양성자 질량의 80배가 넘는 W보존 등이 양성자 안에서 튀어나올 수 있는 것도 바로 이 힉스 보존 때문인 것으로 추정된다. 만약 힉스 보존이 발견되면 중력과 전자기력, 강력, 약력 등 네 가지 힘을 한데 묶는 단일한 이론, 이른바 '모든 것의 이론'을 만들어 낼 수도 있다.

두 번째 목표는 암흑 물질과 암흑 에너지를 발견하는 것이다. 실제로 우리 눈에 보이는 물질은 4%에 지나지 않고 나머지 96%는 암흑 물질 또는 암흑 에너지라는 게 천체물리학의 관측과 연구 결과다. 실제로 관찰되는 물질의 질량이 너무 작다는 추론에서 나온 결과다. 은하계 바깥쪽의 별들이 더 빠른 속도로 회전하고 우주가 수축하지 않고 계속 팽창하는 것도 보이지 않는 거대한 힘이 작용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세 번째 목표는 반물질의 실체를 밝혀내는 것이다. 이를테면 양성자는 전자의 1806배의 크기다. 그런데 양성자 크기의 - 전하를 가진 입자는 왜 없을까. 전자 크기의 + 전하를 가진 입자는 왜 없을까. 실험실에서 만들 수도 있고 우주에서 날아오기도 하지만 이런 반입자들은 금방 소멸돼 버린다. 우주는 원래 이렇게 만들어진 것일까. 아니면 우주 반대편에 반입자들로 가득 찬 다른 우주가 또 있는 것일까.

만약 힉스 보존이 발견되지 않는다면 물리학은 상당 부분 이론을 수정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지금까지 발견된 네 가지 힘은 암흑 물질이나 암흑 에너지를 고려하지 않은 결과다. 반물질을 둘러싼 논쟁은 여전히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이 많지 않음을 시사한다. 우주는 무지막지하게 넓고 어디선가 물질과 반물질의 경계에서 엄청나게 많은 감마선이 생성되고 있는데 지구까지 도달하지 않았을 가능성도 있다. 다만 우리가 모르고 있을 뿐이라는 이야기다.

   
  ▲ 입자 가속기 내부 구조도.  
 
궁금증 셋.
블랙홀 때문에 지구가 종말을 맞을 수도 있나.

실험실에서 이 정도의 입자 충돌이 만들어진 것은 처음이다. 자연에서는 이보다 훨씬 더 거센 입자 충돌도 종종 벌어지지만 블랙홀이 지구를 집어 삼킨다든가 하는 일은 없었다. 우주에서 쏟아져 내리는 이른바 '우주선(cosmic rays)'은 입자 가속기 보다 훨씬 입자가 크고 훨씬 속도가 빠른 경우도 있다. 이런 일이 지난 45억년 동안 계속됐고 지구 뿐만 아니라 달과 화성, 금성, 태양에서도 벌어졌지만 이들 항성이나 행성은 사라지지 않았다.

실제로도 7TeV의 양성자가 정면으로 충돌했을 때 발생하는 에너지는 1150TeV 정도. 1eV=1.602×10-19J이고 1TeV=1012eV니까 1150TeV=1.8423×10-4J이 된다. 1TeV가 2mg짜리 모기 한 마리가 0.4m/s로 날아가는 운동에너지 정도 밖에 안 된다는 비교도 있다. 그러나 물론 손바닥을 그냥 마주치는 것과 손바닥 위에 압정을 올려놓고 마주치는 것은 그 집중도에서 충격이 다르다.

에너지가 크고 작은 것이 문제가 아니라 그 집중도가 문제라는 이야기다. 실제로 이 입자 가속기에서 작은 크기의 블랙홀이 만들어질 가능성을 이 연구소도 배제하지 않는다. 다만 블랙홀이 외부를 끌어당기려면 엄청난 크기의 중력이 필요한데 양성자의 무게는 1.67×10-27kg 밖에 안 된다. 이런 작은 블랙홀은 만들어지자마자 10-12초만에 사라진다는 것이 대부분 전문가들의 견해다.

또 다른 걱정거리는 '이상 소립자(strangelet)'가 만들어질 가능성이다. 보통은 업 쿼크와 다운 쿼크가 결합해 양성자와 중성자를 만드는데 여기에 스트레인지 쿼크가 결합돼서 지금까지 존재한 적 없던 새로운 핵 물질을 만들고 주변의 정상적인 물질을 마구잡이로 변형시킬 수도 있다. 결국 지구 전체가 이 이상한 핵 물질 덩어리로 바뀌게 될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전문가들은 그 가능성을 전면 부정하지는 않지만 확률이 매우 낮다고 보고 있다.

확률을 두고 논쟁이 벌어지고 있지만 확률은 확률일 뿐이다. 다만 분명한 것은 우리 인류가 미지의 영역에 발을 들여놓고 있다는 사실이다.

   
  ▲ 블랙홀의 가상도.  
 

   
  ▲ 유럽입자물리학연구소(CERN) 대형 강입자 가속기(LHC, Large Hadron Collider)의 구조도.  
 
(참고 : CERN 가이드에서 번역 발췌하고 이해를 돕기 위해 설명을 추가했음. http://cdsmedia.cern.ch/img/CERN-Brochure-2008-001-Eng.pdf 사진 출처도 모두 CERN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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